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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Mar 04.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17

론다


헤밍웨이를 찾아 협곡에 가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쫓아다닌 지도 스무날이 지나가고 있던 중 잠시 쉬러 말라가에 왔던 나는 다시 원래 목표에 충실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말라가가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 도시 세비야는 세르반테스가 한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이곳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돈키호테>에도 세비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며 세르반테스는 <세비야의 건달들>이라는 소설도 쓸 만큼 이 도시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세비야는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쫓는 나에게 많은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도시임이 분명했다. 그렇다. 내가 말라가에 온 것은 단지 지중해에 몸을 담그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쫓아가기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라가에서 세비야 행을 알아보던 중 두 도시 사이에 매우 아름다운 도시가  또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이름은 '론다'. 미국의 유명 여자 격투선수 이름이 아닌 스페인 남부의 협곡 도시 이름이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로도 유명했는데 20세기 문학의 거장 헤밍웨이 옹의 흔적을 찾아가 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하여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쫓는 여정은 미뤄지고 일단 헤밍웨이를 만나고 가기 위해 삼천포 아니 론다로 빠지게 되었다.


말라가에서 론다는 버스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문제는 내가 체크를 못했는지 그것밖에 없는 건지 구입한 표가 완행이었다. 그리하여 스페인 남부의 여러 도시를 관광버스 타고 유람하듯 지나가게 되었다. 미하스, 마르베야, 등 이름도 생소하지만 나름 운치 있는 휴양도시들이었고 창밖으로 지중해가 보이는 것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도시 한 곳에 설 때마다 꾸역꾸역 타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인해 곧 버스는 만원에 가까워졌고 나는 옆자리에 둔 배낭을 품에 안은 채 한 시간 남짓을 더 가야 했다. 그렇게 해안을 따라 달리던 버스는 곧 내륙으로 머리를 틀었고 그때부터는 슬슬 고도가 올라가며 점점 지리산 노고단 가는 듯 꼬불꼬불 국도가 이어졌다.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내가 협곡 도시 론다로 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론다로 향하는 협곡의 시작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론다, 오! 론다는 정말이지 신기하고 기막힌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협곡에 떡하니 자리해 천혜의 요새였으며 구 도시와 신 도시 사이를 잇는 누에보 다리는 절경 중에 절경이었다. 왜 릴케와 헤밍웨이가 극찬한 곳인지 알 것 같았고 나 역시 문인 후배로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문인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냥 릴케와 헤밍웨이와 나를 엮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묘사를 해본다).


론다에서 역시 숙소를 잡고 일박하기로 했다. 여행 정보를 살펴보니 세비야나 말라가에서 당일치기로 론다를 보고 가곤 한다는데, 이곳은 낮에 잠시 들렀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강력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론다의 석양은 환상적이고 론다의 밤은 아름다우며 론다의 아침은 경외감이 든다. 이것이 겨우 일박을 한 내 경험이고 석 달을 이곳에 머문 릴케는 로뎅에게 부친 편지에 이렇게 썼다.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


협곡 론다와 누에보 다리의 위엄



역시 시인의 묘사답다. 그리고 헤밍웨이, 그 메소드 거장은 이곳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도시'라고 표현했다. 그는 론다에 머물며 이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내가 헤밍웨이를 '메소드 거장'이라 부르는 것은 그가 몸소 체험하고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1차 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고 아프리카 야생 사냥 체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란 에세이를 썼으며 쿠바에 머물며 바다낚시를 즐긴 뒤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역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경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이 작품의 배경이자 집필 장소인 론다는 그에게도 작품에게도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론다에서의 1박. 푸른 노을이 지던 구시가지 밤거리.



그래서일까, 다음날 오전 산책에서 ‘파세오 데 헤밍웨이’를 걸었다. 헤밍웨이는 론다에 머물 때 파라도르(스페인 정부 주도로 고풍스런 옛 건물을 호텔로 만든 국영 호텔)에서 묵었는데, '헤밍웨이 길'은 그 파라도르에서 시작해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짧지만 탁 트인 전망의 길이다. 말하자면 ‘헤밍웨이 산책로’. 나는 다음날 아침 관광객이 모두 잠든 고요한 그 거리를 걸으며 협곡의 웅장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체험했다. 길을 걷다 보니 헤밍웨이와 나 사이의 여러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나 역시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고 소설을 쓴 것처럼 스페인에 와 돈키호테를 쫓으며 소설을 써보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 역시 헤밍웨이와 같은 소설가이고, 같은 남자고, 같은 술꾼이고...


