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키드 Nov 09. 2023

다른 매수자, 매도자, 은행. 사방이 적이다.

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 #7 : 누구도 믿지 말 것.

'16년, 결혼 전 알아본 2/9호선의 당산,

'17년, 신혼 1년차에 알아본 신혼집 근처 상암,

'18년, 신혼 2년차 1차 폭등 후 알아본 여의도


이제 네번째 도전은

회사 근처인 공덕이었다


공덕은 사실, 결혼 전에도 알아보러 왔다

그때는 언덕에 위치한 복도식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필 어두운 밤에 보러가서 더욱 싫었던. 낡고 스산한 느낌.


집을 알아볼 때는 가급적 여러 날에 걸쳐 많은 경우를 직접 보자.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눈/비오는 날, 평일과 주말-
특히 해가 쨍한 낮에 봐야 “안 내키는 집도 좋아보이는” 효과가 있다. 사람 마음은 다 같아서 내 마음에 드는 집은 모두가 좋아하고, 결국 비싸다. 적절한 타협을 원할 땐 맑은 날씨에 보러가자.


이 아파트의 경우, 상암 아파트를 알아보며 회사 근처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할 때,

행원이 추천해줬다. 여기는 어떠시냐 가격도 괜찮다고(불쌍해보여서 추천해줬나).

그날 집에 가서 와이프한테 얘기했더니,


거기 오빠가 들어가기도 싫다고
했던 그 언덕 아파트야. 많이 올랐네(한숨)

가만히나 있을껄.

당시엔 많은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예비 신부 말 듣고 알아보러 다니고결국 안사겠다고 결정했는데

1년 반 뒤 다시 알아보니 이 집이 그 집이었고

"그때 이 집을 샀으면"이라는 한숨과 탄식의 반복

나는 할말이 없거나, 아니면 너무 답답해서 화를 내거나

"누가 이럴 줄 알았어?" 돌아오는 답도 언젠가부터는 없고

그날 하루는 그렇게 소강 상태.. 다음날 아침에도 냉랭해지고.


숨이 막혔다. 그래도 이 숨막힘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나의 지독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두고보자. 우매한 과거를

현명한 현실로 갚으리라.


발로 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아, 팁 한가지. 집 보러갈땐 신발끈 안메는 신발을 신자. 신고 벗기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보통 한번에 3-4집은 들어가니까.


어찌됐든 이번에도 아내가 봐둔 "오늘 올라온" 매물을 보러갔다.


공덕역 인근의 낡은 아파트 20평대 물건

 * 최근 실거래가 대비 5천 정도 높게 나온 물건.


단지가 크지도 인프라가 좋지도 않지만 재건축 이슈를 기대해볼 수 있고, 

비교적 덜 언덕인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네이버 부동산으로 조회한 물건에 대해서 해당 공인중개사무소에 전화 예약을 하고 혼자 방문했다.


“딸랑”

부동산 문을 열때 들리는 벨 소리,

상황마다 참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날따라 더욱 부담이 되더라.
그래도 의연하려 애썼다. 내 집을 대표해서 온 사람이니까.


여자 소장님 두분이 운영 하시는 곳. 전화 예약한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니 밝게 맞아주셨고, 

한창 전화가 많이 오는 중이었다. 특히 내가 요청한 매물에 대해서도 은근한 문의가 오늘 있었다며.

(전화 한다고 다 계약을 희망하진 않는다. 찔러보기도 많다)


가급적 부동산은 원하는 매물에 대해서 정확히 얘기하고, 방문 시간을 예약하고 가라.
대화도 빨라지고 부동산에서도 비슷한 조건의 다른 옵션들을 준비할 수 있으며,
방문한 날 매물을 직접 봐야하지 않겠나? 공 들이는 만큼 중개사도 사람인지라 성의가 달라진다.


매수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며 당장이라도 보고 싶다고 연락을 요청했으나, 

매도자가 지금은 보여주기 어렵다고 하여 우선 보류했다.


