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재상 Alex Jun 13. 2017

어두운 인간내면과 본능을 까발리는 소름돋는 경험

(노 스포일러) 영화 엘르 리뷰, 영화, 폴 버호벤

엘르,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본능을 가차없이 까발리는 소름돋는 경험   (평점 9.5/10)


보고 나서 완전히 멘붕되었다! 이 미친 영화는 도대체 뭐지? 

미친듯이 좋아하는 폴 버호벤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문제작인데, 역시 녹슬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가 잘 안되어 영화 보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리뷰를 쓴다. 사람들이 숨기거나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을 민낯으로 발가벗기는 폴 버호벤만의 매력이 극대화되었다. 보고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름끼친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은 애교였군...  



영화 엘르는 한 중년여성이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장면부터 범상치 않다. 성폭행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는데 보통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방식과 다르다. 엘르는 성폭행 직후 장면이 쇼킹하다.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도 무덤덤하다. 그리고 최대한 티를 안내면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성폭행의 충격이 너무 커서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도 잠시, 영화 엘르에서 주인공이 당한 성폭행과 누가 범인인가는 단지 영화 엘르의 중심이 아니라 영화를 이끌어가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 중반부 조금 지나면 바로 범인도 밝혀진다.



엘르는 미스테리하다. 여주인공을 평생 트라우마로 몰아넣은 사건, 주인공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엮여있는 끔찍한 사건은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면 진실이 무엇인지 불분명해진다. 성폭행을 한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주인공 주변에 여러 용의자들을 배치해두고 다양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모든 것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뿌옇고 갑갑하다. 안개가 거치면서 주인공을 둘러싸 벌어진 일들의 범인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예상한 혹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범인으로 등장하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밝혀지지는 않는다. 겉으로 멀쩡해보이는 사람들이 내면에 간직한 어두운 본능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현실을 철저히 이용한다.



미스테리의 핵심은 주인공이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은 철저한 피해자로 보이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가 과연 피해자인지 의심하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오가며 그녀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점차 많아진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그녀가 진정한 '악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담백하게 벌어지는 배경 속에서 그녀가 오히려 도드러져 보이게 된다. 어느덧 영화인지 일상인지 불분명하게 되는데 그녀의 캐릭터가 너무도 일상적으로 느껴지게 되며, 영화라는 판타지를 벗어나 현실로 느껴지게 만들어진 그녀 캐릭터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럽기까지 한다. 폴 버호벤의 대표작인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은 정말 애교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영화 엘르는 불쾌한 경험이다. 폴 버호벤 감독이 가장 잘하는게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데, 엘르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되게 불쾌하게 만든다. 영화 엘르 보다 겉으로 훨씬 더 자극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어온 버호벤 감독이지만, 버호벤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영화 엘르 보다 더 불쾌하게 만든 영화는 없었다. 버호벤 감독의 이전작들이 겉으로 점잖은 척하는 허례허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관객을 신나게 조롱했다면, 이번 엘르에서는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곳곳에 "너 이런 생각도 해봤지? 진짜 그렇게 해보기도 했나? 왜 넌 정말 모든게 깨끗해?"라며 조용하고 점잖게 묻는다. 영화 속 일상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감독의 그런 질문들이 더욱 강력하게 느껴진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고 영화와 현실 사이의 갭을 무너뜨려놓으니, 관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영화 엘르는 일상 속 미스테리한 현실을 이용하고 관객을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오고 가게 만들면서, 영화를 보고 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이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현실 속 공포를 일상으로 가져오면서 말이다.


※ 주인공인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언급을 안할수가 없다. 그 어려운 캐릭터를 그렇게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아니 그녀 밖에 못할 것 같다. 영화와 현실의 벽을 허무는 완벽한 연기였다! 


엘르 (Elle, 2017)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랭 라피테, 앤 콘시니, 샤를르 베를링  



매거진의 이전글 주성치와 서극의 잘못된 만남, 원래 손오공 돌려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