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녀의 안식월이라는 뜻이다. 대학시절에는 여러 알바로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여 5년간 내리 일만 했던 그녀의 퇴사를 "이제 백수가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안식월을 갖는다고 표현함이 옳다.
정든(애증도 정이니까.) 회사를 떠난 그녀는 곧장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뉴질랜드로 약 2주 간의 여행을 떠났다. 평생을 공유할 것을 염두에 두고 연애를 하는 우리여서 2주의 시간이란 매우 짧은 것이지만 그녀와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국가)에 있는 이 시간이 나는 낯설었다. 앞서 그녀를 두고 출장을 떠난 적도 있었지만 떠나는 주체가 나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땐 이기적 이게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내 기분을 알겠지?"
그녀의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그녀가 내 일상에 들어온 이후, 나는 거의 대부분의 주말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평일은 서로 너무 바빴기 때문에 매주 주말에는 꼭 서로를 만나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나의 첫 여인이었고 나는 많은 것을 그녀와 처음 함께 했다. 물려받은 차로 함께 드라이브를 갈 적에 익숙지 않은 운전으로 여러 번 길을 잘못 들었지만 오히려 옆에서 "괜찮아, 조금 돌아가면 되지."라고 해주었던 그녀였다. 전 직장에서 (인생 처음으로) 승진했을 때 기뻐해준 이도 그녀였고, 대기업 이직 소식에 자기 일처럼 좋아한 이도 그녀였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소박한 집필활동에도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주고 내 덜 세속적인 꿈을 응원하며 1호 독자가 되어준 그녀였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미 내 인생의 큰 조각이다.
주변의 유부남, 예컨대 나의 상사들은 여자친구가 2주간 해외여행을 떠나서 주말에 할 일이 없다는 내 말을 듣고 눈빛이 슬퍼지더랬다. 진한 부러움에서 오는 눈빛이었다. "나도 와이프가 얼마간 어디로 좀 가있으면 좋겠다."는 눈빛이었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저렇게 되려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당장은 눈앞의 주말에 뭐 할지가 고민이다.
주말이니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차순위로 미뤄본다. 공부나 운동은 잠시 미루자. 독서는 하고 싶긴 한데 일단 밖으로 나가고 싶다. 평일 내내 사무실이라는 실내에 있었더니 주말에는 잠깐이라도 나가고 싶다. 두물머리를 갈까, 미사리를 갈까, 아웃렛을 갈까, 무엇을 생각해도 옆에 그녀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함께 좋아하는 멕시칸 식당을 가고 싶고, 한강 공원 푸릇한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새우깡 까먹으며 노닥거리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주변의 여럿 유부남들처럼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김난도 교수는 "사랑은 반드시 변한다."는 취지의 말을 자신의 저서에 적은 바 있다. 연인의 사랑과 부부의 동지애는 다른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 인생에도 한 순간은 오매불망 기다리는 열성팬이 필요할 터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그녀의 열성팬 역할을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