야성의 감이 발동, 조금 쎄했다(1차)

팔 물건인데 못 보여준다니?
여기 주인 거주라고 써있는데?


어찌됐든 회사 바로 뒤 부동산이라 여기서 마무리 짓고, 내일 연락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고 귀가했다.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고, 그래도 부동산은 알아서 갔고 필요한 내용을 물어봤다는 점, 

어필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내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줬다.


겪은 사람 입장에서보면, 사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조급한 입장에선 당연히 패닉바잉 시장에서 늦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몇억이 오가는 거래를 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음날 일과 중 전화를 받았다.

축하드려요 사장님,
문의가 많았는데 우리가 1순위래요!


곧 계좌 받아둘테니 가계약금을 준비하란다.

축하받을만 하다. 당시엔 네이버부동산에 매물이 오르는 즉시 “증발”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복수의 매수 대기자가 계약 의지를 밝혀도, “선착순”인 희망자와 부동산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가장 큰 첫번째 적, 다른 매수자. 

그들보다 빨라야 한다.


오케이. 집주인이 내리지만 않는다면.


바로 점심 시간에 대출을 알아보러 갔다.

쿼트러블 역세권에 한창 부동산으로 핫한 공덕의 메인 상권에 있는 N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았다.

여자 행원이었는데 인사할 때부터 굉장히. 피곤하고 무기력해 보였다.

서비스 직군에 많은걸 바라는 건 아닌데, 하기 싫어하는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라니.


여기서 또, 야성의 감이 발동. 쎄했다(2차)


내 대출 실행에 큰 관심이 없어보이는 그녀를 앉혀두고 물건을 알려주고, 

기계적으로 KB부동산 시세와 내 급여 등을 따져보더니  얼마 정도의 대출이 가능하겠다는 확인을 받았다.

 * 굉장히 쉬운 일이다. KB부동산 켜고, 최근 거래 보고, 급여 대장 넣고 계산기 두드리고.


그렇다면 얼마를 마련하면 되겠구나 하는 계획을 세우며, 명함을 주고받고 나왔다. 

은행도 준비 완료. 더 알아봐야하지 않을까? 에이 됐다. 

대출 상담 처음해보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조건이야 다 확인했는데.


세상은 냉정하다. 당신도 냉정하라. 내 돈내고 하는 거래고,내 이자가 발생되는데 물어볼 것 꼬치꼬치 캐묻고, 내 앞에 앉은 행원이 나보다 부동산 모를 확률이 100%라고 생각하라


오후에 갑자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저 사장님 어떡하죠”
뭐지. 설마 거래 취소인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매도 희망가에서 3천을 올려달란다.

대단한 배짱. 초상승장이니 갑질이 대단하다.

싫으면 사지마라 아니면 자기 물건 떠보기 같은데, 지금은 물 불 가릴때가 아니다.


두번째 적, 매도자.

마음이 바뀌기 전에 계약금을 넣어야한다.


사실 결혼 전에 알아보던 물건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방문하기로 한 날 갑자기 몇천을 올려서, '어이가 없어서' 걷어 차버린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시장의 상황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아내와 잠시 통화를 했다.


아내는 어떡하냐며 결정을 못했고,
나는 살거면 올려주자고 밀어붙였다


참 매도자 그 양반도 쫌생이인게, 한번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하루 하루 야금야금 올리더니 결국 금요일엔 첫 금액의 8천까지 올려달라고 하는거다.
적당히 간보라고 던지고 싶었지만, "남 좋은 일"되는 형편에 어쩔 수 있나.


3일만에 8천만 원이 올랐다.

이따위 썩다리 소규모 단지 아파트로, 8천이 쉽구나.

그나마 옆 단지랑 묶어서 재건축을 수십년 내 바라볼까 말까 한 

고작 그 정도의 아파트를 일주일만에 8천을 더 올린다.

