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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Nov 20. 2023

서울 아파트를 사기까지 35년이 걸렸다.

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 #9 : 마침내, 내 집이 생겼다

사실 난 "서울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아파트 거주 자체도 서울에서 창원으로 내려간 초교 몇년 외에
서대문구 구축 아파트에서 시작한 그 신혼 2년이 전부.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뭐가 좋냐고?

살아보고, 가져본 당신이 할말이 아니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아파트에서 살면 그 가치를 알게 된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전세 대출을 안고 썩다리 아파트에 살아보니,

이런 편안한 삶이 있다는 걸 그 전에는, 아니 최소 결혼 준비할 때는 왜 몰랐을까 싶었다.


알았다면, 나는 신혼집을 무조건
아파트를 계약했을거다. 2년 전에.


누군가 말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뭐가 그리 좋냐고. 살아본 당신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가져본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왜 아파트를 사야되요? 꼭 사야해요?“
사지마라. 내 돈 아니고 당신 돈 아닌가.
다만, ”나는 이래서 사야만 했다“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봐주시길.


https://brunch.co.kr/@alexkidd/66


2년이라는 시간. 많은걸 경험했다.


정책이 발표될수록 분양 모델하우스의 줄이 늘고,

오늘 옆 집 거래가 성사되면 집주인들은 '천'단위로 가격을 올렸다.

내가 '보겠다고'만 말했던 아파트가 일주일 새 8천이 오르고,

은행 대출 담당자도 '시장을 따라잡지 못해' 계약 직전 말을 뒤집고,

부동산들은 전화 거는 족족 매물이 다 나갔으니 오지 말라는 연락만.


힘들게 남아 있는 매물을 찾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달려간 부동산.

중개소에 앉아 브리핑 받는 중에도 전화가 빗발치고,

재개발 물건 관련 어르신들 방문들도 쏟아졌다.


이런 상황이니, 브리핑을 듣는 시간마저 아까워
계약금을 먼저 넣고 집을 보고 싶을 정도였다.


현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매물 현황을 점검하더니

아. 로얄동 물건이 그 가격에 있었는데,
오전에 다시 들어갔네요.


물건이 다시 들어갔다는 말.

바로 오전에 들었던 말이라 타격은 없었다. 다행히도.

기 죽을 것 없다 그럼 다음 물건이 있을테니까! 그걸 잡자!


오늘 방문한 단지가 소재한 자치구는

내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나뉘었다.

서쪽으로는 이 동네 전통의 강자, 압구정 건너편의 A동

동쪽으로 이마트와 카센터가 있었으나 천지개벽중인 B동

이 중에서, 대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서쪽으로 오게 되었다.

(아쉽게도 압구정 건너편의 A동은 너무 비싸서, 차선책을 방문)


지형이 '산지형'인 서쪽답게 오늘의 물건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구축들은 지금처럼 단지를 다져서 개발하지 않고,

구릉 지형을 살려 그 위에 계단식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같은 산지라고 해도 다른 산지다. 왜냐고? 지난 에피소드의 '산지 아파트'와는 '소재한 자치구'가 다르니까.


단지로 걸어 들어가며, 지금 보기 좋은 두가지 물건이 있다고 추천하셨다.

조용하고 언덕 높이에 있어 뷰가 좋은 끝 동

전철역과 가깝고 걸어서 가기 무난한 중간 동

아파트 구조와 조경은 딱 내가 초등학생 시절 늘 볼 수 있던 그런 모습이었다.


지금의 래미안 같은 브랜드 아파트가 나오기 전의 그런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아빠 차가 들어오는게 보이고, 차에서 내리는 아빠랑 손잡고 들어가던 그 풍경의 90년대 추억의 그 단지.


소장님이 벨을 누르고 방문한다.

뒤따르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하고 꾸벅 인사하고 집을 본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데 당연히 예의를 갖춰야 한다.


첫번째 집 : 29평, 로얄동 옆 중간동

뒷 동의 33평과 같은 가격에 29평(로얄동 바로 옆)

주차가 부족한데, 중간 동이라 앞뒷동 다 가까워 비교적 용이

전철역 내려서 충분히 걸어서 도달할만큼의 높이

아무래도 도로, 전철역과 가까워 소음이 제법 있음


두번째 집 : 33평, 단지 끝 동

아파트 뒤가 바로 산이고, 앞 동과 거리가 멀어 쾌적함

복도식 끝 집이라 쾌적. 방 두개가 복도로 나서 환기에 좋음

따로 확장을 안했음에도, 거실이 넓었고 화장실이 올 수리 되어있었음

뷰 맛집. 언덕 위라 부담스럽지만, 꼭대기 층이라 제2롯데, 트리마제, 교보타워까지..


