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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Mar 18. 2023

"지금 로비에 그들이 있어?"

바이어를 빼오기 위한 007 작전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현지인 A는 경쟁사인 L사의 거래처였다. 지금은 L사가 우수 바이어에게 제공하는 한국 관광 프로그램으로 인해 내한 중이었다.


 우리 회사와도 몇 번의 거래가 있었지만, 부서 입장에서는 주력 품목이 아닌 아이템만 취급하는 그를 별로 공들여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막내인 나에게 응대 임무가 던져진지도 모른다.


 "나 도착했어. 준비되면 나와."


 10시 약속이므로 9시 40분에 그가 머무는 호텔에 도착한 나는 영문으로 카톡을 보낸다. 앞서 왓챕이 없냐는 그의 말에 "없어."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곧 카카오톡 아이디를 만들어 나에게 컨택했다. 이것만으로 그에 대한 우리 부서의 집중도가 엿보인다. 헤비급 거래처였다면 나는 없는 왓챕 아이디도 만들었을 것이다.


 "준비는 9시부터 했는데, 아직 L사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떠났을지 모르겠어. 로비에서 마주치면 곤란하거든."


 그는 우리 회사와 미팅을 하기 위해 그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늘 L사 직원들의 에스코트 아래 진행될 명동과 동대문 투어를 빠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L사 직원들은 다른 바이어들만 데리고 나갈 예정인데 그 시간이 우리의 약속 시간과 묘하게 겹치므로 A는 방에서 나오기가 겁나는 모양이었다. 괜히 우리와 새로운 채널을 개설하려다가 기존 채널인 L사와의 관계가 민망해질 수 있기 때문이렸다.


 "혹시 지금 로비에 L사 직원들이 있니?"


 그렇다고 이런 질문을 대놓고 할 줄은 몰랐다. 비즈니스맨은 체면도 없는 것인가. 얼굴도 안본 거래처 직원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하다니. 하지만 일단 성실하게 응대하기로 한다. 나는 괜히 로비 한가운데로 걸어가 몸을 푸는 척하며 두리번 거린다. 중년 아저씨 세 명이 카페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중년쯤 되니?"


 "인도네시아에서 온 다른 바이어는 30대, 40대, 60대야. 우리를 인솔하는 L사 직원은 26살이야."


 L사에도 나같은 녀석이 있나보다. 아무튼 별볼일 없는 바이어일지언정 나름 경쟁사에게는 우수 거래선, 타사의 거래처를 서리하는 것은 썩 설레는 일이다.


 "이렇게 하자, 로비 안팎으로 L사 직원이나 차량은 없어보여. 하지만 네가 불안하다면 조금 더 있다가 방에서 나와."


 "그게 좋겠어. 아니면 호텔 맞은편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만나자."


 녀석이 제안한게 더 나은거 같다. 어차피 차를 타려면 호텔 건너편에서 만나는 것이 동선으로도 적합하다.




 본사에 데려가 미팅을 마치고 점심부터 고기까지 구워먹인 후 나는 그를 L사와의 다음 스케줄 장소에 데려다 주었다. L사의 제품을 전시한 쇼룸이다. 다른 바이어 일행과 그 26살 가엾은 친구도 곧 그 장소에 모인다고 했다.


 "혹시 그 사원증 가려줄 수 있어?"


 내가 경쟁사 직원이라는 것이 들킬까 염려되는 모양이다.


 "걱정마, 네 친구들이 오기 전에 나는 갈거야."


 우리 친구가 되려면 너는 주력제품으로 더 자주, 더 많이 구매를 해야한다구.

 이렇게 생각하면서 문득 나도 그와 비슷한 장사꾼이 아닌가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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