그래. 고작 그 정도의 아파트가 아쉬운 건 나 아닌가. 받아들이자.


알겠어요. 계좌 받아 주세요.


묵묵히 전화를 끊고, 아내의 "이렇게 올려도 되냐. 무섭다."는 공포심을

잘 다독여주고, 핸드폰을 들어 며칠 전 상담한 행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이때부터는 “안팔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동산도 아내도 다른 옵션을 생각하고 있던 터. 지난 경험들을 통해 배웠다.
가만히 있는다고 버스가 오지 않는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야한다


투자는 결과론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지 않은 자 그 마음을 모르고, 지금 시장을 겪지 않는 자 결코 조언할 수 없다. 끌려가는 매수자가 되기 싫으면 시장이 안좋을 때 사야한다.


세번째 적, 은행.

책임감과 지식을 기대하지말자.


이 여자가 고작 며칠만에, 굉장히 쉽게 말을 바꾼다.

대출이 안될 것 같다면서, 만약에 된다고 해도 턱 없는 금액을 이제와서 들이민다.

거칠게 표현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남자행원이었다면 "이 XX가" 라고 상욕을 썼을거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가 나는 상황이었으니까.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에서, 본인이 지키지도 못할 정보와 판단을 제공하다니.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없는 뻔뻔한 작태가 정말 화가 났다.


아니 왜 이제와서 말을 바꾸냐, 분명히 몇번이나 현장에서 확인받지 않았냐,

당장 내일모레 계약해야되는데 뭐하는거냐 말을 해도

그때는 잘못 이해하셨겠죠


뻔뻔하게 지껄이는 태도. 거슬리네. 어째서 당당할까.

저렇게 해야만 본인한테 책 잡히지 않는다고 배웠을까.

여자만 아니었으면, 전화 끊고 바로 반차내고 지점으로 갔을거다.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격분하게 됐다.


복받치는 화를 겨우겨우 참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고작 그 정도의 멍청한 뻔뻔함으로, 멱살이나 몇번 잡혀왔겠지.

언제 봤다고 나야말로 너를 믿었을까. 내가 바보지.


시간이 얼마 없지만 '다른 방법들'로 은행들을 찾을 수 있었고,

다른 은행의 타 지점에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이 이후, 행원에게 웃지도 필요 이상의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갑질이나 화를 내는 '수준 낮은 행위'는 당연히 나도 하지 않지만,
나보다 부동산(적어도 내 물건에 대해서)을 모르고, 대책도 모르고,
그저 KB부동산을 찾고 연봉 기반으로 대출액 계산해주는게 다인 존재.


특정 행원에 대해 화가 난거지, 결국 내 자금 계획은 내가 세우라는 뜻이다. 내가 잘 모르면서 남에게 기댈수 없다. 완전한 전문가와 정답이 없으니, 많은 해석을 꼼꼼히 챙겨두자.

토요일 몇시에 공덕역 부동산에서 계약을 하기로 했고(이때까지 계좌를 못받음),

그렇게 매수희망 물건, 대출과 자금 마련 계획을 세웠다.


다른 매수자보다 빨라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피 말리는 시장에서 매도자의 변덕도 맞춰줬고

부동산을 잘아는 행원을 찾아서 준비를 마쳤다


나, 그리고 많은 사람의 경험이 모여 드디어 내 집을 계약할 차례다.

금요일 오후를 향해 가는 시간을 보며,  

"내일 이 시간이면 집을 갖게 되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설레면서도 또 한켠으로 불안한 금요일 오후를 보내다가.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괜찮으면, 부동산에서 추천한 공덕 다른 물건도 오늘 볼까?"


나의 계획과 행동이 시장, 그리고 정책보다 빨라야한다는 사실을
삶으로 배우게 됐던, 처참함이 이어지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65

이전 06화 개발계획이 발표되고, 폭등기관차가 출발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