비교하기는 참 민망하지만 그래도 메소드 거장의 발치라도 쫓아보려는 노력은 과히 나쁘지 않다. 나는 헤밍웨이 산책로에 붙은 그의 얼굴이 그려진 타일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선배님, 존경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니 제게 그 영험한 필력의 1퍼센트라도 물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거기서 헤밍웨이의 대답을 들었다.

“어서 세르반테스에게나 가거라 이 돈키호테 같은 놈아.”


RONDA. PASEO DE E HEMINGWAY


RONDA. PASEO DE E HEMINGWAY - 론다 전망대



그리하여 나는 세비야로 갈 채비를 갖추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세비야도 식후경. 어제 이곳에 온 후 샌드위치와 까르푸 즉석식품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운지라 오늘 점심만큼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식당들마다 사람들이 그득 들어차 있는지라 마땅한 곳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주말! 론다에서는 유난히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로 추정되는 키 큰 유럽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이들도 단체여행을 하는지 마치 허연 월계관을 쓴 나무들이 걸어 다니는 듯 껑정한 키로 십여 명이 어슬렁거리며 식당을 채우고 계셨다. 한편으로 중국 관광객들 역시 아시아가 밀릴 수 없다는 듯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론다에 중국어 회화를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주눅이 든 나는 오직 그들을 피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헤매기 바빴다.


거리에 잔뜩 깔린 테이블도 만석이고 실내도 들어찼다. 웨이터들조차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곳에서 동양인 사내가 혼밥 할 좌석 하나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최소 입장 단위가 두 명이라도 되는 듯 판매 효율이 떨어져 보이는 혼밥족은 도대체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택시 따불을 부르듯 메뉴 두 개 먹겠음이라고 외치기라도 해야 하나, 이거 이러다가 오늘도 까르푸 표 찬 음식으로 론다를 기억하고 가야 하는 것인가? 안 돼! 돈키호테의 식당까지는 못 찾아도 나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단 말이다.


그러던 중 관광지 거리 한 복판 야외테이블에 자리가 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웬 타파스냐, 놀라며 허겁지겁 일단 차지하고 보니 이 가게는 절반밖에 손님이 차 있지 않았다. 뭐지? 그때 밝은 표정의 스페인 처자가 메뉴판을 가지고 다가왔다. 물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건네는 메뉴판을 받아보니 요리 사진이 있다. 음. 주문은 쉽겠군. 게다가 모든 음식 6.5유로 균일이다! 점심에 먹는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도 싸 봐야 10유로 정도인데, 뭐지? 이곳은 스페인의 김밥천국인가? 메뉴판을 살펴보니 감자튀김과 샐러드 모두 기성품을 사용하는 듯했다. 대구 튀김은 생선까스였고, 미트볼 역시 전자레인지가 아닌 오븐에 데워주면 다행일 분위기였다.


그리하여 나는 십오 분 뒤 한국의 호프집 모둠 안주에 곁들여지는 냉동 감자튀김과 오뚜기 즉석음식을 데운 듯한 미트볼에 띤또 데 베라노(레드와인에 레몬과 탄산을 넣은 음료)를 홀짝이게 되었다. 그나마 한국 카스와 판박이인 이 동네 까냐(생맥주)를 시키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띤또 데 베라노만이 이곳이 스페인의 김밥천국이 아닌 론다의 관광지 식당임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웠어도 따뜻한 음식이다 위안 삼으며 음식을 먹다 주위를 살피니 나 말고도 혼밥족이 두 세 테이블 있었고 안쪽에서는 이탈리아 할머니와 할아버지 한 무리가 대충 의사소통이 되는지 이탈리아어로 스페인 처자에게 주문을 넣으며 수다 삼매경 중이었다. 역시 스페인의 김밥천국이 확실한 듯했고 어느새 직원들에게 참치김밥 마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졌다. 그래도 데운 음식이 배에 차자 속이 편해졌고 스페인 처자의 친절한 응대도 마음에 들었기에 팁을 줄 요량으로 계산대에 섰다. 하지만 10% 봉사료가 포함된 음식 값을 확인하고는 팁을 감추는 팁을 발휘하고야 말았다.


환상적인 론다에서의 신박한 1박 2일을 그렇게 마치고 세비야 행 버스에 탑승했다. 다행히 이번엔 직행이었다. 세비야에서 론다까지는 160킬로 정도니까 기사님이 80킬로만 밟으면 두 시간 도착 거리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 론다 협곡을 버스로 하강하며 경치에 빠져들려 했으나 식당을 찾는 수고로 노곤했는지 곧바로 수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고 버스는 세비야 시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번 기사님은 다른 스페인 기사님보다 더 한국 기사님 스타일임을 확인하며 눈을 비볐다. 곧 도심에 위치한 산 세바스티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세비야였다.


RONDA A LOS VIAJEROS ROMANTICOS(낭만 여행자들의 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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