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지킨 자연의 나라, 스위스로 떠나는 가족여행 #9
취리히의 쿤스트하우스는 1910년에 개장한 미술관이다.
스위스 여행객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미술관에는 스위스 뿐 아니라 17세기 이후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아 컬렉션의 수준이 높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 중세 화가부터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등 근대를 지나 뭉크, 샤갈, 피카소, 칸딘스키 등 근현대 화가들까지 가슴을 울리는 예술의 전당으로 방문해볼 만 하다.
스위스는 중세 후반까지 용병업이 산업의 근간이었던 가난한 나라였다. 회화 예술의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많지만 스위스에 대한 이미지는 알프스의 자연 외에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애당초 내가 쿤스트하우스를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잡았던 이유도 융프라우 여행에 대해 별 1개로 혹평을 주었던 사춘기 딸로부터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쿤스트하우스는 별 기대가 없었던 나의 편견을 한 방에 날리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후를 환상적으로 장식해 주었다.
그로스뮌스터 주위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점심을 생략한 채 얼른 쿤스트하우스로 향했다.(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를 둘러싼 전설과 역사) 리마트 강가로부터 도보로 5분 남짓 걷다 보니 외관상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미술관 입구가 보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유명 미술관 대비 한적한 모습이었다.
그림 감상은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으나 미술관의 컬렉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 높고 방대해 어림도 없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는 초반부터 아이들을 주요 화가들의 작품 앞에 세워두고 '미술 강의'에 들어갔다. 생각도 못했던 작품들에 감탄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천히 걷다 보니 마지막에는 시간에 쫓겨 근현대 작품을 대충 훑어봐야 해서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능하다면 비행기 시간을 바꿀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안될 일이었다. 이는 컬렉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생긴 해프닝인데, 쿤스트하우스는 서너 시간도 부족해 여러 번에 걸쳐서 와봐야 할 곳이다.
제일 먼저 들어간 전시관은 16 - 17세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화가 중심의 바로크 미술관이었다. 이 시기에 서유럽에서는 르네상스와 맞물려 회화 예술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때였다. 렘브란트(Rembrandt)나 루벤스(Rubens)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나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 그리고 얀 판 카펠레(Jan van Cappelle) 등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17세기 플랑드르(네덜란드와 벨기에 저지대)의 대표 화가였던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는 자신의 수많은 자화상처럼 인물의 초상을 거친 화법으로 담았던 화가이다. 벽에 걸린 '사도 시몬(Apostle Simon)'이라는 작품은 12 사도를 주제로 한 명상에 잠긴 노인을 주제로 하는 그의 작품 중 하나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벨기에에서 자라 작품 활동을 했던 루벤스(Peter Paul Rubens) 역시 17세기 유럽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화려한 색감과 역동성 그리고 관능적인 인물의 묘사가 잘 드러난 작품들이 많다.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이자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보고 싶어 했던 성당 제단의 성화(聖化)를 그린 화가가 루벤스이다. 전시실에서 눈에 띈 작품은 '성가족(Holy Family)'이라는 그림으로 루벤스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많이 그렸다.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는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바로크 화가로 전시실에는 그가 그린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 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us and Eurydice before Pluto and Proserpina in the Underworld)'가 걸려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그들의 만남부터 에우리디케가 지하(저승) 세계로 끌려가는 이야기, 오르페우스가 저승의 신 하데스를 감동시켜 에우리디케를 구출했으나 저승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에우리디케를 다시 잃은 이야기 등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이기 때문이다.
쿤스트하우스에는 루벤스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도 있어 비교해 보기 좋다.
중세 시대 유럽의 문예 부흥 운동이었던 르네상스는 14세기경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나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18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과거의 강력한 해양국가로서의 명성은 잃었지만 화가들의 그림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은 전 유럽에서 화재를 모았다.
