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키드 Nov 01. 2023

좋은 집은 남들이 다 사고, 값을 올려놨다.

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 #5 :  그래도 아파트에 살아야한다

누군가 당연히 물어볼 수 있다.

도대체 왜, 아파트냐고?

그건 아파트에 살아봐야만 안다.

아니, 아파트에 안 살아봐야 더 잘 안다.


내 인생 통틀어 최악의 시기를 들라면 바로 중3때부터 8년을 살았던 주택 2층 세입자 시절이다.
임차인이라는 표현 나도 쓴다. 근데 저 시기는 정말 “세입자”라는 표현 딱 그게 맞았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 그것을 보고 살았다.

집주인이 1층에 사는데 엄청 예민해서 층간소음으로 매일 연락하고(어른들만 사는 집인데 무슨 층간소음이 심하다고)

수도 시설도 엉망이라 아랫집들(반지하 2세대, 1층 주인세대)에서 물을 쓰면 물이 안나와 매일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살았다. 설거지하다 물 끊기고 겨울엔 물을 끓여서 쓰고..

 주차가 불가해서, 집 앞에 차를 대놓으면 불법주차로 누군가가 신고해서 딱지를 끊고, 장을 봐오면 잠시 차를 대놓고 짐을 놓고 다시 차를 멀리에 주차해두는 매일 매일이 스트레스.

공용 공간이 없어서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집에 들어가고, 장마에 벽지에 물이 스미고, 눈이오면 매일 계단을 눈을 쓸고, 결로 곰팡이를 달고 살고

매일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 저녁에 취한 사람들의 통화소리처럼 소음을 달고살아야하는 불편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10대인 나에게 큰 부정적 영향은,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엄마가 물이 너무 안나온다고 이렇게 사는게 너무 지겹다며 혼자 우시는 것도 방에서 들었다. 매일 매일이 캄캄한 삶이었다. 나는 아직 10대고, 내가 삶을 바꿀 수없고, 현실은 어둡고, 친구들은 타워팰리스, 아크로빌 살면서 아빠의 외제차를 타고 등교를 하고.

설상가상 전세 나갈 때도 돈을 제때 안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그 집에서 산 몇년간 영화처럼 주인집에 내려가서 모든 집기를 부수고 악당같은 주인을 엄마 앞에 무릎 꿇리고 싶었던 것이 일주일에 몇 번도 넘게 있었다. 아직도 살면서 그만한 분노감을 느낀 적이 없다.


다행히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집을 나갈 수 있었고, 나는 한참 동안 그 동네를 지나가면 치를 떨었다.


집이라는건 그런거다. 단순히 몸만 누이고 나오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한 인간의 성격, 가치관, 삶이 바뀔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쉽게 생각하지말자.


영화에서는 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악당을 처단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긴 세월이 필요하고, 감내해야할 많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바로 삶이다. 어릴때부터 세상을 알았다.


그로부터 18년 후,

아빠의 현실로 돌아가자.

다행히 슬픈 엔딩이 아닌, 위대한 위너의 엔딩이다(현재 진행중) 유치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처럼, 우리 아빠는 지금, 그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개포동의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산다. 운명처럼 거실에선 그 집도 보인다!


삶으로 갚는다. 멋지게.

이런 경험을 가진 나는, 임차인분들에게 최대한 잘 해드리려 애쓴다. 일례로, 장마철이 아파트에 누수가 나서 한달 가량을 임차인분이 불편하시지 않게 아랫집-관리소-누수업체를 직접 컨택하고, 아파트 규약까지 찾아내가며 문제를 해결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집 잘못이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관리소를 통해서 수선받도록 아랫집도 챙겨줬다.


아랫집 주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이라 벽지 안해준다고 볼멘 소리했지만, 임차인이 사시는데 불편하실수 있으니 잘 타일러서 넘어갔다. 강하게 나온다면 어떤 법적 조치나 판례를 들이밀지 이미 공부도 끝난 상황, 굽혀주는게 어려운일은 아니지.
내 신조는 단순하다.
똑같은 사람 되지 말자.


주거 환경이 민감한 10대 청소년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런 되물림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거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부모가 되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부모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게 된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뿐. 아빠는 삼성임원이 되어 가난의 대물림을 끊었다. 나는 더욱 잘 살거다.

아빠의 신축 아파트에는 내가 못들어갔지만, 신혼집 아파트에 살아보니 왜 좋은지 알게되더라. 고작 썩다리 아파트에 단 두개동 뿐인 소규모 단지임에도 이렇게 편한 것이 느껴질 정도라니.


