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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Mar 06.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18

세비야 1


세비야의 세르반테스



2015년 늦가을, 그러니까 4년 전에 이 도시에 온 적이 있다. 결혼한 지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와 도착한 첫 도시였다. 보르도에서 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고 세비야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이용해 시내에 들어와 내린 곳이 바로 여기 산 세바스티안 거리였다. 4년 만에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 다시 선 나는 실로 깊은 감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허니문의 여정에 오롯이 자리한 세비야! 공짜 타파스에 인심이 푸짐하던 세비야! 기대 이상의 숙소에 절로 감탄이 쏟아진 세비야! 4년 간의 결혼생활을 무사히 지속해 왔다는 것에 대한 경외감! (이 문구가 결혼 생활에 타격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자기 검열만큼 나쁜 것은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아무튼 세비야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맹주. 플라멩고와 투우의 본고장. 스페인 남부 도시의 장단점을 모두 갖춘 곳. 스페인에서 제일 잘 사는 동네라고 알려진 곳. 그리고 세르반테스가 생전에 머물며 세금징수원 생활을 하(다 감옥까지 갔)던 곳. 세비야는 언뜻 보기에도 풍족하고 여유가 넘친다. 유럽 3대 성당이라는 '세비야 대성당'이 있고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한 '알 카사르'도 있으며 김태희가 플라멩고를 춘 '스페인 광장'도 있다. 고대부터 이슬람 시절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남부 지방의 거점 도시였기에 역사와 관광의 중심지로서의 면모가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이 도시 중심부를 장악한 채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4년 전에도 그랬고 그 와중에도 볼 건 다 보려고 아내와 열심히 관광을 다닌 기억이 있는 도시다.

세비야 대표 3선 엽서(대성당, 스페인 광장, 알카싸르/구글 이미지)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이번에 내가 세비야를 찾은 건 오직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나는 과감히 다시 봐도 감탄을 머금을 것이 분명한 대성당과 알카사르를 스킵한 채 스페인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스페인 광장에 가서 4년 전에 방문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돈키호테의 흔적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것은 당시 아내와 진땀을 흘리며 길을 찾던 기억이 또렷하게 각인된 것인지 산 세바스티안 거리에서 자동항법처럼 스페인 광장을 향해 구글 지도 한번 안 켜고 발걸음이 작동되는 것이 아닌가. 역시 대단한 아내와 진땀의 힘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늦가을이었지만 점퍼를 걸치지 않아도 될 만큼 따뜻한 기온이었고 이번에는 초가을인지라 많이 더웠다. 반팔을 입었음에도 등에는 땀이 맺혔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드는 햇살이었다. 말라가와 론다에 있을 때는 살짝 흐린 날씨였는데 세비야는 내가 이 지방의 맹주고 내가 이 지방의 가장 핫한 곳이라고 위엄을 부리듯 뜨거운 기운과 따가운 햇살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스페인 광장. 여전히 웅장함이 넘치고 관광객도 넘치고 흥도 넘치고.


그리고 당도한 스페인 광장. 여전히 넘치는 관광객과 호객꾼, 플라멩고 공연자와 연주자, 구걸하는 집시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화려한 복장의 거인이 양팔을 벌린 듯 웅장하게 뻗은, 광장을 둘러싼 건물의 위용이 여전히 이곳이 세계 곳곳의 스페인 광장 중 짱을 먹는 곳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광장 건물 벽면에는 스페인 각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타일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는데, 나는 건물 한쪽 벽면에서부터 그 타일 모자이크를 살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 이곳에 오기 전 알아낸 바에 따르면 타일 모자이크는 구역별로 스페인 각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고 했다. 세비야, 말라가, 사라고사, 톨레도,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그라나다... 등 스페인 각 지방 도시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는 흠칫거리며 타일에 그려진 풍경을 살폈다. 전투 장면, 왕가의 행진, 다양한 축제, 지역 설화 등 다채롭게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사건이 묘사되는 가운데 마침내 내가 찾던 풍경이 등장했다.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 산초 판사의 뒷모습이 보이고 멀리 라만차의 평원 위에 여러 대의 풍차가 서 있는 그림이었다. 갑옷을 입고 투구까지 쓴 돈키호테는 말 위에서 창을 들어 보이며 마치 산초 판사에게 저 거인들을 보라고 가리키는 듯한 포즈였다. 나는 마치 숨은 계시라도 찾을 기세로 타일 그림 속을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스페인 광장을 다시 찾은 이유 - CIUDAD REAL 타일 속 세르반테스 코드 찾기


타일 모자이크엔 지역명 CIUDAD REAL(씨우다드 레알)이라는 라만차 지방 주요 도시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림 왼쪽 아래 두루마리엔  “QVE YO VOY A ENTRAR CON ELLOS EN FIERA Y DESIGVAL BATALLA”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돈키호테를 찾는 내게 암호와도 같은 주문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그것을 구글에서 검색했다. 그러자 구글은 “QUE YO VOY A ENTRAR CON ELLOS EN FIERA Y DESIGVAL BATALLA”로 찾겠다고 다시 제안했다. 분명 QVE로 보였는데 QUE가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타일 그림을 그린 자가 손이 곱아 U를 V로 잘못 썼거나 돈키호테 코드를 찾는 나를 방해하려는 누군가의 속셈이라고 생각하며 구글 신의 제안대로 검색했다. 곧 돈키호테 관련 텍스트와 사진이 줄줄이 엮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역시 특별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에도 구글 신을 믿고 스페인어-한국어 번역을 돌렸다. 그러자 이러한 문장이 나왔다.


