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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Oct 20. 2023

결혼식 사회만 스무번 넘게 본 남자

나이가 들면 그 친구들 아이들의 주례를 보게 될까?

서른살 가을,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믿고 맡길만한 친구가 나라는 말은 참 든든했고,

제수씨 불안하지 않게 이미 몇번 결혼식 사회를 봤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남겼다.


키도 제법 크고,

목소리도 중저음에 달변인 나에게

어찌보면 친구의 부탁은 당연했을지도


사실 결혼식 사회는 나도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생에 가장 큰 행사이자 경사. 그것이 바로 결혼식 아닌가?


그런 중요한 결혼식의 사회가 처음이라 뭘할지 몰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물어 물어 준비했고,

결혼식 당일 일찍 도착해서 식장에서 주는 대본을 받아

고루한 단어와 상투적인 표현들을 좀 바꿔주는 작업을 했다.


주례 보시는 분께 인사드리고,

내 결혼도 아닌데 친구 식 잘좀 부탁드린다고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게 되더군. 신기하다 참.


다행히 첫 사회는, 실수와 애드립 없이 끝까지 잘 진행했고

이 날 이후로 나의 결혼식 사회 철학이 완성됐다.

스무번 넘게 진행한 결혼식 사회에서 단 한번도 변치 않았던 그것은,


신랑 신부 입장 행진 잘 시키고,
박수 많이 받도록 유도하는 딱 그만큼 하자.


이 정도다.

튈 것도 없고 나설 것도 없고, 싼티나는 장난도 사절이다.


언제나 내 역할은 "어른이 된 두 남녀가 앞으로 이렇게 많은 축하와 박수를 받을수 없을만큼"
조명 뒤에 숨어서 사람들 잘 집중할 수 있게 진행하자라는 그런 정도의 마음.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어른들이 좋아하셨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

그 뒤로도 가장 좋은 인사는 신랑 신부측 어른들이 식 끝나고 고맙다고 건내는 인사였다.


불꽃 놀이에 불꽃을 보러 가듯, 결혼식은 신랑 신부를 보러 가는거다. 가끔 사회자가 본인을 보러온줄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최악의 사회가 또 없다.


결혼식 전, 늘 기도를 한다

결혼전에는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기혼자가 된 뒤로는 다른 기도를 드린다.

오늘이 둘의 인생에 가장 적은 행복을
느끼는 그런 날이 되길 기원하는 기도를 한다.


주례자 선생님들이 결혼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얻은 "자신의" 지혜를 논했다면,
나는 신혼과 적응 그 어디쯤의 진정성을 가지고 그저 박수와 집중을, 행진과 선포에 힘을 준다.
내가 뭐라고 신랑 신부의 손님들 앞에서 나 잘난 이야기를 하는가.


점점 나이가 차면서, 친구들이 거의 모두 결혼을 하고 있다.

사회의 자리를 내려놓고 하객으로 온전히 돌아갈 때가 이제 거의 다 온 시기인것 같다는 생각에,

최근 사회를 봤던 K군의 결혼식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결혼식은 귀하고 나의 감사하는 마음, 축복하는 마음의 깊이는 같다)


처음으로 친구 결혼식 사회를 봤을 때 난 서른살이었고, 총각이었다.

지금의 나는 마흔이고, 결혼 7년차를 맞이한 딸 둘의 아빠다.


사회자석에 서 있으면 많은게 보인다.


입장하는 신랑의 미소와 긴장감,

딸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아버지의 복잡한(웃으려 애쓰는) 그 표정,

축가를 부를때 신부보다 펑펑 우시는 장모님의 표정들


지리한 주례의 자리보다 사회의 자리가 더 좋은건 아마 이런 이유 아닐까
환한 조명빛 아래, 주인공을 바라보는 "의미있는 배경"이 되는 순간.


인생에 있어, 스폿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즐거운 때가 있다면 나에겐 그것이 '결혼식 사회자 석에 선 순간'이다.


사회를 보는 경우가 많으니 출산 후에는 거의 혼자 결혼식에 갔는데,

이번 결혼식은 아버지가 봐주셔서 아내와 둘째를 데리고 식에 갈 수 있었다.


둘째를 예뻐해주는 동기들이 너무 고마웠고,

다같이 인턴 교육을 받던 동생들이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진땀흘리는 모습이 퍽 정겨웠다.


생각해보니,

결혼도 동기 중에 가장 먼저, 출산도 가장 먼저해서

난 복에 넘치는 축하를 아주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인사를 도는데, 이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 동기와 후배들이 건냈던

진심어린 그 축하의 표정과 목소리들이-

선배님, 제가 아는 사람이 결혼하는
결혼식은 처음 와요! 축하드려요


그렇게 내 결혼 이후에도 지켜온 결혼식 사회자석이 스무번도 넘었다.


농담삼아 '돌잔치 사회자'로 부른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중에 자기 아들 딸 결혼하면 주례 서라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참 재밌는, 훈훈한 상상이다.
아제들에게나 의미가 있으니, 주례는 당연 안할 생각 하하


한주가 지났지만 "불금"이라는 단어를 잃은지 오래인 아빠라, 제법 피로한 금요일이다.


오늘도 오늘만큼의 일이 있었고,

주말에도 아이들을 보며 집안일을 해야하고,

다음주에는 또 다음주만큼의 일을 해내야하는 '루틴'의 연속이지만-


오늘 퇴근하면서만큼은 2017년 3월의 내 결혼식을 떠올려봐야겠다.

그때도 K군의 결혼식처럼 축가 때 아내에게 동기들이 꽃을 건내주었지.


참 다행이다.

결혼한지 7년이 되어서도, 사회자를 기분좋게 볼 만큼

결혼에 대한 좋은 생각,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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