단, 신중해야한다. 부동산은 댓가가 아주 크다. 주식은 상폐지만 부동산은 안팔리면 끝. 팔기 전까지 세금, 수리, 이자, 누수의 위협에 시달려야하고 팔게되면 중개수수료와 또 세금이 붙는다.


사람들이 내 집 마련에 그렇게 목을 메고 외치는 이유가 객관성을 어느정도 확보하려는 뜻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있으면, 그제서야 내 집의 아쉬움이 보이고 다음 선택에 대한 정비를 객관적으로 갖게 된다. 특히 이런 관점과 생각은 내 집을 세 놓을때 가장 강하게 생긴다.


회사 근처의 부동산에서,

정말 많은 매물을 보여주셨다.


딱 보니 신혼부부고, 뭔가 젊은 남편이 절박해보이는 것이 느껴졌는지(경험해보니 그런 집이 진짜 아파트를 산다. 여자가 다 세팅해놓고 네고하면서 아쉬운 소리 다 들어놔도, 아무것도 안하던 남편이 와서 뒤엎는 꼴 “실제로” 봤다. 어휴 센척할 때가 아니에요 이양반들아)


산으로 들어가실거 아니면 산악회 한량 놀이를 그치시든지, 와이프가 알아서 하게 놔두든지. 남자들의 현실도피성 센척은 뿌리를 뽑아야.


방문한 당일을 포함해서, 주중에도 수회에 걸쳐서 10개 남짓한 매물들을 봤다.

소장님이 열심히 설명하면서 같이 봐주셨고, 주중에 퇴근이 어려울 땐 와이프가 혼자 가서도 봤다.


A. 회사 근처의 10년 넘은 기축 단지(8개 단지가 넘던), 그리고

B. 아빠랑 통화하면서 시세를 논하며 웃었던 일년 전 그 뉴타운*

* 이미 해당 단지는 8억 중반대 이하 물건도 없었고(있으면 저층이나 안 좋은 방향),
   RR 물건은 이미 9.3억 이상을 부르는 지경이었다.. 정말 많이 올랐다.
RR : 로얄동의 로얄층을 일컫는 말.
가능하면 돈 더주고 이런걸 추천받아 사자.
아무리 불경기라도 전세든 매매든 내 물건이 제일 먼저 빠지고, 제일 높은 값을 받는다.


확실히, 많이 보고 살아본 만큼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1. 아파트 내부 :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개인 소관

거실/베란다 확장 여부(식물을 키우더라도 결국은 거실이 넓은게 유리)

중문 설치 여부(겨울에 현관문으로부터 들어오는 외풍, 한밤 중 센서등 간섭 최소화 등)

BAY 수(아파트에 배치된 거실 및 방의 개수를 말한다. 4베이가 최고. 맞바람도 잘 들고)

채광(낮엔 햇살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결로(앞뒤 베란다에 결로는 없는지 벽면 곰팡이로 판단. 고층일수록 오히려 있기도)

누수(싱크대, 화장실 천장 및 벽면에 누수는 없었는지 벽지를 보고 판단. 구축은 정말 중요! 샤시와 베란다 우수관 쪽)

인테리어(화장실 및 주방, 바닥, 조명 등.. 너무 개인취향으로 수리하면 나중에 팔기 힘듦)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냉정히 판단하고 현관을 나와서 잽싸게 메모해서 기억해두자

예전에 처음 집을 알아볼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안 와닿았는데, 이제는 제대로 와닿았고 주의깊게 볼 수 있었다.

결로가 있는 집은, 4천 정도 저렴했다
향, 층 다 좋은데 결로 때문에 고민됐다
내가 팔때도 같은 고민을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기특하게도.


두번의 실패는 없다. 매의 눈을 발동하자. 이번엔 직주근접을 타겟으로, 신혼집 근처의 대단지 두개를 공략했다. 이미 올랐지만 괜찮아!


2. 단지 인프라 : 조경, 도로, 지하철 및 학교 등

초등학교 단지 내 보유 여부(심지어 요즘 단지는 '길을 건널 필요'가 없다)

지하철역 인접성(그리고 몇호선인지. A단지가 전철노선은 훨씬 좋았으나 도보로 10여분)

병원, 상권 등 도보로 활용 가능한 인프라(인근에 살아보니 병원과 마트, 학원이 너무 약했음)

대로까지 이어지는 길 : 기축단지는 강변북로 인접 vs 뉴타운의 경우, 내부순환로 진입로 인접

회사 상권이 배후에 있는 A 단지 vs 연희/연남동까지 도보 가능한 B 단지


이정도의 분석이 가능했다.