쿤스트하우스에서는 베네치아의 건축미를 웅장하고 정확하게 표현했던 카날레토(Giovanni Antonio Canaletto)나 그의 조카 벨로토(Bernardo Bellloto), 서정미를 강조했던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베네치아 출신의 카날레토는 도시의 풍경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베네치아 풍경화의 대가이다. 그가 그린 '두칼레 궁전에서의 대사 영접(Reception of an Ambassador at the Doge's Palace)'은 프랑스 대사가 베네치아 공화국에 도착할 때 이를 영접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행사의 모든 디테일과 절차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했다가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카날레토의 작품 근처에는 그와 다르게 몽환적이면서 서정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전혀 다른 풍경화를 볼 수 있는데 바로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지텔레 성당과 지우데카 섬(The Giudecca with the Chiesa delle Zitelle)'이다.
과르디는 과학적이고 정교함 대신 시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18세기 후반 베네치아의 대표 화가이다.
베르나르도 벨로토는 과르디의 조카로 18세기 중반부터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 유럽의 대도시를 여행하며 건물과 유적지 등을 세밀하게 그려냈던 소위 베두타(Veduta) 미술의 최고봉이었다. 작센 공국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궁정 화가이기도 했던 그가 드레스덴에서 머물 당시 그렸던 '드레스덴 크로이츠 교회의 폐허(The Ruins of the Kreuzkirche in Dresden)'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와 프로이센 간에 벌어진 7년 전쟁 당시 프로이센에 의해 종탑의 뼈대만 남기고 파괴된 처참한 교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와 바다를 주제로 하는 해양 풍경화는 17세기 이후 네덜란드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동인도 회사를 통해 식민지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던 네덜란드를 해양 강국으로 만든 것은 선박 제조 기술로, 당시 네덜란드는 전 유럽에서 사용되는 선박의 절반 가까이 만들어 내던 나라였다.
전시실에 누가 봐도 네덜란드 풍경화로 보이는 그림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얀 판 데 카펠레(Jan van de Cappelle)의 '스헬트 입구의 보트들(Boats on the Mouth of Scheldt)’이었다.
카펠레는 최초로 선박을 통한 해양 풍경화 영역을 개척한 화가였지만 빌렘 반 데 벨트(Wilem van de Velde) 부자에 가려 명성이 덜 하다. 우중충한 잿빛 구름이 특징인 네덜란드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 색감과 분위기가 벨렘 반 데 벨트 부자의 그림들보다는 한층 어둡다.
쿤스트하우스는 스위스 미술관답게 스위스 화가들의 작품 전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중에도 유독 눈에 띄었던 그림은 헨리 푸셀리(Henry Fuseli)의 다양한 작품들이다. 푸셀리는 취리히 출신의 화가이자 예술가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다.
그의 전형적인 화풍과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림이 전시실에 크게 걸려 있는데 바로 '초기 동맹의 맹세(The Oath of the First Confederates)'라는 작품이다. 1291년에 스위스 동맹을 최초로 결성했던 3개의 주(우리, 슈비츠, 운터발덴)를 의미한다.
푸셀리의 초현실적인 그림들은 전시실에서 다수 볼 수 있다. 바로 ‘세탁 바구니의 헛발(Falstaff in the Laundry Basket)'과 같은 작품들이다. 문학에도 통달했던 그였기에 그의 작품에는 신화와 전설을 철학적이고 초자연적으로 해석한 그림들도 많다.
쿤스트하우스에는 18-19세기 스위스 화가들의 작품들도 대거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작품들이 하나같이 스위스 역사의 명장면 또는 독특한 스위스의 자연환경과 풍습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웃는 그림이 재미있어 살펴보니, 알버트 안커(Albert Anker)의 '카펠에서의 우유 수프(The Milk Soup at Kappel)'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카펠이라는 지명이 낯설지가 않다. 이 그림은 1529년 스위스에서 있었던 가톨릭 주와 신교 주 간의 내전인 카펠 전투에 참전했던 군사들의 휴식시간을 묘사한 것이다. (취리히에서 엿본 험난한 스위스 독립의 역사)
알버트 안커는 스위스의 풍습과 생활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많이 그려 국보급 화가로 불렸다고 한다. 전시실에 보면 스위스인의 결혼 모습, 벽난로 옆에 잠든 자매의 모습 등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아슬아슬한 절벽의 내리막길을 따라 마차가 달린다. 백마들은 금방이라도 화폭을 찢고 달려 나올 듯한 이 그림은 스위스 출신으로 사실주의와 고전주의의 대가였던 루돌프 콜러(Rudolf Kolller)의 '고타드의 우편(The Gotthard Post)'이라는 작품이다. 우편배달부가 거친 알프스 고개를 넘으며 소떼를 추월하려는 장면이 대단히 역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보인다. 알프스 고개를 넘었던 역마차는 20세기 이후 기차가 놓이며 사라졌으니 당시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림이다.
