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여름을 맞았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싶다.
그늘 한 점 없는 골목길을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너무 덥다고 말하며 잡고 있던 손을 슬쩍 놓고는 한쪽 다리에 땀을 닦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후다닥 팔짱을 끼며 카페로 달려가자고 할 사람은 너였을까, 나였을까.
유독 추위를 타던 너와 겨울 한 철을 지나 봄을 맞이하면서 두터운 이불을 두고 옥신각신했었는데, 요즈음 선풍기 없이는 잠 못 들 거 같은 여름밤이 찾아오면 그날들의 기억이 존재도 불분명한 잡념을 만든다. 가령 자정이 넘어서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덮고 잠든 너를 두고 거실로 나와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새벽바람을 이불 삼는 환영 같은 것들.
진작에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사랑과 그 시간을 빨리 비워야 할 텐데, 냉장고 하나 없는 텅 빈 상온의 공간 속에 녹슬어가고 있는 통조림은 여간 비릿한 것이 아니었다.
설마 통조림이 상하겠냐며 툭툭 건드려보는데 나도 모르게 뚜껑을 따놓았었나 보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만년이었으면 좋겠다던 바람은 참 헛된 것이었다. 사랑의 비릿함은 유통기한의 유무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