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자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야겠지만

by 알렉스

미국 유학시절, 철학과 사무실 앞에 붙은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SAT 고득점을 받은 현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전공이 철학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판촉의 취지에서 붙여놓은 기사겠지만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 나에겐 퍽 신선한 뉴스였다.


나의 살던 고향(그리고 지금 사는 이 나라)은 문이과의 인기전공이 일관되게 한 줄로 서있었다. 예컨대 이과생들은 의대 > 공대 > 자연대 순서겠고, 문과생들은 법대(로스쿨이 생기며 없어졌지만) > 상경대 > 사회과학대/어문계 > 인문학 순서일터다. 서울대를 가도, 연세대를 가도, 지방의 어느 사립대를 가도 통상 이 순서대로 줄을 서있다.


우수한 성적을 가진 미국 학생들이 철학과나 사회학, 영문학 (그들에겐 '영' 떼고 문학이겠지만)을 전공으로 주저 없이 선택하는 이유는 철학자나 문학가가 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러한 콘텐츠(학문 이상의 의미로서)를 접하며 다져진 인간으로 거듭남이 자신이 꿈꾸던 비전 (법률가, 정치인, 배우)으로의 길을 더 넓게 닦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학부 넘어 직업대학원을 거쳐야 하는 미국의 문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꼭 전공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생업을 다룸에 있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나 라이센스로 증빙되지 않는, 내면의 깊음과 나만의 콘텐츠를 갈고닦는 건 도움이 된다. 고전문학이나 철학책만이 그 도구일 필요도 없다. 역사에 관심을 갖거나 타국의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등 별도의 생업을 가진 개인의 취향이 건강하게 지속되면 또 다른 전문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한 곳의 직장에서만 평생을 헌신하던 시절이 아니다.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던 시절도 저물고 있다.

오타쿠와 부캐가 밥벌이를 (심지어 잘) 하는 시대가 왔다.

즉 작금의 우리는 하나의 주특기만을 쥐고 살 이유가 없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양하게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는 표현을 썼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좋은 것은 기꺼이 배운다"는 일어 표현인 이이토코모리를 즐겨 인용했다.

단, 좋은 것을 "유용하고 쓸모 있는"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으로도 해석하자.


북미권 무역업으로 인생 1막을 마친 사람이 근현대 영문학을 강의한다면 어떨까.

아직 먼 이야기지만, 문민출신 군사 전문가가 국방부 장차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채로운 여러 인생들의 이야기가 들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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