두번째 집은 주인 내외분이 계셨고, 소장님과 잘 아는 눈치였다.

남편분이 퇴직하시고 집을 정리하려는 계획이신 터.

사모님께서 견과류를 몇개 손에 쥐어주셔서 감사하게 먹었다.


볼 수 있는 두개의 물건 중에 나는 두번째 집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음에 쏙 드는데, 아내는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번째 집을 인사를 드리고 나와서 문을 닫았다.


복도와 마주한 산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아내의 표정을 살펴봤다.

'아내 마음에 안들면 어쩌지. 다른 물건을 지금이라도 찾아야 할텐데.'

아내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나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오빠. 나 이 집 사고 싶어."
"정말?"



앞서가는 소장님에게 바로 말했더니,

잠시만 기다리시면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긴박한 상황이다. 간절하게 손을 모았다.

바로 오늘 계약 파기를 당했고, 몇 주 간 눈 앞에서 매물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던 상황이었고, 물건에 대한 분석ㆍ고민보다

집주인의 변심이

가장 큰 변수라는 걸 알으니까


분석? 네고? 아는 척, 잘난 척이 전혀 불가한 상황. 내가 모든 준비를 갖췄다고 해도 '집주인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조물주 위에 서울 아파트 주인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관문이 열리면서 소장님이 다시 나온다.

파신다네요. 계좌 드릴테니까
지금 바로 가계약금 보내세요.

머릿속이 삐-하고 울리면서 하얗게 되어버린 느낌


"진짜? 내가 이 아파트를 산다고?"


부동산에서 30분 뒤에 보기로 주인 내외와 약속하고,

내려가는 동안 돈을 보내야하는데, 꼼꼼한 아내가 나에게 입을 뗀다.


오빠, 큰일났어. OTP를 안가져왔어.


잘못 들었나? 뭘 놓고 왔다는..?

그 꼼꼼한 아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OTP를 두고 왔다.

큰일이네. 얼른 가계약금을 밀어넣어둬야하는데-

집주인 마음이 변하기 전에


상황이 사람을 만들고, 결의는 상황을 이겨낸다.

누나, 처남, 외삼촌, 친구 등에게 연락해서 십시일반으로 가계약금을 만들었다.

연락되고 만들어지는대로 매도인 계좌에 꽂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동산에 매도인 내외가 다 오셨을 때는 마지막 한 명의 돈이 입금 전이었다.


아무리 침착하게 행동해도, 당황한게 보였는지 소장님이

괜찮으니까 천천히하시라고 다독여줬고, 결국 가계약금을 다 넣었다.


11월 말로 잔금일을 잡고, 계약서를 쭉 읽고 서명을 했다.

매도인 남편분께서 본인들은 집 팔고 고향으로 내려가신다며,

혹시 미리 인테리어할 생각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남편분의 웃음을 보니까 조금 안도감이 든다.

아. 그래. 됐다. 이렇게해서   되는구나.


아주 조금, 다리가 풀린 기분이었다.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기쁜 그런 감정. 행복이 이런 느낌인가.


그렇게 웃으면서 매도인 두 분을 보내드리고,
소장님에게 두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1. 매도인과 부동산의 관계

매도인분들과의 관계를 말씀해주셨는데,

이 전의 임차인을 해당 부동산에서 계약하셨고, 그 양반이 완전 꼴통이였단다.

(몇가지 들었는데 정말 "악성 민원"급이다. 나열하는게 피로감을 느낄 정도..)

소장님이 계속 신경써주느라 엄청 고생했고, 그 고생을 주인 아줌마가 전부터 고마워했다고.


그래서 내심 "이 소장한테 물건주자.." 라는 무드가 있었고,

내가 방문한 그날따라 문의도 많고 해서 돈 좀 더 올릴까? 했는데

소장님이 그냥 좋은 사람들 오셨을 때 파시는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려서

자식뻘 되는 우리에게 물건을 팔았다고 하셨단다.


2. 매수대기자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리고 또 한가지 이야기.

우리보다 더, 아침 일찍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전 날도 안그래도 문의가 있었지만, 아침에 방문한  사람이 의지가 있었다고.

그런데 뜨뜻미지근하게 매수 의사를 밝히며, 부동산에 전화해서는


혹시 누가 그 집 산다고 찾아오면
전화주세요. 내가 그 집 사게


이런 얼빠진 소리를 했고, 내가 들어간 타이밍에 싸우고 있던 통화가 그 통화였단다.