모든 것을 만족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선호하고, 당연 매가도 올라간다. 옥석을 가리자. 가용한 예산 내에서!


확실히 두 단지 모두 "평지"에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메리트가 있었음

실거주든 임차를 주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최고의 임차인은 더할 나위 없이 "신혼부부"니까.
그들이 아이를 낳고도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나는 이걸 애 낳고 나서야 알았다!)


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지금 아파트들처럼 언덕에 지어도 평탄화를 하고 짓는게 아니라

언덕에 일부만 깎아서 아파트 단지 내에 경사가 있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애를 낳고 들어가 살 생각을 해보니, 아이 때문에 안되겠더라.(결혼 전 알아본 공덕 인근 아파트로 그런 이유로 포기했었음)


사야할 이유는 냉정하게 남의 눈으로 보고, 사지 말아야할 이유도 더더욱 남의 눈으로 보자. 남의 전제조건은 “집을 살 의향이 있는” 사람이다.


두 개 단지를 요모조모 비교해봤는데,

알면 알수록 뉴타운이 1억 넘게 비싼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자신이 안들었다. 도저히.

세를 끼고 사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당시엔 매가가 너무 뛸 때라 갭이 점차 벌어질 때였다. 갭을 메울만한 예산이 부족했다.


내가 어차피 안 살 동네인데,

그걸 갭으로도 못산다는 아이러니

아니다. 이게 정확한 시장의 목소리다. 이제 난 그정도는 구분할 줄은 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면(그것은 전세가가 증명한다), 그건 시장가치가 높은거다.


아내가 맘카페에서 얻어온 정보로 얘기도 하고, 나도 회사에서 걷는 산책로와 주요 동선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면서 이런 저런 소소한 기대감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행복을 향해 걷는 기분이 좋았다.


이 동네에 산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즐거운 상상
A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6단지와 7단지를 잇는 구름다리를 보면서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봄에 건너는 기분이 너무 좋다는 글을 봤다는 말을 하는 아내의 표정에선 약간의 행복감마저 느껴졌다

현실적으로도 손에 잡히는 가격대의 괜찮은 물건도 있었고.


B 아파트 단지 매물을 분석하며

자꾸 작년 생각이 났지만,

쓴 물을 삼키고 현실의 눈을 뜨려 노력했다

그 답은 “RR은 커녕 괜찮은 물건”은 사기 어렵겠다

이게 시장의 흐름이구나. 이래서 이런 물건이 귀하고 저평가라고 불린거구나. 크게 배웠다.


집을 특정, 계약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준비하던 대출이 무산되었다.

완벽하게 알아봤는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그 어떤 부동산 카페, 포스팅, 책에서도 찾을 수 없던 변수) 천만 다행인건, 계약 전에 쎄한 느낌에 한번 더 주말에 은행 대출 담당자 개인 연락처로 연락해서 물었고, 담당자가 화들짝 놀라며 그러면 불가하다는 답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는데, 야성의 감이라는게 있는지.. 그런거 꼼꼼히 챙기거나 묻는 타입도 아니고, 주말에 일 연락하는거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인데 하늘이 도우셔서 대형 사고를 막았다!


결국 결론은,

A단지 B단지 모두 사지 못했다


대출의 이슈도 있었고(예산 부족)

현재가에서 더 오를 수 있는 기대 수익도 적었고,

좀더 공격적인 전략을 세우는 방법(전세를 월세로 돌려 보증금 활용, 복비를 부담하여 지금 집을 빼서 전세금 회수 후 내 집 전입 등)을 연구하지 못해서


‘18년 4~5월 부동산 계약

프로젝트를 두번째로 접었다.


그리고 너무나 치사하게
와이프를 통해서 부동산에 통보했다


"남편이 생각좀 해보자고 했다고"

소장님이 알았다고 잘 얘기해보시라고 말하고 끊었다는데, 참 찝찝하고 바보같았다. 멍청이. 왜 마지막을 늘 그렇게 하는지. 마음만 가득하고 행동하지 않는 내가 한심하더라.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간 건 나인데,ㅠ결국 어떻게든 하기 위한 결정이나 방안은 못찾고 모자란 남편이 되어 와이프에게 정리나 시키고.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고작 이렇구나.


그렇게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또 새로운 도전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도전은 우리만 하는게 아니었다.

가장 끔찍한 발표가 터져버렸다.


2017년 1차 폭등을 맞고나서 ,
2018년 주먹을 쥐고 일어서던 기억은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57


이전 04화 1년 간 2억이 올라 있었다. 남의 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