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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Nov 15. 2023

"OO동까지 밀려났어."

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 #8 : 분노는 나의 힘

혹시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것을 감안,

부동산에서도 공덕역 인근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매도자가 고집도 센데
계속 팔지 말지 간을 “짜증나게” 보는 분위기였음


성향 상, "하나씩 차근차근 움직이자"는 주의인데,

지난 일년 반 집을 구하며 겪은 경험이 있는지라

한번에 여러 길로 향하자는 결론.


부동산 연락을 받고 바로 아내에게 말을 하여,

퇴근길에 같이 공덕역에 "같은 가격"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의 아파트가 하나 있어 방문 했다.


아내와 손을 잡고 가서, 보다 신축인 32평 아파트를 볼 수 있었다.  

아내와 내가 내린 결과는 No.

가격이 착하다고? 글쎄. ① 단독에 가까운 세대수와 ② 해당 매물의 층을 생각하면
이 아파트는 전혀 가성비가 아닌, 나중에 팔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될 확률이 높다.

확실하게 아니라는 답을 줬고(여지를 두지 않는게 좋다)

바로 아내가 찾아둔 OO동의 구축 아파트를 임장하기로하고, 전철을 탔다.


행동력이 더딘 내가,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움직였다.

돌아보면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전철역에 내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가파른 언덕 위에 아파트가 있었다.

역에서 내려서 단지까지 가는 길이 높은 언덕이었고 

주차장이나 아파트 구조나 외벽 모두 구축 그 자체였다. 

아파트 내 조성된 수목은 너무 낡고 오래되어 음산한 숲 같기도 했다.

오래됐고 단지가 크니 재건축을 기대? 글쎄. 이것도 경험에서 온 안목을 발동하니,

소재구의 네이밍, 입지 현황(산지), 현장에서 본 거주자 나이, 차 등을 감안하면 불가라고 생각..


냉정한 평가를 내린 뒤에, 

뜨거운 여름 저녁이 아닌 뼈에 시리는 찬 바람과 같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무거운 현실이 다가왔다.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고 살고 싶었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은 저 고바위 아래에서 찬바람이 부는 산 위의 어떤 낡은 아파트였다. 2년 전에는 평지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2년 전 당산동 작은 평수를 알아봤던 그 가격으로 지금은 그 아파트보다 더 구축에, 더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자치구의 20평대 아파트를 볼 수 있었다. 경제뉴스에서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가던 “돈의 가치의 폭락”을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참담하다. 돈의 가치가 폭락하듯

나의 가치도 폭락하는 기분이었다

2년 전에는 영등포구 당산이었는데, 

지금은 OO구 OO동의 언덕배기.. 심지어 더 오래된 아파트라니..


한 순간의 선택이 주는 현실은
정말 뼈가 시렸다. 무섭도록.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이러니 더욱 내일의 계약에 목을 멜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나는 새로 장만한 선택지 두개를 다 써버렸고 불발탄이 되었으니까.


이미 시간이 늦어 밤이 되었고, 더욱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그 단지를 

한바퀴 크게 돌고는 터덜 터덜 내려와 입구 부동산의 매물을 확인했다.


바로 건너편 신축 아파트를 보니 인프라가 왜이리 좋아 보이는지!

(그래도 소재지와 주변 입지는 변하지 않는다. 현혹되지 말자)


감탄아닌 감탄을 하고는 그 길을 쭉 걸어내려와 **시장길도 구경하며 내려왔다. 

시장 근처에 흐르는 노래에 비트를 맞춰 춤도 추고, 영상도 찍고 나름 하하호호 웃으면서 집에 도착했다.

어떻게서든 불안감을 떨치고자 노력했다.
똑같이 불안함에 떨고 있지만, 나라도 의연한척 괜찮은 척 해야할 것 같았다. 부부니까.


모든 빈티지는 아름답다. 다만, 재건축 가능성이 희미한 오래된 아파트는 나에게 아름답지 않았다. 비참함만 줄 뿐.


그리고 다음날(토요일) 아침,

자고 일어난 와이프가

갑자기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같은 돈으로 2년만에
OO동으로 밀려났어..


우는 아내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라는 걸 아니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이 감정에 집중했다.

뭐지. 이건 무슨 감정이지. 

분노. 그래. 스스로에 대한 분노다. 

태어나 이렇게 분노를 느낀 적이 있던가. 

가슴이 시리고 숨이 막혀왔다.


침착하자. 자책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크게 호흡하고 잠시 눈을 감자. 나까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정신을 바로 차리자. 분노를 동기로 삼자. 분노는 나의 힘이다.



그때부터는 어디서부터 힘이 솟구쳤는지,

날이 선 냉정함으로, 그리고 타는듯한 분노를 안고 아내를 타일러서 데리고 나갔다.