집을 사면 사는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그런 못된 심보가 세상에 어디있냐고.

나도 그런 사람들은 끝까지 진상이라고, 감사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소장님도 잘하는 분이라 다행이었고,

매도인 분들도 좋은 사람들이 가져가니 좋다고 하셨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건 바로 우리였고.


그렇게 계약을 끝내고, 소장님과 잔금일에 뵙자고 인사를 드렸다.

긴 하루가 저무는지, 부동산을 나와 쭉 펼쳐진 내리막길을 아내와 걸었다. 끝난 것 같은데, 뭔가 아직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 나면서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헹복하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말, 그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처음 집을 알아보고 2년, 결혼하고 1년 반만에 서울에 내 아파트 내 집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가장 극적인 시간을 보내며. 너무 기뻐서 소리를 치고 싶었다.



급히 돈 보내준 누나, 매형, 외삼촌 등에게 감사 전화를 돌렸다.

급할 때 이래저래 도와주는 분들이 많으니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고마운가. 나도 누군가의 은인이 되리라.


엄마가 집에서 축하 식사를 하자고 부르셔서,

개포동을 향해 전철을 타러 천천히 걸어갔다.


등에서 석양이 비취고,

옆을 바라보니 아내가 행복하게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에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드디어 내게도 온 것이다.


아름다운 그 오후의 우리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엄마가 우럭갈비찜을 해주셔서 맛있게 먹고, 모주도 한잔 곁들였다.

매일 쏟아지는 부동산 뉴스를 보며, 내가 아파트 계약을 코앞에서 놓쳤던 일에 대해 영 마음이 오래 쓰이셨는지, 너무 기뻐하고 축하해주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불안한 마음에 남은 계약금을 다 매도인 계좌에 보냈고,

돈을 빌려준 분들께도 다 돌려드렸다.


그리고

아내와 깊은, 아주 편안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잠에서 깬 아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환하게 행복하게 웃는 아내의 표정은 결혼하고 처음 봤다.


최근 몇달 내 처음으로 아내가 부동산 앱도, 뉴스도 켜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우울하고 짜증난 표정도 짓지 않고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저 해맑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때로는 그저 그 자리를 지키는 태양보다 누군가가 만든 조명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나의 아파트가 그렇다. 우리 가족만이 아는 의미.


그래 이거다.
이렇게 한걸음씩 나가자.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뒤돌아보는 것보단 전력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오늘 편하게 다리를 뻗고 쉬었다면,

내일은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며 가시밭길을 달려야 할 수도 있다.

이왕 그렇게 달리려면, 조금 더 어리고 가능성이 있을 때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서른 다섯, 결혼하고 2년 차.

서울에서 태어나 35년만에 처음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자랑이,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 있는 그저 평범한 구축 아파트다.

그저 이 아파트는 내가 Boy에서 Man이 되는 성장의 수레를 헤쳐온 2년의 삶이 담긴 아파트고, 가족을 지켜낼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값진 경험이다. 자산으로써 누군가의 것과 비교할 대상이 아닌,
내 가족만이 아는 헤리티지 같은 것


그렇게 서울의 아파트를 갖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지도, 누군가에게 허세를 부리거나 얕보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잔금을 치르고 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그때, 그리고 그 이후의 경험들을 발판 삼아

누군가 조언을 구할때 나름의 의견을 준다.


회사 내에서 존경하던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집을 알아본다 하셔서 내가 직접 동네를 잡아 부동산 예약, 임장까지 같이 해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따로 한번 더 와보시고는 계약을 하셨는데, 고맙다는 말씀이 참 기뻤다.

내 경험으로 누군가의 인생, 가족이 움직이는 큰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것에서.


아. 그때 그 공덕 아파트?

계약하고 한달인가 있다가 연락이 왔다.

“(마지막으로 올린 가격으로)다시 나왔는데 매수할 계획이 있으세요?“

“아 다른 집 샀습니다. 괜찮습니다.”


그 뒤로도 그 집은 반년 넘게 거래가 되지 않았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 단지가 우리집보다 실거래가가 오른 적이 없다. 유치하지만 이게 시장의 평가고, 이를 보며 좋은 선택이었다고 돌아보며 웃게 된다.


앞으로도 어떤 선택을 하며 살게 될지 몰라도

이 치열함과 절박함이 나에게 큰 힘이 되리라.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모든 것을 넉넉히 이뤄내자.


현금 가치가 바닥을 향하는 상황을
삶으로 느낀 비참한 에피소드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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