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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Oct 20. 2021

루돌프는 화물연대에 가입치 않았다.

본사직원의 현장출장

11톤 차량이 들어온다.

막 9시가 되었을 뿐인데 벌써 3대째 차량이다.

11톤 차량에는 110*100*150 사이즈로 박스가 패킹된 렛이 16개는 실린다.


현지 바이어의 요구에 따라 선적은 팔레트 아니라 해제된 개별 박스로 진행해야 한다.

평소대로라면 한 팔레트에 최소 12개 박스가 쌓여있을 것이다.

저 한 대에 까대기 쳐야 할 박스가 200여 개가 된다는 소리다.

이미 밀려있는 화물은 그 몇 배에 달한다.

그것을 사람이 해야 한다.

현장에서 이것은 일상이다.


창고로 향하던 발걸음이 돌려진다.

서울 사무소 직원인 내가 끼어든다고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비숙련 노동자의 참견은 전문가의 화를 부른다.


담뱃갑에 손이 갔다.


불을 붙이며 어느 한쪽 구석으로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볕 좋았다. 인천국제물류센터는 낮은 건물들 틈에서 이렇게 좋은 볕을 쬐며 흡연을 할 수 있는 게 좋았다. 자신은 가끔 들릴 뿐이지만, 현장 직원들이 모두 골초가 된 이유 이 좋은 볕이 주는 위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우, 대학교 문학 동아리에서 담배를 배웠다.

작가가 되고 싶은 10대 시절의 이상을 좇아 문학, 그리고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현실을 따라 영어.

이 둘을 조합하니 그의 전공은 영문학이었다.

회색분자같은 그의 선택은 아서 밀러 같은 극작가나 김수영 같은 시인으로는 길을 내주지 않았다.

다만, 항공화물사에 취업해 수출업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요즘 불만이 많은 모양이야. 물동량도 많은 성수 긴데 한정된 인원으로 우리가 안 하던 콘솔 사업까지 하려니까 말이야. 내려가서 고기랑 술 좀 사 먹이고 달래봐. 그래도 본사에서 성의를 보이면 좀 낫지 않겠어."


작일 저녁에 호출되어 가보니 골프채로 스윙하는 새를 보이며 특명을 내리는 사장이었다.

직원들은 그를 산타라는 은어로 불렀다.

산타 같은 외모에다가 국제물류업에 종사하는 가엾은 루돌프들을 가차 없이 굴리기 때문에 붙여진 은어였다.


'X팔놈'


고생은 현장 직원에게 시키고 사죄는 사무직원에게 시킨다.

자신은, 지금쯤 어제 연습하던 스윙을 필드에서 여지없이 뽐내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 봐야 애꿎은 잔디만 패면서 농사나 지을게 뻔했지만.


"이러니 파업 얘기가 나오지. 사람을 더 구하려 해도 센터에 소문이 다 났어. 화물 예민하고, 작업 많고, 화주 말 많다고. 그러니 누가 오겠어."


현장소장 밑의 차장이 인사처럼 건넨 말이었다.


"과장님, 여기 계십니까."


돌아보니 어깨에 수건을 두른 건장한 체격의 현장주임이었다.


"어, 주임님."


민망하게 인사를 받으며 불을 건넸다. 서울에서는 해외 바이어를 상대하고 국내 화주업체들의 진상을 받아주며 온갖 문제를 해결해도 야전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일 뿐이다.


"힘드시죠, 저희가 늘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드릴 건 없지만, 그래서 더 죄송하네요."


과장인 내가 같은 회사 주임에게 사죄한다.

시켜서가 아니다. 적어도 진심이다.


갑을관계는 을이 만든다고 했던가. 화주와 바이어의 요구는 날마다 다채로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물류회사고, 운송회사다.

화물을 건네받아 통관하고 비행기에 선적해주면 그뿐이다.

박스를 열어 내품을 검사 해달라, 서류를 몰래 갈아달라 등의 바이어의 요청이나 포장/라벨 작업을 물류센터에서 대행해달라는 화주의 요청에 의무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러니 루돌프들이 산타만 보면 이를  갈지."


현장주임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낄낄거리며 말했다. 성격은 불같지만 기본적으로 순박한 사람들.

그게 현장 사람들이었다.


"X 같죠? 과장님도."


한 마디 물음에 목소리가 떨릴 뻔했다.


"아닙니다. 어려운 건 현장이 다해주시는데"

"에이. 과장님 군대 이 근처에서 나왔더랬죠?"

"네, XX사단 보수대요"

"세상 편한데 계셨구먼. 보직이 뭐였어요?"

"그때도 병참이었죠. 그래서 지금 물류밥 먹나 봐요."


집안 전통이었다. 군대에서 부여된 병과에 따라 사회에서 먹고 살 거리를 찾게 되더라는 것은.




"야, 과장아. 너 왜 루돌프가 파업을 안 하는지 아냐?"


얼굴이 벌겋게 취기가 오른 현장소장이 고기가 구워지는 연기 틈으로 눈빛을 쏘며 물었다.


"산타 새끼가 그 많은 짐을 싣고 채찍질하면서 지구 한 바쿠를 X같이 굴리는데, 왜 파업을 안 하는지 아냐고, 인마"


허허 웃으며 "아,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라고 한다.


"그게 인마. 프로정신이야. 루돌프도 꼭 산타가 시키니까 그 일을 하는 건 아니란 말이야. 산타가 고용을 해줬다 뿐이지. 자기도 이 업에 대한 뭔가, 프라이드가 있으니까 자신감이 있으니까 X 같아도 일단 선적하는 거야. 야, 전 세계 애들이 기다릴 거 아냐.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걸 자기가 아니면 XX 누가 운송하냐고, 인마.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먹고살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고. 프로정신이 있다 이거야 프로정신."


사장도 한때 루돌프였다고 한다.

일문과 출신인 그는 아시가루로서 관백의 자리까지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개인적으로 존경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히데요시의 망령을 쫓다가 그의 노망까지 닮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리기사를 불러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회사를 굴리는 게 더 이상 사장의 저력이 아니라 현장의 프라이드임을 느꼈다. 내일, 나는 아마 당분간 파업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이라고 보고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 용병술 덕이 아님은 속으로 삼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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