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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Dec 01. 2019

트램길을 따라가면 리스본이 보인다

대항해시대의 중심, 리스본으로 떠나는 가족여행 #3

트램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890년대,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서울에 전등과 전차를 설치하고자 미국에서 온 헨리 콜브란(Henry Collbran)과 왕실의 합작회사로 한성 전기 회사를 설립하고 1899년에 서울에 전차를 개통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영화에서 보듯 1950년대에도 전차는 서울 시내의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빨리빨리’ 문화와 ‘현대화’를 추구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던 전차가 자동차에 밀려 사라졌지만 유럽에는 대부분의 나라에 여전히 트램이 다닌다.

하긴, 사람들이 서울로 물밀 듯 몰려들고 시내버스도 안내원이 사람들을 밀어야 탈 수 있던 개발 시대에 노면전차는 별로 실용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 시대 보신각 앞의 노면전차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층 버스로 유명한 영국은 트램이 기차나 버스가 가지 않는 루트로 다니며,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여전히 트램이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트램을 타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예전에도 샌프란시스코의 언덕길이나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를 오르는 트램을 타며 신나서 들떴던 경험이 있다.


전기로 가는 트램은 매연과 소음이 없는 데다 도시에 운치를 더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멋진 탈것이다. 느릿느릿 가는 트램은 각박한 도시 삶에 여유를 준다. 좁고 작은 공간에 앉아 서로를 흘깃거리며 눈인사를 나누는 정겨움이 있는 공간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좌)와 암스테르담의 트램(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유럽의 트램 중에서도 리스본의 트램은 조금 더 특별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단 량’ 트램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처럼 관광용으로 조금 다니는 줄 알았는데, 구시가를 돌아다녀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 칸짜리 트램이야말로 알파마 구시가의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가 심한 골목길을 다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짜리 몽땅 트램은 자동차가 통과하기 어려운 길도 쉽게 간다.

아들이 노랗고 빨간 한 칸짜리 귀여운 트램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여행의 하루는 이 트램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리스본을 달리는 트램. 코메르시우 광장 근처에서.


 페드로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

구름이 많이 끼고 간간히 비도 흩뿌려 첫날보다 약간 궂은 날씨였으나 우리는 전날 아침에 갔던 아기자기한 빵집을 다시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기억해서 환하게 반겨 주었다.

커피 한 잔과 구수하고 달짝한 빵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노란색 28번 트램에 올랐다. 28번 트램은 구시가와 주요 관광지들을 다니기 때문에 리스본 트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오후가 되면 이 트램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하며 소매치기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한산한 아침에 타서 사람들이 대부분 앉아 있었고 운전사는 딸랑딸랑 작은 종소리를 내며 좁고 가파른 구시가 언덕길을 내려갔다.

내 계획은 트램의 기점인 마르팀 모니즈(Martim Moniz) 역 광장에서 메트로를 탄 후, 엘레바도르(급경사를 오르는 일종의 케이블 카)로 갈아타고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의 리스본 구시가 28번 트램 안 풍경


마르팀 모니즈 역 광장이 특별한 이유는 상 조르제 성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광장을 병풍처럼 둘러 서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주기 때문이다.

날이 흐리지 않았다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색감이 더욱 두드러져 도시의 모습이 화사하게 보였을 텐데 잔뜩 흐린 날이 좀 아쉬웠다. 이 광장은 28번 트램의 기점이기도 해서 오후가 되면 트램을 타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르팀 모니즈 역 광장에서 바라본 상 조르제 성


마르팀 모니즈 역 광장에서 바라본 상 조르제 성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 같이 생긴 엘레바도르를 타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왕복으로 탈 수도 있고, 한쪽으로 올라갔다가 언덕 반대쪽으로도 내려올 수 있는데 엘레바도르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서 재미있다.

급경사의 언덕을 오르는 열차의 레일은 언덕 꼭대기에서는 단선이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복선으로 늘어나며, 내려가는 차량과 올라가는 차량이 중간에 교차하게 된다.