그때부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오늘 집을 무조건 사겠다는

필사의 결의가 생겼다. 이유는 없다.

해야될 것이 분명해지자 생각과 고민이 사라졌다.

그저 지금 시간을 쪼개 내가 할 일을 하자.

어제 두가지 옵션을 확인해서 다행이다.
오늘 가면서 새로운 옵션을 찾아보자.
계약까진 아직 시간이 있고, 주말 아닌가!


부동산에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 전철을 타고 공덕역으로 향했다.이번엔 내가 매물을 말할 차례였다.


근래 눈여겨보던 광진구, 마포구, 그리고 양천구의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다. 

“소장님 바쁘시죠, 혹시 물어볼게 있는데요”는식의 뜸들이는 통화는 필요 없었다.

소장님, 지금 사러 가려는데
A매물, B매물 오늘 볼수 있어요?


얼굴도 못 본 사이에 무슨 놈의 부연설명.

네이버 부동산에 오른 매물을 바로 물어보고,

재빨리 회신을 들어야 한다. 왠만한 손품으로 스터디는 제법 한 물건들이다. 

여차하면 가계약금부터 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주의문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나 스스로 느끼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생에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절박함'이 '부담감'을 이기는 순간에 서 있었다!


시간이 없다 동선을 최소화하자.

정말 대단하게도, 물어본 모든 단지의 매물이 없다는 회신

굉장히 전화 문의가 귀찮다는 듯 반대편 수화기에서 답이 왔고,


나도 평소의 나와 다르게, 그딴 몇마디에
감정 상할 시간도 없이 끊고 바로
다음 지역 부동산 연락으로 돌입했다.


그렇게 한참을 연락하며 도착한 공덕역. 

부동산계약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설렁탕을 한그릇씩 먹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가 길 것 같다는 예감에,
아내에게 든든히 먹어두자고 했다


아내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순순히 따라줬다.

아내보다 필사적이었던 모습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더는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잘난 한마디를 던지던 남자의 무지한 선택에 의해, 아내가 “밀려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우는 걸 보면서 아무렇지 않다면, 혀를 깨물고 죽어야한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가족의 것이다.


당시의 나는 표현 그대로,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오늘 집을 계약하지 못하면 남은 내 삶은 영원한 패배자, 아내와 가족에게 폐만 끼치는 식충이가 된다고 배수진을 쳤다. 앞으로 뭘 해도 못해낼거다. 내가 오늘 실패한다면!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울리는 한통의 전화
조금 이따 방문하기로 한 부동산이다


사장님 어쩌죠..


우리가 첫번째 예약자라고 웃으면서 전화하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며 매도자의 변심으로 매가를 올리자는 네고 통화로 어두워졌고, 

마침내 오늘은 완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공덕역 매도자가 매물을 내렸다


1주일 넘게 사람 애간장을 녹이더니 결국 매물을 감췄다. 더 오를 것을 예상했겠지. 스포 하나 하자면 이 집은 내가 결국 산 집만큼 오르지 못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쭉.


막연한 예상, 이미 했던 상태라 난 괜찮았다.

다만 막막한건 사실 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토요일 점심인데, 반나절 동안 뒤집을 수 있을까?


통화를 듣고 얼이 빠진 아내를 데리고, 공덕역의 프렌차이즈 카페에 갔다.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나는 한숨도 쉬지 않았다.


전화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더욱 빠르고 집요하게.

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지만 누구보다 침착하게 부동산 매물들을 물었다.

정말 물건이 없다. 그래도 두드리다 보면 분명히 나올 것이다.


한참을 연락하다보니, 마침내 하나의 아파트를 특정할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성동구 어딘가에 있는 그 아파트.


가자. 지금 바로 가자.

마음이 급해 부동산 예약도 하지 못하고, 

"저기로 가자"고 현장에서 정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니 무슨 소리 하시는거예요 정말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소장이 전화기로 싸우고있다. 

분위기가 굉장히 싸하다. 옆 자리에 앉은 실장이 간단히 브리핑을 해주는데,

소장이 통화를 끊자마자 "아니아니 그거 아니예요"라고 쌀쌀 맞게 얘기하고는 

다시 우리에게 약간 격양된 톤으로 설명을 다시 해준다. 


사실 이때까지만해도 '여기가 나랑 안맞나, 나갈까' 고민했다.
나에게 제법 많은 영향을 미치는 '첫인상'이 완전 바닥이었다.


그래도 안된다.

오늘 결정하지 못하면 더 밀려난다.

나는 더 밀려날 수 없다.

무조건 오늘 집을 산다. 무조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소장님에게 브리핑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집을 사러 왔으니까.


저 오늘 계약하러 왔으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완전히 무너졌겠지.
실패가 가져다준 단단함으로 또 한번의 매수 실패의 좌절을 이겨낸 이야기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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