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3
*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는 없습니다. 이건 단순히 한 사람이 결혼 전후로 아파트 매수에 대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인한 고통을 딛고 잃어서는 성장 스토리 입니다. 그러면서 느낀 ‘8학군 출신’의 거품같은 고뇌가 담긴 글이예요. 철 없는 시절의 그런.
구형이지만 아파트라서 지하 주차장도 여유 있고,
DMC역에서 가까워서 출퇴근도 용이했다(나는 공덕역, 아내는 청라국제도시역)
태어나 부모님과 분리된 삶은 처음이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즐거웠다.(얼마나 신이 났는지 남의 집인데 내가 현관에 명패 하나 붙이자고 할 정도였다! 정말 철 없다)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합정역과 홍대가 가까웠고,
산책하며 천천히 걸으면 연희동도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라서 좋았다
소소한 즐거움, 연애 때는 누릴수 없던 그런 것들
공간에서 오는 즐거움이라기보단,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내 집을 임차주고 있는 지금 와서 보면 수리도 하나 안된 그 집은 정말 별로인 집인데 말이다. 근데 주인 부부는 참 좋은 분들이셨다(몇 회 뒤 후술)
콩깍지가 조금 빨리 벗겨지게 된건, 집 앞에 있는 공원과 천을 걸으면서*였다.
내가 부모님 덕에 당연히 누린 것들이 얼마나 사치였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요즘의 그곳은 카페도 많이 생기고, 재개발 등으로 천지개벽했으나,
내가 신혼인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이주가 진행되던 시점이라 낡고 어수선했음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걸어나와 공원길을 걸으면, 잘 조성된 양재천이 있었다.
봄에는 벚꽃길을 걸으며 벚꽃비를 맞을 수 있었고
여름에는 아무 카페나 바에 들어가서, 테라스에서 비 구경하면서 와인 한잔하고
가을에는 그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정취를 느끼고
시민의 숲 끝에서부터 도곡역까지 쭉 조성된
와인바, 이자까야와 다양한 맛집들과 타워팰리스 단지가 참 좋았다
대학생 때는 개포5단지 사는 친구와 양재천을 걸으며 몇시간씩 이야기도 하고,
고교 동창들과도 삼성역에서 심야 영화보고 양재천으로 쭉 걸어왔는데 이젠 그곳에서 멀리 떨어졌구나
그래 받아들이자 그래도 괜찮은 시작 아닌가
나는 아파트 전세로 시작하는 삶인데 라고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잡아갔다
산책을 하며, 옆 블럭에 자리한 대형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그 부동산에 붙어있는 매매가를 확인하고는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이 동네, 시장 뒤에 있는
새 아파트가 6억이라는데?
"뭐? 그동네가 6억이라고? 어이가 없네 하하"
정말 어이가 없는 가격(우리 부자는 부동산에 정말 문외한. 아버지 시절은 아빠가 열심히 일하고, 엄마가 집 알아보고 이사하고 이러던 것이 보통임)이라며 같이 웃고 넘겼다.
은근한 무시. 이런게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몰라서 그랬겠지만, 나는 '현실에 대한 외면'이 제법 있었을터.
내가 살 돈이 없으면서, 그놈의 허세란.
다음 해 여름, 그 아파트는 9억을 불렀다
내가 쉽게 생각하고, 이건 맞지 않다고 말했던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나의 발언과 선택을 저격하는 순간은 그로부터 멀지 않았다.
고작 일년, 이년 정도였던가. 참담했다.
결혼 전에 신촌의 모 아파트 청약을 넣어봤고, 가뿐히 떨어졌다.
“아 이정도 입지와 가격도 떨어지는구나”
나름 미분양 관련 뉴스를 봐오던 기억은 있었는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신혼 몇달 차, 보라매나 수색 쪽에 분양을 앞둔 모델하우스들이 있어서
와이프의 요청으로 찾아갔다. 가기 싫은데 갔다.
“된다고 거기서 살건가?”
라는 초보적인, 시니컬하고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며.
그렇게 찾아간 모델하우스에 사람이 엄청 났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갔는데, 두시간을 꽉 채워서 입장을 했던가.
