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인턴을 할 때의 일입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뉴욕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싶어서 지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경력을 쌓으면 한국의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그런 방식의 해외 경력을 쌓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여름 기간 2개월을 계약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케팅 관련 업무임에도 내부 커뮤니케이션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대외 업무는 전혀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니 잦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실수만 반복하자 저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몇몇 동료는 저를 의도적으로 따돌리기도 했습니다. 인종 차별이라기보다는 언어 차별이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은 동양인 남자에게 그렇게 우호적인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집과 회사를 반복했고, 거리를 걷는 것조차 부담이 되었습니다. 나 혼자 이방인이 되어 도시를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꾸역꾸역 1개월을 채운 다음 매니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디기가 힘들다고, 주변에 피해만 주는 것 같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부끄럽게도 눈물을 흘리면서 그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자 그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만두어도 된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난 아직도 당신이 인터뷰 때, 자격이 되지 않아도 이 직업에 지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지원했다는 말을 기억한다. 지금 그만두면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로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오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초심도 생각났습니다. 뉴욕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가 얼마나 설레고 또 열심히 준비했었는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삶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누군가가 저를 잡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더 버텨 계약했던 두 달을 채웠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 힘든 시간들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제가 정말 힘들 때 한 번 더 버티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두 달의 미국 경험은 저에게 훨씬 나은 영어 실력을 선물했고, 한국에 돌아와 세계적인 미국 기업의 한국 지사에 취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에게 용기를 주었던 그 매니저는 제가 지원한 한국 지사에 좋은 추천서를 써 주었습니다.
회사에 취업 후 몇 달 뒤에 한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습니다.
성공이 찾아오기 전에 잠시의 실패가 먼저 찾아온다. 패배가 우리를 잡아먹을 때, 가장 쉽고 논리적인 반응은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패배한 순간, 한 걸음 떼는 것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나폴레온 힐
누구나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힘든 순간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에 포기합니다. 그게 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소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한 걸음을 더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운을 모으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