 

엘레바도르는 평지에서는 다닐 수 없는 구조이고 전망대 언덕 꼭대기에서 아래 종점까지는 불과 수백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에, 출발한 지 몇 분 안되어 내려야 하는 약간 당황스러운 경험을 선사해 준다.

엘레바도르를 타고 신나서 흥분한 아들이 몇 분 만에 내리라는 말을 듣고 아쉬워했다. 티켓이 에버랜드의 자유이용권이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탔을 것이다.

올라갈 때 탔던 엘레바도르(좌)와 내려갈 때 탔던 엘레바도르(우)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리스본의 엘레바도르 내부 모습


리스본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에 올랐는데, 비구름과 안개에 가려 시내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올라가기 싫은 전망대를 고집하는 아빠가 못마땅했던 아이들은 급기야 '이거 보려고 온 거냐'며 투덜거렸고, 덕분에 이후로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을 다시는 올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리스본은 전망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피렌체에 뒤지지 않는다. 맑은 날에 석양이라도 내려앉는다면 붉은 지붕과 어우러져 환상적일 것 같았다.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스본 시내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스본 시내. 이슬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였다.


전망대에서 호시우 광장 쪽으로 내려온 나는 재빨리 점심식사 장소를 물색해 해산물 식당으로 들어갔다. 바다를 낀 남쪽 나라답게 포르투갈에는 해산물 요리나 염장 음식이 모두 발달했다.

해산물은 싱싱했고 요리는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담백한 방식이 많았다. '삶은 대구' 요리나 그릴에 구운 오징어 요리 역시 신선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담백해서 매운 우리 양념이 그리워지긴 했다.

 

그나마 영국에서 그 귀한 대구를 모두 튀겨버리는 '피시 앤 칩스'에 실망했었는데 이 곳에서는 다양한 음식 문화에 만족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해산물뿐 아니라 스테이크도 유명하다.

예전에 영국인 친구에게 '너희는 섬나라라서 신선한 해산물이 많은데 왜 다 튀겨 버리냐?'라고 물었더니, '튀기기 좋게 신선하니까'라는 우문현답을 주고받았던 생각이 난다.

스페인의 하몽과 비슷한 돼지 뒷다리 햄(좌)과 신선한 해산물 재료(우)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지만 너무나 담백했던 오징어 구이


리스본 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을 팁이 있다.

어느 레스토랑이든 종업원들은 손님이 주문하지 않은 가벼운 스타터나 빵 등을 쓰윽 가져와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또는 이미 테이블 위에 빵이나 올리브가 올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음식을 한국처럼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먹게 되면 계산할 때 후회하게 된다.


두 번가량 원치 않던 음식을 먹고 수업료를 치른 후, 내가 주문하지 않은 음식을 가져오면 다시 가져가라고 꼭 말하게 되었다. 특히, 코메르시우나 호시우 광장 등 유명 관광지의 식당은 웨이터가 그냥 가져와 올려두는 음식 가격이 메인 요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물정 모르는 뜨내기 관광객이 당하기 쉽다.

점심을 먹었던 이 식당에서도 '방금 막 튀겨 신선하고 맛있다'며 생선 크로켓을 본 요리가 나오기 직전에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냄새가 좋다며 맛볼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먹은 크로켓은 3개 들이 한 접시가 3유로라서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맛도 좋아서 웃으며 넘어갔다.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

오후에는 트램길을 따라 리스본 대성당으로 향했다. 전형적인 고딕 파사드의 쌍둥이 석탑과 가운데 장미 창이 무척이나 견고해 보이는 이 대성당은 리스본 대주교좌이다. 중세 유럽에서 대성당(Cathedral)이란 대주교가 있는 곳에만 지을 수 있었던 바, 이 성당이 리스본 대교구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석탑이 견고해 보이는 성당이지만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 주 예배당과 판테온 등이 반파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하며, 20세기에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발굴과 증개축이 있었다고 한다.

