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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아c Nov 04. 2024

어떤 아름다운 길은,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다.

20년 전, 미국에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1월의 약간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친구들과 스케줄을 짜두고 함께 움직였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고, 보스턴도 가고, 뉴욕도 가고,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가장 좋은 장소는 우연히 만들어졌습니다. 동부 여행을 하던 길이었습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졌고, 급하게 주유를 해야 했습니다. 주유소를 찾지 못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이름도 생소한 어느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주유소를 발견해서 주유를 하고 나오는 길에, 12월이 아닌데도 이미 예쁘게 크리스마스 치장을 한 작은 바를 발견했습니다. 저와 일행은 그 바가 왠지 마음에 들어 주차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무대에는 어떤 나이 든 여자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고, 나이 든 다른 남자분들이 밴드 연주를 하고 있었으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연주에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재즈 풍의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진심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와 노련한 밴드 분들의 연주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고, 저희는 그 바에서 추위와 시간을 녹였던 것 같습니다.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요. 그 순간이 약 한 달 간의 여행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약간 지나 중국 여행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동북 지역에서 짧은 여행을 하고 북경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얼빈에서 얼음 축제를 보고 북경에서도 마오쩌둥 기념관과 만리장성 등을 볼 예정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기차 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대련에서 북경까지는 약 12시간이 걸립니다. 지루할 만한 거리죠. 이 멀고 먼 여행을 피곤에 지쳐, 잠도 자지 않고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중간 정도 왔을까, 문득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해바라기 밭이 펼쳐졌습니다.


얼마나 광대한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해바라기 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5분을 넘어서 계속 보였습니다. 맑은 날, 해를 향해 일제히 얼굴을 들고 있는 해바라기의 노란빛 물결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제가 좋아하는 에롤 오잔의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길은,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다." 주유소를 찾아간 미국의 한 마을에서, 중국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본 해바라기 밭에서 저는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살면서 길을 잃은 적이 많았습니다. 힘들고 방황한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길들은 제가 그렇게 길을 잃었을 때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길을 잃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연한 것들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일이 많습니다. 다음부터 내가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면, 잃은 길에 나를 온전히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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