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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Sep 16. 2019

빙하 지대로 이어진 장엄한 물줄기, 스코가포스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가족여행 #5

고정관념을 깬 스코가포스 Skógafoss 폭포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하여 오전에 그냥 지나쳐 달렸던 스코가포스는 검은 모래 해변에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오후에 들를 수 있었다.(용암과 바다와 시간이 만든 걸작, 검은 모래 해변)

스코가포스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폭포 중 하나로 낙폭이 25미터에 이른다. 풍부한 양의 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물보라 덕분에 맑은 날이면 최소한 1개 이상의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잔뜩 흐린 날에 가랑비가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서 떨어진 폭포수는 하천이 되어 남쪽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데, 이 강은 유명한 연어 잡이 스폿이라고도 한다.


햇볕이 따뜻했던 검은 모래 해변과는 달리, 폭포 주위에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다시 폭포로 갈 수는 없다고 버티는 딸 덕분에, 아내도 딸과 함께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아들만 데리고 폭포로 향했다. (아내는 나중에 나와 교대하고 혼자 다녀왔다.)

넓고 평평한 해안가 지형 덕분에 폭포는 도로에서 몇 분만 걷다 보면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무 한 그루 없는 초록 민둥산과 절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숲이나 계곡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 주었다. 생각해 보니, 셀얄란드스포스나 검은 모래 해변뿐 아니라, 전날 골든 서클의 여행에서도 울창한 숲은커녕 변변한 나무 한 그루 보지 못했었다. 북극권에 근접한 화산섬은 정말 척박한 환경이다. 섬에는 야생동물이라 부를 만한 동물조차 없지 않은가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들과 둘만 스코가 폭포를 향해 걸었다.

스코가포스의 첫 번째 특징은 주위가 매우 평탄한 지형이라 폭포 바로 밑까지 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폭포 아래는 엄청난 물보라 때문에 사진을 찍기 곤란했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웅덩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아 가까이 가서 바람과 물보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폭포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물은 약간 잿빛으로 탁한 듯 맑았는데, 북쪽 에이야 피얄라이외퀼 Eyjafjallajökull 빙하 지대에서 녹은 빙하수가 해안 쪽으로 흘러 내려와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서 보는 스코가포스. 물줄기가 어마어마하다.

스코가포스의 두 번째 특징은 폭포 옆의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등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폭포의 비밀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빙하 지대로 이어지는 핌뵈르두할스 Fimmvörðuháls 하이킹 코스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빙하와 화산 지대로 이루어진 아이슬란드에서는 하이킹을 위해 여름 시즌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안 도로만 가는 일정이라 하이킹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알아보지 않고 왔는데 이렇게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니 놀라웠다.


우리는 둘째가 첫 돌이 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 아이들과 자연으로 가보겠다며 캠핑을 시작했었다.(아장아장 걷던 둘째를 데리고 동계 캠핑에 나섰다가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캠핑 인구가 전국에 몇십 만에 불과했고, 주말에 나가면 호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여러 매체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캠핑을 다루고 전국적으로 캠핑 붐이 일던 2010년대 초반, 전국에 캠핑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난민촌과 구분이 안 간다고 생각한 나는 한국에서 캠핑을 접었다.(당시, 캠퍼와 행락객의 차이에 대해 침 튀기며 열을 냈던 철없던 내가 생각난다.)

유럽 대륙만 해도 자연에서의 호젓하고 쾌적한 캠핑이 가능한데, 외계 행성과 같은 아이슬란드의 고원 지대를 하이킹하며 캠핑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폭포 옆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 본다. 이 길이 하이킹의 시작점임을 이 때는 몰랐다.
스코가포스 꼭대기에서 바라본 낙하하는 폭포수. 보고 있으면 오금이 저린다.

폭포 꼭대기가 어떻게 하이킹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폭포를 '등반'하여 정상에 올라섰더니,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폭포 너머 뒤쪽으로 스코가 강이 폭포로 흘러 내려오고 있었고, 양 옆으로는 완만한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이 강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빙하 지대의 하이킹 코스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날,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킹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했었다. 하이킹 코스가 어떤 것인지 나중에 찾아봤는데, 생전 처음 보는 장대하고 수려한 화산 지역과 빙하 지대를 며칠간 걷는 것이었다. 언젠가 너무 늦기 전에 꼭 한번 와서 캠핑하며 실컷 걸어보고 싶다.

왼쪽의 강물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오른쪽은 하이킹 코스이다.

스코가포스의 세 번째 특징은 폭포 위 전망대의 뷰가 마치 등산 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폭포에서 등반을 하는 것도 특이한 경험인데, 그 위에서 내려다본 아이슬란드의 남해안은 절경이었다. 우리는 아직 비를 맞고 있었지만, 바다 쪽은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맑은 날씨였다.  

