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 우화
잠시 동화 한 편 읊조리도록 하겠다.
한 마리 사슴이 있었다. 이제 갓 뿔이 돋을랑 말랑한 사슴이었다. 공부를 마친 사슴은 자신의 인생을 모험으로 채우고 싶었고 나름 성취하고픈 꿈도 여럿 있더랬다. 뿔을 크게 갈고닦아 호랑이를 찔러 없애는 그런 모험을 원하지는 않았다. 멸종위기 동물과의 갈등을 목표할 만큼 철없는 사슴은 아니었다. 그저 산마다 탐방하고 싶고, 여러 들판의 풀도 뜯어먹어 보고, 선녀탕을 발견해서 착하고 예쁜 선녀를 아내로 맞고 싶더랬다. 그렇게 사슴은 길을 나섰다.
모험길에 객사하지 않으려니 일자리가 있어야겠다 싶어서 사슴은 한 산타가 운영하는 회사의 루돌프로 취직했다. 하늘길을 통해 화물을 운송하는 일이었다.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배우면 기술이겠거니 했고 어느 정도는 배우는 부분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늘 화주 편인 산타와 이른바 [고객]의 온갖 무지와 진상스러운 언행에 지쳐갈 즈음 루돌프는 산타의 그늘을 벗어나기로 했다.
산타도 한때는 루돌프였다고 했다. 흥, 상등병 출신의 히틀러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보병 출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수많은 아시가루들을 전장의 포화로 내몰았더랬지. 루돌프는 산타와 회사에 일말의 아쉬움 없이 떠나고자 했다.
짐을 싸는 루돌프에게 산타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말했다.
"영업하기로 했다면서?"
루돌프가 알게 뭐냐는듯 끄덕이자 산타는 말했다.
"나도 너 나이 때 즈음 그 길을 고민했지. 근데 물류는 큰 변화가 없어. 짐만 옮기면 돼. 무역은, 시장이 변하면 제품도 변해야 해. LCD에서 LED로 못 넘어간 애들 다 죽었잖아. 그게 무역과 물류가 다른 점이야. 그리고 영업은, 해외에 나가거든, 일단 나가거든 팔아서 돌아와야 하는 거야. 나도 사장이 되니 영업할 일이 있더라. 다른 요소들보다 판매에 더 몰두하게 돼."
그리고 산타는 돌아섰고, 루돌프는 길을 나섰다.
화물을 받아 옮기던 사슴에서 그 화물을 직접 팔아야 하는 사슴이 된 루돌프는 짧은 시간에 여러 일을 겪었다. 그것이 운이 좋다고 할지 나쁘다고 할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알 일이었다. 다만, 언젠가 산타가 했던 말이 떠오르며 가끔은 그때 화주들 편만 들었던 산타가 이해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더랬다.
그럼에도 길을 떠날 때의 루돌프와 지금의 루돌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선녀탕을 찾고 싶고 여러 들판과 산을 누비며 모험으로 인생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슴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 사슴의 연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