리스본 대지진 때 파괴된 대성당의 모습.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대성당은 원래 포르투갈에서 무어인들을 몰아낸 '정복자 알폰소 1세(Alfonso I the Conqueror)'가 1147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14세기에는 고딕 양식이 가미되었다가 대지진 후에는 바로크, 로코코 양식도 더해져 세월에 따라 다양한 양식이 섞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고딕과 어울리지 않는 양식이 많이 제거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성당 입장은 무료이고 내부는 웅장한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당 안으로는 들어가기 싫다고 강력하게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아빠에게 5분만 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리스본 대성당의 정면 파사드(좌)와 실내(우)


정작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트램 때문이다. 성당 앞을 굽어 지나가는 트램 길이 성당과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광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원색의 트램 사진이 리스본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길이야 말로 리스본 트램을 따라가는 도보 여행길의 하이라이트이다.  

리스본 대성당과 트램
대성당을 향해 올라오는 28번 트램


대성당을 지나 좀 더 동쪽으로 걷다 보면 다시 알파마 지구의 강변 쪽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게 된다.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느리고 여유 있는 옛 도시의 정취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원색으로 빨갛고 노랗게 칠한 문과 벽이며, 창문의 발코니 곳곳에 장식해 둔 꽃을 보니 긴 세월에 녹아 있는 남유럽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낭만에 미소를 짓게 된다.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은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 때문에 원주민들의 사생활 침해 고통이 심하다는데, 부디 이 곳 사람들이 우리 같은 관광객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조심히, 그리고 조용히 걸었다.

알파마 구시가지 골목길의 집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

알파마 지역의 동쪽까지 갔다가 트램길을 따라 다시 시내 중심으로 나와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향했다. 리스본의 상징으로 테주 강에 접한 이 광장에는 원래 16세기 초반, 마누엘 1세의 명에 따라 지어진 히베이라 궁전(Paço da Ribeira)이 있었다.

궁전은 대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약 250여 년간 포르투갈 왕실의 주거지였는데, 대지진 후 당시 왕이었던 주제 1세(José I)가 밀실 공포증에 걸리는 바람에 궁전이 그 자리에 재건되지 못했고 이름 그대로 상업 용도의 광장(Commercial Plaza)으로 바뀌었다.

대지진 직전의 히베이라 궁전의 모습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대지진으로 모두 무너져 내린 리스본과 광장을 재건한 사람은 1대 폼발 후작이라고도 불리는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 총리였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재난 복구와 전염병 확산 방지, 구호 등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의 방식대로 리스본은 지진 후 10년에 걸쳐 계획도시로 차근차근 다시 일어섰으며, 리스본의 건물들은 내진 설계까지 적용되었다고 한다.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유능한 지도자가 어떻게 재난을 극복해 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아있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 주제 1세(José I)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은 자유로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고, 한가롭게 갈매기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 광장 한 편에서 버스킹 하는 길거리 음악가, 비눗방울 놀이로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행위 예술가며 강변 모래톱에서 햇빛을 쬐는 사람들 등 광장은 저마다의 일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품어내고 있었다.


주제 1세 동상 뒤쪽에 광장을 보며 서 있는 거대한 아치형 문은 리스본 대지진을 극복하고 도시를 재건해 낸 것을 기념하는 아우구스타 개선문(Arco da Rua Augusta)으로, 코메르시우 광장과 호시우 광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좁고 답답한' 골목길만 걸었던 아들은 넓은 광장에서 비눗방울 아저씨와 아이들 무리 속에서 한참을 뛰어다녔고, 나중에는 아예 강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그렇게 좋아하는 물놀이로 오래 시간을 보냈다.

주제 1세의 청동 동상과 뒤로 보이는 아우구스타 개선문. 사진은 전날 찍었다.
광장에서 갈매기에게 밥을 주는 사람(좌)과 버스킹 중인 길거리 음악가(우)
비눗방울에 흥분해서 한참을 뛰는 아들. 동네 아이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사진은 전날 촬영)


상 조르제 성(Castelo de São Jorge)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긴 오후의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의 트램길 여정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광장 근처에서 다시 트램을 타고 상 조르제 성까지 오르기로 했다.