스코가포스 위에서 바라본 아이슬란드 남쪽 해안의 모습.
정면 쪽에서 본 스코가포스. 사진에 나오지 않지만 폭포 아래서 캠핑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 세계에 혼란을 준 화산 폭발의 흔적

2010년 4월 14일, 아이슬란드에서 있었던 화산 폭발로 세계적인 혼란이 있었다. 남쪽 해안에 접한 에이야 피얄라이외퀼 Eyjafjallajökull 빙하 지대에서 화산이 폭발한 것. 뜨거운 마그마와 차가운 빙하 녹은 물이 만나며 큰 폭발이 있었고, 화산재가 8km 상공까지 치솟아 아이슬란드 상공의 제트기류와 만나는 바람에 화산재가 전 유럽을 뒤덮었으며,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유럽의 거의 모든 항공 운항이 중단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도배를 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은 모래 해변(Black Sand Beach)과 스코가포스를 보러 다녀오던 중에 그 재앙의 근원지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2010년 화산 폭발이 있었던 에이야 피얄라이외퀼. (아이슬란드어 참 어렵다) 구글 위성사진 캡처.

셀얄란드스포스와 스코가포스 사이에 있는 이 화산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관광지도 아니고 특별한 표지도 없기 때문이다. 도로 역시 편도 1차선이어서 운전을 하면서 별생각 없이 지나가는데, 앞 쪽에 차량이 서너 대가 줄을 지어 서있고 사람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여기 뭐가 있는 거였지?’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는데, 휴게소 같은 곳에 'Visitor Center'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 순간, 머릿속에 번뜩- 하고 뭔가 스쳐간 나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어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방문객 센터에서 사진들에 대한 설명을 보며 역시나 하며 무릎을 쳤다. 이 곳이 바로 2010년에 화산이 폭발하며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진원지였던 것이다.

2010년 분화했던 화산이 눈 앞에 나타났다.

오전에는 비구름에 가려 빙하지대와 화산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었는데, 오후에 보니 하얀 마을 뒤로 당시 분화했던 빙하 지대의 활화산이 구름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길가의 사람들은 그 화산의 사진을 찍고 있던 거였다.

방문자 센터에 전시된 화산의 분출 전후 사진을 보면 당시 재앙의 현장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평화롭던 마을 뒤의 화산이 폭발하며 화산재가 치솟는 장면이 보이고, 하얗던 창고가 잿빛 화산재를 뒤집어쓴 장면(현재의 Visitor Center라고 한다), 화산재를 치우는 장면, 사람들과 말 떼가 대피하는 장면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화산 폭발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국토의 대부분은 엄청난 두께의 얼음, 빙하와 빙판이 덮고 있는데 그 아래 땅속은 2-3km만 들어가도 용암이 끓고 있는 땅이다.

마을 뒤로 선명히 보이는 에이야 피얄라이외퀼 Eyjafjallajökull 빙하 지대의 화산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는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 2010년 4월 14일이라고 쓰여 있다.
화산이 계속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쌓여있는 모습. 2010년 5월 5일이다.
화산재를 뒤집어 쓴 창고와 대피하는 말 떼

다시 레이캬비크로

스코가포스를 나와 에이야 피얄라이외퀼 빙하 지대의 화산이 폭발했던 지역을 지날 때만 해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 빙하 지대가 나오면 한번 올라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해안도로에서 빙하 지대 방향으로 표시된 비포장 도로에 들어선 지 5분 만에 나는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도로는 생각보다 험해서 각종 돌멩이가 소형 승용차의 바닥을 후려치기 시작했고, 눈 앞에 나타난 비탈길을 전륜 소형차로 올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기 내내 반복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4륜 구동 SUV를 빌려야 한다.


남부 해안도로를 타고 다시 레이캬비크로 방향을 잡았다. 길의 양 옆에는 여전히 이름도 모를 수많은 폭포가 있었고, 아침에 통과했던 화산암 지대를 다시 되짚어 왔다. 20년 전에 캐나다 로키 산맥을 운전하면서 거대한 산과 에메랄드빛 호수와 숲 길에 감탄했었는데, 그 풍경과는 다르지만 드라이빙 자체만으로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슬란드도 캐나다 같은 느낌을 준다.  

나와는 달리,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한 겨울에 아이슬란드를 여행 갔었던 지인은 좀 다른 평가를 했다. 그는 오로라 대신 일주일 내내 눈만 봤다고 한다. 겨울이라면 해도 짧았을 테니, 늘 어두운 가운데 눈보라가 몰아쳐 도로와 들판도 구분이 안되어 매우 고생했었다고. 겨울의 오로라는 날씨 운도 중요하다.

운전하면서 보는 흔한 아이슬란드의 도로 옆 풍경

숙소로 돌아온 가족들은 모두 저녁이고 뭐고 밖으로 나가길 거부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기꺼이 시내로 나가서 클린턴 대통령과 '꽃보다 청춘'들이 먹었다던 80년 전통의 그 유명한 레이캬비크의 핫도그를 사 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는지 구글 맵으로 정확히 위치를 파악하고 갔음에도 사람들이 줄 서 있어야 할 그 집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옆의 다른 집에서 핫도그를 사서 숙소로 배달했다. 고칼로리의 핫도그는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한 끼 저녁식사로는 대체할 만했다. 그렇게, 이번 아이슬란드 가족 여행은 반환점을 돌았다.

레이캬비크의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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