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쓴 다음날부터 펼쳐진 새로운 고민, “어른의” 현실들
2018년 어느 뜨거운 늦여름,
나는 2년 간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뤘다.
바로 내 이름으로 "서울 아파트"를 산 것!
2016년 하반기 결혼을 준비하며 한번 놓친 '매수 타이밍'은,
2017년과 2018년 상반기 두 번의 "집값 거대 폭등기"를 타고
아득히 손이 닿을 수 없는 저 멀리로 떠난지 오래였다.
혹시나 하는 아파트 실거래가는 가상화폐 불장처럼 '주말을 지나면' 치솟았고,
온라인 매물을 방문 예약하고자 공인중개사무소에 전화를 걸면,
"그 물건 이미 나갔어요"는 야속한 답변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1년 전만 해도 그 물건이 나갔어도 '바로 다른 물건'을 제안하던 그들은,
이제는 본인들도 손에 쥔 매물이 없다며 아쉽다는 입장을 표했다.
글을 쓰는 2024년 4월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분들 입장에선,
'무슨 고전 영화에서 보는' 말씀이시냐고 할 수 있을만큼- 분위기가 지금과 달랐다.
"꼭지에 사더라도 좋다.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서울 아파트를 꼭 사고야 말겠다"는,
생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든 내 의지를 가지고, 몇 번의 매수 실패를 겪고난 뒤
가장 값지게 아내와 내 이름을 새겨 넣은 아파트를 얻게 되었다.
서울 아파트를 '쉽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걷어 차버리고,
2년이 지나 악전고투의 자세로 마침내 아파트를 사게 된 이야기는
아래의 브런치북에 담겨있음(총 10개 에피소드)
https://brunch.co.kr/brunchbook/flyaway
2016년 가을, 지금의 아내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공인중개사무소와 아파트를 보러 다닐 때는
'터무니 없이 비싼(`24년 현재에 비할바 아니지만)' 아파트를
천문학적인(`16년의 내 기준으로) 부채를 들여 매수한다는 가정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나는 지극히 '투자 회피형'인간이었다.
듣기만 해도 답이 나오지 않나?
1년 새 이만큼 올랐는데 지금 덜컥 사버리면? 상투잡는 것 아닌가?
새로운 정부가 집값은 책임진다고 하는데, 좀 두고봐야하는게 아닐까?
전세가는 나중에 내게 돌아오는 '돈'인데, 매수한 집 값이 떨어지면 누가 보전해주나?
살고 싶은 동네에 가기엔 예산이 부족하고, 예산에 맞추자니 떨어지는 동네 아파트를 사고싶진 않아.
갭투자? 남의 인생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들이 하는거 아니야? 아파트가 그리고 투자거리가 되나?(갭투자라는 단어는 사실 2012년, 사회 생활 2년차에도 들었던 단어다. "그런게 돼?"라고 하고 넘겼던)
하지만 연일 폭등하는 서울 아파트 시세를 중심으로 온나라가 들썩이는 상황에서 , 내 이름 석자를 담은 집 한채가 없다는 사실은 제법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더 오르든 말든 내 삶을 위해서, 불안감과 싸워 이겨 내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향한 세상의 공격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나는 아파트를 가질 수 없다는 패배감을 이겨내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할수 있다"를 외쳤다.
일찍이 집을 사자고 했던 아내의 한숨을 "혹독히 나를 다스리는" 채찍질로 받아 들였다.
매수를 희망했던 아파트의 계약이 좌절될 때, "내가 늦은게 잘못이다"라는 반성을 했다.
"남은 전세를 다 채우고 집을 사라"는 조언을 뭘 모르는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받아들였다.
쏟아지는 정책과 실거래가 상승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고, 기회를 찾기 위해 공부했다.
공부하다 지겨울 때면, 주변인들에게 부동산에 관심이 있음을 알렸다.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쪽팔린 사람'이 되는 것을 자처해야 나 스스로 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쉽게' 아파트를 매수한 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감히 말하건데 나는 '아파트를 살 수 없는 DNA'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나의 체질을 뼛속까지 바꾸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이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이 행동했다.
나보다 먼저 아파트 매수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보며 자극을 받았고,
수많은 중개소와 아파트를 방문하고 많은 매도 희망자들을 마주하고,
대출을 위해 은행과 임대인(당시 살던 집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매일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커뮤니티, 뉴스를 통해 정보를 찾고 실거래가를 모니터링하며
당시의 나는, 아파트 매수가의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감도 없었다.
그저. "지금 사야한다"는 일념으로 가득차서, 마침내 '여러명'의 경쟁자를 무찌르고
하늘이 점해주신 '인연'으로 당시의 중개인과 매도자를 만나서 내 집을 얻었다.
그렇게 아파트 등기를 치고 난 다음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아내와 내 아파트 잔금 및 입주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현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내와 긴 시뮬레이션(자금 조달 계획, 출산과 육아, 완전히 먼 우리 둘의 출근 방법 등)을 나누고 난 뒤,
처음으로 느끼는 생경한 한가지 결론에 머무르게 되어,
나는 잠시 멍-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아파트에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구나
길었던 수렁을 딛고 내 집을 갖게 되었고, 아주 잠시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는데-
이런 결론이 도달하게 될 줄이야. 나는 새삼 허무함을 느꼈다.
거실에 서재를 만들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 방을 꾸며주고 싶은데 ‘2년 짜리 유목민’의 삶을 이대로 계속하게 된다니.
걸어서 20분, 버스를 타고 5분만 가면 내가 고등학생 때 자주 놀러가던 동네가 있는데 그 생활권을 누릴수 없다니!
신혼집 말고는 서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아내와 걸어갈 수 있는 많은 카페와 영화관, 식당을 손잡고 가고싶은데 또 다시 미루게 되다니.
지난 2년간 경험한 숱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나도 모르는 새 '단단한 마음가짐'과 '회복탄력성'을 이미 체득한 나는, 이를 통해 "그럼 다음 스텝을 찾아보자"는
건강하고 어른스러운 결론으로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부터 "임대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거다.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자.
내가 원하던 대로. 꿈꾸던대로.
어릴적부터 "내가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나와 내 가족에게 상처를 줬던" 그런 집주인이 아닌,
내 집이 좋은 통로가 되어 좋은 기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임대인"이 되어보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반씩 마음 한켠에 나눠가지면서
시장가를 선도하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를 보유하거나 투자하는 '자산 많은 사람'의 입장이 아닌,
아파트를 보유한, 어쩌다 임대인이 된 입장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임대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과 책임, 실전에 대한 이야기를 소담히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