사실 그때는 넣을 마음도 없고 관심도 없는 동네라서
“이런건 봐서 뭐하나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지배적, 시간이 아까웠다.
다만 한가지,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다고?
그 다음주쯤 수색역 모델하우스도 집 근처라 갔는데, 보라매와 같은 수준의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아내도 너무 줄이 기니 포기하고 집에 가자고 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는지
그때까진 미처 알지 못했다. 정말로.
전세가 끝날때까지 기다리자라는 판단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전세를 끼고 매수를 할 수도,
분양을 받아두고 입주까지 방법을 마련할 수도 있는데
2년간 전세로 대출, 돈이 묶여있으니 기다리자
라는 정도의 굉장히 수동적인 결론을 내고 있었다.
아파트 전세로 시작하는 정도면 훌륭하다 라는 안도감이었다
빌라에 살 수도 있고 서울을 벗어날 수도 있는데
어찌됐든 300호 내외의 역세권 아파트에서 전세로시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 만족감이 있었다
그 자체에 대한 만족감이 있다면, 그건 상관없다
원래 안분지족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실제 집을 사서 결혼한 친구가 그때까지 한명밖에 없었다는 점, 대부분 빌라나 오피스텔, 경기권에서 시작하는데 나는 좀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정말 만족했냐는 것
전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의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 가장 중요한건 용의 꼬리가 되더라도 '어디'에는 살아야했다.
'어디'로 가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와이프와 결혼 전 방문했던 집들 중 하나는 샀어야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광천과 양재천을 비교하는 정도의
굉장한 자괴감(매우 현실성 없는)에 빠져있던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않은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위해서 노력해야하는데
나는 그냥 '버스를 보내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유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점점 불안감이 찾아왔다. 아니, 이제야 눈을 뜬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내가 무시하는)의 신식 아파트를 살 돈도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나는 집을 안 샀는데 점점 집값이 오른다는 뉴스와 부동산 카페 글들이 보이면서,
무엇보다 같이 사는 사람이 매일 부동산 얘기를 하니, 나도 불안해졌다.
안타깝게도 1차 폭등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호가가 오르고. 내가 보러 다닌 집이 올라가는게 보이고
와이프는 매일 아침마다 호갱노노, 네이버부동산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부부 싸움의 대부분은 집 문제였고,
가뜩이나 본인이 보지도 못하고 들어온 이 낡은 전세 아파트에 대한 불만이 굉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전세도 줘보고 올수리도 다 해본 입장), 정말 형편없는 조건이긴 했다.
그 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인테리어(화장실, 부엌 정도)를 집주인에게 계약 전에 요구할 수도 있고,
인프라가 좋은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 조건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잘 모르는 엄마와 내가 같이 가서 덜컥 계약을 해버렸으니.
전세 대출도 엄마 집 근처 주거래 은행에서 했는데,
이런거 진짜 의미없다는걸 나중에 내 집사고 세 주고 해보면서 느꼈다.
굳이 강북에 사는데 왜 강남에 엄마 주거래 은행에서 대출을 했을까?
몇푼 차이 안나도 더 좋은 대출 금리를 해주는 곳이 많았는데.
나중에 공덕 인근에 가계약을 준비하면서 근처 N 은행에서 상담을 했는데,
막상 계약 전날 대출이 어렵다고 말을 바꾸는 행원 때문에 멘붕이 왔던 적도 있다.
은행은 절대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리고 바꾼 말에 책임도 지지 않는다.
(별표 다섯개 치고 형광펜으로 열심히 밑줄 그어라)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중개인 은행 아무도 믿지 마라 절대로.
* 심지어 정책이 쏟아지던 시기에는, 그 사람들 나보다 모르더라. 정말.
제대로만 알고 있다면
내가 제일 전문가다.
은행 대출 관련해서도 참 할 말 많은데,
이건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음.
확실히. 세상은 아는 만큼 절약하게 되고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법.
더이상 부모님 세대의 셈법이 안되는구나. 눈 뜨고 코베이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여튼간에 어쩌겠는가.
우선은 전세가 묶여 있으니 이거 끝날때 도전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시간을 흘러 보내다가 폭등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좌절이 좌절인 줄 모르고 선택한 결과에 대한,
미련은 지난 에피소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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