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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Nov 02. 2024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

(송창식, 사랑하는 마음 中)

"살면서 세 가지는 꼭 해보길 바랍니다."


 고등학교 2학년, 상당히 인간적인 분이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더랬다. 그분의 교직생활 마지막 프로젝트는 교장으로서 각 반을 돌며 수업시간을 가지는 것이었고 과목은 [인생]이었다.


"하나, 후회 없이 공부해봐야 합니다. 둘, 딱 한 번쯤은 술에 취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셋, 미친 듯이 사랑해 보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일이나 과업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의미의 연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오해 아니다. 정말 맞다. 부연설명도 하셨다.)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맞을 정도로 몰입한 미친 사랑을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술이라는 것을 참 싫어했지만 나머지 두 개는 꼭 해보리라 다짐했다.


 남고였다.

 그전에는 남중을 졸업했다.

 그래, 다 핑계고 내가 망할 주변머리가 좀 없었다.

 생긴 건 무지 괜찮은데 말이다.


 10대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도 본의 아니게 태평양 건너 미국땅으로 진학한 탓에 생활과 언어에 적응하며 가난한 시간을 살다 보니 연애라는 것은 내 인생에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괜찮아, 나에겐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있으니까^^ (듀오는 안 괜찮았겠지만)


 고로, 학업과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직업인으로서는 참 유능한데 영 분위기가 홀아비 같고 실제로도 싱글인 남성 장기재고들이 있다. 그들의 전철을 밟을 참이었다. 이렇게 된 거, 서른여섯 정도까지는 결혼을 제치고 일과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당시는 수출을 주도하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화물 운송을 중개하는 포워더였다 (필자는 무역을 생업의 콘텐츠로 삼아왔다). 이는 힘든 직무다. 수출을 하는 무역회사들은 우리를 乙로서 취급했고 사실은 X밥인 주제에 甲처럼 굴었다. 늘 인력이 나가고 그만큼 일손이 딸려서 경력단절이라는 것이 비교적 덜한 직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사우들이 많이 근무하고 실제로 여성 지원자를 많이 뽑는다. 나도 첫 후배로 여직원을 받았다.


 편의상 그녀를 김토끼라 칭하겠다.

 김토끼는, 누구나 그렇듯, 이 터프한 직무를 힘들어했다. 수화기 너머의 화주들과 현장직원들은 폭언을 일삼고 모니터 너머의 해외 협업사들은 야만스러웠다. 무릇 일이등병 생활관을 담당한 분대장 출신으로서 여러 후배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본 나는 내 첫 후배인 김토끼도 나름 열심히 지켰다. 대신 싸워주고, 혼나주고, 가르쳐주었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나와 김토끼는 서로 이성을 본 바가 없다. 이미 김토끼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도 직업인으로서, 사수로서 후배를 지켰을 뿐이다. 다만, 김토끼에게는 같은 업계에 근무하는 '아는 언니'가 있었다.


[선배, 혹시 키가 몇이에요?]


 메신저로 김토끼가 물었다.

 연애 경험은 없지만 소개팅 경험은 여러 번 있었고 해당 경험을 통해 누적 및 편집된 데이터로 짐작컨대 김토깽이는 지금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주려는 것일 터였다.


[179]


 해당 정보는 인천 소재 보병사단 의무대에서 검수한 바 있음으로 나는 더한 것도 뺀 것도 없다. 아무튼 이 스펙은 납품을 위한 기준에 미달되지 않았나 보다. 김토끼는 말을 이었다.


[제가 가끔 이야기하던 XX화물 언니 알죠? 길쭉길쭉 이뻐요]


 빠른 전개를 위해 각설하자면 나는 김토끼의 아는 언니 '재키'와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재키는 수수했고 거품이 없었다. 그러면서 묘하게 기품이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포워더를 한다는 것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던 나에게는 특히, 유능함과 강한 생활력을 의미했다. 다만, 사람을 망치기가 쉬운데 그녀의 성품은 선했다. 그녀는 알바와 학자금을 통해 스스로 대학을 다닌 (나와는 사뭇 다른) 역량을 갖춘 유능한 커리어우먼이다. 본인이 배려받고 싶은 만큼,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숙녀다. 나는 카페로 넘어가기 전에 식당에서 이미 그녀에게 에프터를 청하겠노라 마음을 정했다.

  

 바로 다음날 이어진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이야기했다. 살짝 그녀와 손이 닿았을 때, 돌이켜보건대, 나는 잠시 미래를 본듯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정해진 수순처럼 재키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내 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가 되었다. 단언이 아니라 확언이다. 올해 4월 그녀에게 프로포즈했고 내년 5월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될 것이다.


 나는 모자(母子)의 사랑을 안다. 출생 이후 어느 시점 동안 나는 어머니의 무한한 지원과 보호의 대상이었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나이 든 어머니에게 마땅한 도리와 효도를 해야 하는 역할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재키와 나는 연인이었지만 처음부터 배우자 Candidate임을 전제로 만났기에 부부의 사랑을 했다. 부부는 동반자다. 그녀와 나는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이다. 가끔 그녀는 어깨가 무겁냐고 장난스럽게 묻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 길을 너와 함께 걸어 좋다고, 자신 있다고.


 운전하는 어느 출근길에, 교장 선생님이 머릿속에 등장하여 말을 거셨다.

"그래, 미친 듯한 사랑을 해보았니?"

 남자는 질문을 받으면 잠시라도 숙고를 하고 최선의 답을 해야 한다.

"뜨겁고 이성적인 사랑을 했어요."

 그럼 내 머릿속의 교장선생님께서는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시고 사라지신다.


하느님, 어려서부터 당신을 알던 시몬이나이다. 저에게 이 아이를 부양할 능력을 주시고, 옆에 있어줄 건강을 주소서. 그로써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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