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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Jul 18. 2021

고이 접어, 나빌레라

여덟 번째 이야기

꿈을 꾸었다. 야구공을 힘껏 던지는데 팔꿈치가 너무 아팠다. 두어 번 던졌는데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글러브를 내려두었다. 아픈 팔을 매만지려 하자 잠에서 깨었다.

꿈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그 통증이 선명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꽤나 슬픈 꿈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허공에 팔을 휘저어보고 내 팔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한 후에야 편하게 잠이 든다. 이는 쉐도우 피칭이라는 야구 훈련 중 하나로, 본격적인 피칭 연습을 하기 전 팔근육을 이완시키고 밸런스를 잡기 위해 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시작이 아닌 끝을 위해 빈 허공에 공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야구하는 꿈을 꾸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제 그림자마저 보이지 않는 어둔 필름 속에 꿈같은 모습들을 열심히 밀어내고 있다.


팔목이 부러지고도 부모님 몰래 야구를 하러 갈 만큼 좋아했다. 팔이 퉁퉁 붓고도 타격을 하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 발로 병원에 찾아가 의사 선생님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저 좋았다. 생애 처음으로 안타를 쳤던 배트는 그 뒤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애지중지 챙겨두었다. 잘 있나 챙겨 본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집 한편에 비스듬히 서있다.


끝내 야구를 그만둔 이후 참 애석하게도 그만큼 사랑했던 것을 아직 못 찾았다. 그 뒤 모든 길에 서서 중도를 걷고 있는 나는 이것이 축복이기도, 억겁에 걸친 슬픔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늦은 밤에도 팔꿈치를 만지작 대는 것은 미련이 아니라, 한번 더 날아오르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는 것이 더 가깝다. 그 꿈을 밀어 넣는 이유는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맞이하기 위한 일종의 명상 같은 자기 정리이다.


나는 아직 한번 더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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