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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상 Alex Jun 12. 2016

불편하지만 짜릿한 전복이 있는 코메디, 영화 아가씨

인간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충돌하는 에너지 넘치는 영화 (노 스포일러)

(평점 9.5/10)


사실 영화 아가씨는 포스터를 보고 이미 어떻게 진행될 지 대략적으로 다 짐작이 되었다. 스릴러 영화들은 스토리가 핵심이기 때문에 영화 보기 전에 아주 민감할 정도로 일부러 정보를 다 피하는데, 영화 아가씨는 최소한 나한테는 포스터 자체가 스포일러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기대하면서 봤고 그 기대감은 확실히 충족했다. 박찬욱 감독의 고상한 악취미와 예측불허의 진행을 좋아한다. 얼마전 곡성의 나홍진 감독의 악취미와는 결을 달리하지만 결국에는 층층이 휘두른 껍질을 벗기고 나면 숨겨졌다가 슬슬 드러나는 인간 본성과 사회의 허식을 산산히 깨면서 조롱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곡성을 보면서 곡성이 무섭지 않고 완전한 코메디 영화로 느껴져서 주위 사람들 말이 많았는데, 이번 영화 아가씨는 에로틱 스릴러나 에로틱 드라마 보다는 또다른 코메디 영화로 느껴졌다. 하다못해 요즘 장안의 화제인 수위가 상당히 높은 섹스씬들조차도 야한 느낌 보다는 웃긴 느낌이 더 강해서 낄낄거리고 싶은 것을 최대한 참았다.



나는 원래 강렬한 에너지와 개성을 지닌 각 캐릭터들이 마구 충돌하면서 이야기가 힘있게 예측불허로 진행되는 영화를 완전 사랑한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 자체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어서 점점 더 커졌다가 폭발해버린다! 스크린 밖으로 터져나오는 그 에너지를 사랑한다. 기대한대로 영화 아가씨도 그랬다. 상대적으로 '후견인' 조진웅이 다른 세 캐릭터 보다 비중이 적었기는 하지만 스토리 전개상 딱 정확한 분량에 카리스마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 캐릭터들은 한명 한명 찬탄이 나올 정도로 강렬했다. 모든 상황을 숨막힐 정도로 완벽한 미장센으로 배우까지도 영화 속에 꼭 맞춰넣어 바꿔 생각하면 갑갑할 정도로 영화를 통제하는 박찬욱 감독 스타일 안에서도 그 자체로 아우라를 내뿜는다. 하정우는 그 동안 보여줬던 모습들이 있어서 정말 연기를 잘했지만 잘했다는 정도인데, 김민희와 김태리는 와우 이런 배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김태리는 신인배우라서 감탄을 했고, 김민희는 이제까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는지 몰랐던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주요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서로 배신하고 배신 당하고, 이해관계와 감정변화, 그리고 본능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한땀 한땀 긴장을 쌓아올리며 이야기는 거기에 맞춰 급선회를 반복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 취향저격한 영화 아가씨는 사전에 갖고 있던 기대감을 충족하면서 그 이상을 선사해서 오랜만에 짜릿한 영화를 만난 기분이다. 최근 몇년 동안에 '나를 찾아줘' 정도만이 이런 내 기대치를 충족시켜줬었는데 말이다.




영화 아가씨는 터질 듯 터질 듯 무언가 숨겨져 있는 비밀을 함께 찾아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밝혀지는 비밀들이 영화 아가씨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다. 영화에 에너지를 쌓는 또다른 장치이기도 하다. 그 비밀들이 악취미로 가득 차있는데, 영화 진행중 단서들을 꼼꼼히 깔아놓아서 아주 쇼킹할 정도는 아니다. 어찌보면 세상과 인간의 위선와 허울을 비웃고, 의식과 상식의 전복을 위한 흥미로운 장치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라스트에 굳이 또 나오는(?) 섹스씬도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분명 악취미인데 사람을 낄낄 거리게 만든다. 혹은 관객들을 또다른 관음증 환자로 만들거나 함께 즐기게도 만들어 관객 자체를 조롱하기도 한다. 관객이 이 불편한 요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관객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감독과 함께 그 사람들을 조롱하게 만든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몇몇 영화처럼 모든 관객을 조롱거리로 깔아뭉게지 않는 박찬욱 감독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영화 아가씨의 영상과 음악, 편집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장면장면 감독이 정확하게 의도한 이미지와 메세지를 전달하면서 관객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한다. 쓸데없는 장면, 대사 없이 완벽하게 꽉꽉 채웠지만 효율적이다. 무엇 하나 의미없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명 화가들의 명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들도 앵글과 구도 하나하나가 감탄하게 만든다. 너무 모든 것을 딱 100%에 맞춰서 오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빈틈없이 만들어서 영화가 얄밉게 느껴질 정도다.


불편하지만 짜릿한 전복이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영화가 바로 아가씨이다!


※ 소문대로 영화 아가씨의 노출과 섹스신 수위는 횟수나 소재, 연출 모두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성적 쾌감을 자극하는 에로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야하기는 하지만 웃기거나 의미가 담겨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야한 것에 집중할 수 없다. 아니 그걸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의 의식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어놓았다. 햐~ 정말 영리하다, 정말!


※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영화 아가씨에도 김민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배우가 나온다. 곡성 때도 느꼈는데, 아역 배우들이 그런 대사,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역 배우들의 심리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앞으로 아역배우들에게 이런 연기들은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라는 판타지와 메세지를 앞세워 성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게 만든다.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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