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역 Mar 11. 2023

본사 직원의 현장출장기

그래, 현장만이 현장이지 말입니다.

 "사무실도 현장입니다."

 "말장난이 지나치군요."


윤태호作 미생 중 발췌


 사무실 대신 충남의 생산공장으로 향하는 날에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낀다. 어쨌든 평일의 서울을 벗어난다는 고무적인 사실 때문일까. 귀경길에 시간이 애매해지면 현장퇴근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일까. 그보다는, 같은 회사의 간판 아래 있어도 그곳을 남의 영업장으로 생각하여 나를 참관자로 여기기 때문일터였다.  

 이번의 내 미션도 미국 선적건 출하의 '참관'이었다. 우리는 어쩌다 일(특히 육체노동일 경우)을 하러 공장에 갈 적에도 그것을 '지원'이라고 불렀다. 사무실의 일은 곧 공장의 일로 치부하면서 공장의 일은 칼같이 선을 그었다. 때로는 미안하고 때로는 부끄러웠던 개인적 감정이다. 


 충남에 위치한 공장에 가기 전에 휴게소에 들러 도넛을 샀다. 이건 물류팀 주고, 이것은 생산팀, 이것은 기술팀에 줘야지 하며 3팩을 산다. 보통 사수인 C과장을 태우고 향하는 지방행인데, C과장의 연차로 오늘은 나 홀로 갔다가 오게 되었다.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커피를 마신다.




 "알렉스 씨 오셨어요? 오늘은 무슨 일로?"


 생산팀의 H과장이 웃으며 반겨준다. 공장 사람답지 않게 괄괄한 면이 없이 순박한 사람이다. 평소에 사무실에서 가장 이것저것 많이 묻고, 또한 부득이 이것저것 많이 시키게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네, 오늘은 저희 미국 오더 출하에 참관하려고요. 이따 물류팀 하고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과장님, 이거 별거 아닌데 간식입니다."


 도넛을 내민다.


 "아휴, 이런 거 오실 때마다 안 사 오셔도..."


 "사 오세요."


 H과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동료인 맞은편 K대리가 끼어든다. 그의 말에는 으레 그 영남 억양이 섞여있다.


 "우리의 큰 낙입니다."


 그러면서 벌써 도넛에 손이 간다. "사다 주면 그냥, 받아먹으면 돼."하고 H과장에게 핀잔을 준다. 직급은 아래지만 그들은 그냥 친구 하기로 했나 보다.




 공장밥. 

 공장의 구내식당을 말하는 것이다. 

 늘 궁금한 것이, 서울의 식단과 공장의 식단이 같을까? 일단 같은 업체의 급식을 공급받고 있기는 하다. 물류팀 D대리 말로는 영양사의 실력에 따라 맛과 메뉴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장 쪽 영양사는 실력이 없다고 한다. 나는 본사 영양사도 실력이 없다고 답한다. 그렇게 그냥 우리 회사의 구내식당은 맛이 없다로 결론 낸다. 




 미국 선적 건의 화물들을 출하한다. 

 운송사의 화물차 기사가 컨테이너를 공수해 오고, 하청직원은 지게차를 몰고, 공장 물류과의 D대리는 출하과정을 감독하고, 나는 참관이라는 고급스러운 언어의 [옆에 서서 가끔 사진 찍기]를 한다. 중간에 D대리와 잠시 수다를 떤다. D대리는 나의 부서장인 N부장을 욕한다. 현장의 사정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고 군번으로 찍어 누른다는 것이다. 배려가 없다는 그의 투덜거림에 나는 동조할 수는 없고 다만 경청한다. D대리는 C과장도 욕한다. N부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조금 동조하며 계속 경청한다. D대리는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친하다. 아직은.




 출하를 마쳤으니 이제 슬슬 올라갈까 싶다. 지금 가지 않으면 동탄 즈음부터 정체에 휘말릴 것이다. 그런데 이때 본사의 N부장이 전화한다. 


 "S대리 건인데, 지금 출장 중이잖아. 내일 인도네시아 보내야 하는 샘플이니까 너가 좀 챙겨라."


 언젠가 내 위의 선배 사번 격인 JJ사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N부장님은, 사원 감수성이 없어. 퇴근하려는데 일을 시켜."



 

 이제 진짜 올라가자 싶은데, 기술팀의 J과장이 나타난다.


 "알렉스 씨, 잠시 시간 돼요?"


 "네, 그럼요."


 "저번에 샘플 제작 요청하신 것, 저희가 왜 바로 대응 못 해 드리는지 라인 한 번 보여드리면서 설명할게요."


 해당 샘플은 발주가 근접한 내 미국영업 건이다. 이건 들어야 한다. 기술팀의 J과장은 나를 데리고 생산라인을 돌면서 왜 본사의 샘플 제작 요청에 바로 대응할 수 없는지 기술적으로 설명한다. 그 와중에 그에게도 N부장의 전화가 온다. 그리고 뭔가를 시킨다. 공장 사람 중에 가장 정치력(?)이 뛰어나고 스마트한 사람으로 꼽히는 J과장은 서늘한 말투의 응대와 한숨의 표정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다.




 부서마다 돌며 간식을 돌리고, 출하 건을 참관하고, 선배 대리의 샘플을 챙기고, 내 샘플 제작을 위해 J과장에게 손을 비빈 후 마침내 차에 올랐다. 비록 정체길에 편승하겠지만 적어도 현장퇴근 컨펌은 나올 것이다. 공장은 여전히 바빴다. 사무실의 일도 그들의 일이고, 공장의 일도 그들의 일이지만, 공장의 형편은 그들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본사 직원은 조용히 차를 몰아 그곳을 떠난다.




이전 09화 직장인의 기승전'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