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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Jul 11. 2021

나의 계절, 너의 겨울

일곱 번째 이야기

 '계절'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생각나는 날씨가 있습니다. 그날의 온도가 떠오르고, 그날의 추억에 스며들 때면 애먼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그런 날.


 저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아니 겨울을 늘 그리워합니다. 단 제 생일이 겨울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한 달 전부터 집에 트리를 장만하기 시작할 정도로 그 분위기를 동경합니다. 새까만 어둠, 새하얀 입김의 추위, 고요한 거리에 가끔씩 파동을 울리는 어떠한 종소리들. 저의 계절은 겨울입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가로등 불빛을 조명삼아, 근처 빵집에서 급하게 사온 딸기 케이크를 내밀던 손이 사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런데 그 사람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 벤치에 앉아 어서 케이크를 먹자고 했습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손등은 빨개지고 둘 다 오들오들 다리를 떨었으면서. '고마워'라는 말은 제겐 너무도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랑'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가장 첫 화면으로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저의 겨울은 그렇게 사랑이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겨울의 적막함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적도 있으나 그렇다고 여름을 사랑할 수도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꼬박 반년 정도 되었을 무렵, 세상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아침. 문을 열고 나오는데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어제랑은 너무 달라서, 그렇게 가을이 오나보다 느껴졌을 때. 그때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가을바람은 그렇게 갑자기,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중해졌습니다. 그래서 잘 추억하고, 잘 떠나보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덤덤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 가는 것은 신이 주신 망각이라는 선물이 만든 환상이지 않을까? 싶지만 그 겨울로부터 받은 많은 선물에 이렇게라도 답하고 싶습니다.


그런 저는, 지금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 걸까요? 겨울, 가을, 그리고 여름. 저는 이제 저의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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