“내가 파이어와 데미지 배틀에서 그들과 함께 들어갈 것.”


뭔가 굉장한 것이 나왔다! 이것은 한국 TV 속 온라인 게임 홍보 광고에서 자주 보던 외침이 아니던가! 확실히 돈키호테는 고전 중의 고전답게 현대의 게임 세계에도 활발하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글귀를 그림과 함께 살피니 이것은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거인으로 오인한 뒤 놈들에게 돌진하겠다고 외치는 구절로 유추되었다. 물론 스페인어 능력자에게 묻거나 돈키호테 원문을 찾아 번역본과 비교하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으나, 나는 번역마저 돈키호테스러운 ‘파이어와 데미지 배틀에서 그들과 함께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반드시 확인해 보고 싶었던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 타일 그림의 사진을 담은 나는 늙은 기사가 힘차게 전진하듯 돌아서 광장을 나왔다.


타파스의 고향인 안달루시아를 기리며 타파스에 까냐를 먹고 다시 시내로 접어 들어갔다. 관광지는 들르지 않겠다며 다시 시내로 향한 건 그곳에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있다는 첩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앞서 스페인 광장의 돈키호테 타일 그림은 이곳에 온 목적의 전식에 불과하다. 본식은 바로 이번 세르반테스 흉상 알현이다.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에서는 세르반테스 동상이 공사 천막에 둘러싸여 갇힌지라 마주할 수 없었다. 대신 세르반테스 길의 끝에 자리한 광장에서 겨우 그를 알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세비야에 그의 흉상이 하나 더 있다는 소식에 이곳에 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르반테스는 한때 세비야에서 지내며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징수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공금을 횡령한 죄로 감옥까지 가게 되는데,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필생의 역작을 구상하게 된다. 바로 <돈키호테>다. 지금 내가 가서 알현하는 세르반테스 동상이 위치한 곳은 과거 세르반테스가 갇혀 있었던 감옥 건물 앞이며 바로 <돈키호테>가 잉태된 곳이다. 이 얼마나 신성하고 오묘하며 영험한 발자취가 아닌가. 나는 경건한 마음자세를 갖추고 요리조리 개똥을 피하며 세비야의 세르반테스 동상을 찾아 시내로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도착한 곳은 세비야 대성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골목이었다. 관광객 인파를 헤치고 대성당을 지나 쇼핑거리에 다다른 뒤 구글 지도에서 확인한 골목으로 틀어 한 은행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 은행이 바로 400년 전 세르반테스가 갇혀있던 감옥 건물이었다고 한다. 감옥이 은행이 되었다니, 마치 세르반테스의 영혼이 평생 없이 산 자신을 위해 은행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를 찾아 은행 앞으로 돌아가 보았다. 곧 은행 앞 거리 한 켠 작은 공간에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 이렇게나 빨리. 그런데 큰 기대를 품고 온 내 예상과 달리 흉상 부근은 소박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한 풍경이었다.


감옥처럼 쇠창살이 둘러 쳐진 은행 옆 세르반테스. 단상에 적힌 이름이 그의 흉상임을 인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심히 그 앞을 지나고 있었고 흉상 옆에는 개똥인지 오바이트인지 지저분한 것이 널려 있었으며 관광지 부근이었으나 관광객은커녕 상인들 하나 없는 그냥 평범한 거리의 평범한 동상이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빌딩 옆에 구색 갖추기로 조각상 하나 세워 놓은 걸로 보일 따름이었다.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청동 세르반테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은행 앞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 몰골이다. 더욱더 마음이 짠해지고 안타까움이 몰려옴에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것을 보려고 마드리드에서 말라가와 론다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말을 바로하자면 몇 가지 개인적인 여행을 겸하며 왔는데...) 너무도 초라한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개똥을 옆에 두고 비둘기 똥을 맞은 채 딱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자신 대신 돈이 갇혀있는, 은행이라는 돈 감옥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왔다. 극동의 끝에서 당신을 찾아 유라시아 서쪽 끝에 자리한 이 도시까지. 그대는 결코 외롭지 않고 그대의 업적이 이곳에서 잉태된 것을 나는 칭송하며 당신의 초라한 동상에 눈도장을 찍고 묵념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남겨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슬픈 눈으로 개똥을 내려다보지 말고 하늘의 별 속에 영원히 거하시라. 감옥에서조차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죽어서야 다다를 수 없는 곳에 다다른 당신을 세상 모두가 기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에 머물던 시절은 그가 레판토 해전과 포로생활이란 고초를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전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그는 상이군인이었고 전쟁포로였으며 한물 간 소설가였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부 요인으로 신대륙에 가 일하고 싶었으나 고작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징수원으로 고용됐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세금징수원으로 일하며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횡령죄를 선고받고 감옥까지 가야 했다. 나이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한쪽 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 그 상태로 갇힌 감옥에서도 그는 꿈꿨다.


세비야. 세르반테스 흉상.


신대륙에 가는 꿈은 무너진 채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는, 장애인에 전과자에 불과한 늙은이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꿈꿨다. 바로 이곳에서.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크게 고개를 숙여 그의 흉상에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감옥에서도 꿈을 지켜낸 자의 영혼을 위해 건배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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