광고판도 붙어 있는 리스본의 트램. 코메르시우 광장 근처.


리스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상 조르제 성의 역사는 이슬람이 지배했던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군사적 요충지였던 높은 언덕이었던 탓에 요새로서의 성은 그때부터 건설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리스본을 기독교 문명으로 탈환한 후에도 이 성은 도시의 방어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리스본이 포르투갈의 수도가 된 1255년에 이르러서는 알폰소 3(Alfonso III)세의 명에 따라 왕실의 거주지로도 확장되었다.


성이 완성되었던 14세기 후반에는 탑만 70여 개에 문도 30여 개가 넘었다고 하며,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위협에 대항하는 요새이자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실 거주지로서의 역할은 15세기에 히베이라 궁전이 테주 강변에 건설되면서 끝나게 된다.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며 포르투갈의 국력이 스페인에 견줄 만하게 강력하게 되고 외부의 위협이 줄어들면서 더 이상 불편하게 산꼭대기에서 살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상 조르제 성의 입구.


견고하게 돌로 구축된 성은 안쪽도 몇 겹의 성벽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성을 둘러싼 성벽 위에 오르면 리스본의 시내와 테주 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으로 보인다.

날씨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침 비가 그쳐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기 좋았다. 상 조르제 성도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데 우리에게만큼은 날씨가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하긴, 아이들이 일몰 시간까지 기다려줄 리도 없었다.   

상 조르제 성에서 내려다본 리스본 시내. 저 멀리 4월 25일 다리가 보인다.
상 조르제 성벽에서 내려다본 리스본 시내
성벽 대포 진지에서 바라본 시내(좌)와 성벽을 오르는 아이들(우)


밤의 정취를 더하는 트램

상 조르제 성까지 트램길을 따라 돌아본 우리는 저녁식사로 리스본의 스테이크를 낙점했다.  

포르투갈의 스테이크는 고기 질도 좋지만 가격이 매우 싸서 생각보다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사춘기에 들면서 채식주의를 선언한 딸 덕분에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다른 메뉴도 있어서 같이 갈 수 있었다.

리스본의 스테이크


스테이크 하우스가 숙소에서 가까운 데다 밤바람이 시원해 숙소로 28번 트램길을 따라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트램 한 대가 움직이지 않고 레일 위에 서서 계속 '딸랑딸랑' 종만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흥분한 트램 운전사는 밖으로 나와서 알아듣지 못할 말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승객들은 두리번거리며 앉아 있었다.


가만 보니, 작은 승용차 한 대가 길가 주차를 잘못해서 차 뒷부분이 레일을 침범한 탓에 트램이 앞으로 가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트램 운행 간격이 10분인데, 승용차 운전사를 찾지 못하면 전체 트램의 운행에 차질이 빚어질 판이었다. 상황은 우스운데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트램 안에 앉아 있는 승객들을 보니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구경하다가 그곳을 벗어났으므로 결과는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 뒤에서 트램은 계속 종을 울리고 있었고 숙소까지 걸어오는 20분 남짓 동안 트램이 한 대도 지나가지 못했다. 정거장에 마냥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트램 레일을 침범한 승용차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트램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한 리스본의 트램은 특별했다.

쿠르릉 쿠르릉 레일 위에 굉음을 내며 수백 년이 넘은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트램 안에 앉아 있으면 창 밖으로 들어오는 밤바람마저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 날은 아이들 뿐 아니라 아내와 나도 모두 트램의 매력에 빠져, 틈만 나면 트램을 타고 다닐 궁리만 했었다.  


느리고 여유 있게 트램을 타고 다니면 리스본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내가 마치 장난감 속에 있는 것 같다.

리스본의 야간 트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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