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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키드 Oct 27. 2023

1년 간 2억이 올라 있었다. 남의 집이.

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되었다 #4 : 내가 본 그 집들이 전부 올랐다.

전세가가 치고 올라,매가를 끌어올린다


연애할 때 아내가 얘기했던 논리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걸 눈으로 확인했다


출퇴근하며 부동산 유리의 매물을 확인하고,

부동산 앱을 통해 신규 매물을 확인하는 습관이

이때부터 생겼다


이때까진 실거래가 등록 주기가 지금처럼 짧지 않았다. 실거래가와 호가 사이의 갭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중개사가 직접 해당 부동산에 전화해서 물어보는 방법이 전부였다.


정말 오르는구나, 무섭게.


연일 갱신되는 아파트 매매가 폭등과 분양 경쟁률 신기록 릴레이를 보면서도,

나는 그저 `17년 2월에 맺어둔 전세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지켜보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택을 내리고, 매일 아내의 한숨과 후회를 들으며 쓴 물을 삼키고 있었다.


결혼하고 난 뒤, 회사는 너무 바빴다


어딜 가든 '선택에 대한 대가'가 있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기 마련. '타이밍'만 맞으면 되는데, 하필 타이밍이 안좋았다. 이렇게 바쁜데 부동산마저.


일 끝나고 집에 가면 아내는 기다리다 잠들었거나,

신혼인데 매일 늦는 나 때문에 처가에 들렀다오거나,

이래저래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서운함만 주는 남편, 딱 그 정도였다.


혼자 야근을 하고 있거나 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지고, 벅찬 업무들을 쳐내고 있는 와중에

TV를 틀면 연일 부동산 가격 고공행진.. 길을 가며 보이는 부동산 매물 정보에는

연일 전세가, 매매가 상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보람이 없었고,

아내와는 점점 할말이 줄어들었다.


외로웠다. 허튼 것들 때문에 외로운게 아니라,

그때 나와 같은 상황으로 괴로워하는 남편이 주변에 없어서 외로웠다.

미치겠는데, 정말 돌아버리겠는데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못했다.


당연히 단 둘이 있을 때 즐거운 순간들도 많았고,
과소비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카페도 종종 가는 등 소소한 즐거움은 누렸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부동산 뉴스'가 우리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쏟아지는 부동산 정책들에

'기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부턴가 나도 '다주택자'가 나쁜 놈들이고,

그들 때문에 나같이 '선량한 서민'이 집을 살 기회를 놓치고 있고,

여러가지 정책들, 정권이 나를 위해 날뛰는 집값을 잡아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 정치색을 떠나서, 정말 그렇게 된다. 절박하니까.


그러면 그때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딱 `16년 봄 정도까지만 내려가줬으면 좋겠다.

그때 집을 사야지. 내 집을 사서,
수리해서 즐겁게 와이프랑 지내야지.



기대와 달리 정책이 나올 때마다, 거짓말처럼 집값은 지속 상승했다.

더이상 정책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시장'은 '정책'을 비웃듯,

어찌보면 정책에 기대하고 있는 '나같은 놈들'을 비웃듯 미쳐 날뛰고 있었다.


혹자는 물었다. 기다리면 내리지 않아? 그냥 좀 기다려보는게 어때.


언제까지? 언제까지 기다리면?

막상 내리면? 더 내릴 것 같아서 못 살걸?


그보다 언제쯤 이 상승 랠리가 끝날까?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승랠리,

그 가운데서 '집이 없는 사람(집을 사려다 코앞에서 포기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내 말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거다.


그런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이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외부의 누군가가 쥐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가 원하는 마지막 때까지 주지 못했을 때,

인간은 좌절감 이상의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퇴사를 결심할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남에게로 향하는 운명의 키를 '변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변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이고 뭐고, 집값이 더 오르든 말든,

내 집을 사자는 확신이 들었다.


사자. 일단 사자. 내 아파트를.

내가 발 뻗고 누울 집을 사자.

등기를 치고 나와 아내의 이름을 올리자.

거기서 출퇴근하고 예쁘게 인테리어도 바꾸자.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족의 일상을 즐기자.


집이 없어 불행하다면 “가능한만큼의 최선”을 다해 사자. 압구정 현대에 못살아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집이 없어서 불행한 것 아닌가. 사면 된다! 할수있을 만큼.
어디를 가야할까.

그래도 아직 집값이 덜 오른 느낌의 회사 근처의 뉴타운과 기축 단지를 돌았다(전 에피소드에서 아빠랑 비웃었던 그 단지 맞다)

1년 전에는 5억에서 6억대였는데, 이제는 7억에서 9억을 형성하는구나


그래도 괜찮다.

이정도면 전철역도 가깝고, 강북보다는 강서에 가까워서

일산, 파주, 공덕 같은 곳도 금새 갈 수 있는 위치와 일자리도 제법 있지 않나.


2년전과 달라진 것들은

가용 예산의 투명성

나의 관심도와 열의

그리고 많이 오른 집값

정도였고, 그대로인건 우리의 예산 정도랄까.


더이상 그때 살걸 이라는 후회는 필요없다.

오른게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그때 부족했던 정보와 선택의 폭을 더 넓게 가져가면 된다.


처음으로 열의를 갖고

부동산을 공부했다.

신혼초에 경제문외한인 내게 붇옹산 스터디 카페, 재테크 도서와 블로그를 권하는 아내에게 그만 좀 권하라고 말할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다.


가족의 행복, 미래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자.

내가 인정하는 동네의 아파트, 옥수 리버젠을 못사서 불행한 것도, 도곡 렉슬을 못사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집이 없어서 불행한 상황아닌가. 그 동네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거기 가기까지 방법은 딱 세개다.


1. 굉장히 연봉을 높이거나

2. 사업으로 떼돈을 벌거나

3. 투자를 통해 자산이 올라주거나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방법을 부지런히 찾았다.

전세 재계약을 당겨서 하면서 대출을 더 발생시키는 합법적인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충분한 대화로 후보지를 좁혔다. “2년전에 했으면 저길 갔을텐데”라는 아내의 한숨은 잘 받아주자. 내일이 더 중요하니까.


Boy가 아니라 Man이 되자.
아내에게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말을 무겁게 책임지자.

간절히 원하면 움직이게 되고,
움직일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끝까지 찾는게 부부다.


아내와 합의를 하고 힘차게 회사 근처 부동산 문을 열었다. 이번엔 다르다.


사장님, 집 좀 사려고 하는데요.
패기있게 문을 열고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돈도 있고, 진짜 살 거니까.
1년 반 전에 스윽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신감 없게 앉아있던 나는 없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1년 반의 "와신상담" 누구든 오너라.
쓸개를 씹으며 버틴 시간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수백번을 후회하고 또 돌아봤다. 달빛도 보이지 않는 파리한 가로등 아래서 묵묵히 걸으며 나 스스로 달빛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했다.


2017년 1차 폭등의 파도 그 한가운데서,
나와 아내는 폭풍우 속에 부러진 깃대를 들고 정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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