미술관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거장들의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로 유럽의 회화 예술 시장은 크게 바뀌어 갔다. 교회나 왕족들로부터 들어오는 커미션이나 의뢰가 줄어드는 대신 파리의 '살롱'처럼 화가들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 것. 그 격동의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유럽의 화가들이 세상에 나왔는데, 쿤스트하우스에서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그중 특이한 그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문이나 광고판 같은 나무판 위에 직접 그려진 그림이 프레임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거칠고 역동적인 말을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다루는 남자의 강렬한 인상이 돋보이는 이 그림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대장장이(Blacksmith)'이다.
제리코가 그린 가장 유명한 작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거대하게 걸려 있는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루브르에 갔을 때 그 그림 앞에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던 나는 제리코라는 예술가의 이름도 머릿속에 새겼었는데 그의 작품을 취리히에서 만나니 매우 반가웠다.
이 미술관에는 제리코뿐 아니라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어 있어 눈길이 간다.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그린 예술가이다.
한편, 역동적인 그림과 함께 은은한 빛의 향연이 고요한 풍경화 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19세기 인상주의파의 태동,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로마의 교외(Compagna Romana)'이다. 젊어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코로는 중년이 훌쩍 넘은 1845년 이후에야 근대 풍경화의 리더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쿤스트하우스에 소장된 그의 작품은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에 그린 그림이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아버지인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그림 앞에 발길이 멈췄다. 생전에 살롱에 많은 작품을 출품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비판도 받았던 마네였지만 그는 사후에 인상주의 화파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조명받는다.
쿤스트하우스에 있는 이 그림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인이었던 앙리 로쉐포르가 뉴칼레도니아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마네가 인상주의에 씨앗을 뿌렸다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인상주의(Impressionalism)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며 끝까지 지켰던 대부였다.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강조하는 인상파 화풍은 19세기 프랑스 미술을 대표한다.
쿤스트하우스는 마네의 작품뿐 아니라 세잔(Paul Cézanne), 고갱(Paul Gauguin) 및 고흐(Vincent van Gogh) 등 거장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출신의 천재 화가 고흐는 정신질환으로 자살하기 전까지 불과 10여 년의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그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박물관에 가면 그의 생애에 걸친 이야기와 수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곳 쿤스트하우스에서조차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곳에는 그의 색채가 뚜렷한 풍경화와 더불어 자화상, 감자를 캐는 농부와 같은 그의 초기 작품들을 감상해 볼 수 있다.
19세기 작품까지 관람하고 나니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작 중요한 모더니즘 예술은 여유를 가지고 감상하기 어려웠다. 20세기 전시관에서 내 눈에 띄는 작품들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앙리 메티스(Henri Matisse),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들이었다.
특히,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미술가로 손꼽히며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이기도 한데, 이날 오전에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프라우뮌스터(Fraumünster)에 가려다 아이들의 반대로 들어가지 못했었기 때문인지 쿤스트하우스에서 그의 작품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일찌감치 유학했던 샤갈은 2차 대전 때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프랑스인이 되어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만큼 복잡하고 다채로운 인생을 살았다.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를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담아낸 그의 그림에는 하늘을 나는 연인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 파리나 러시아의 마을 풍경, 꽃과 동물이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많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데 쿤스트하우스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비행시간 때문에 시간 여유가 없어 근현대 거장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생각보다 충분히 감상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 거금 58 프랑을 들여 쿤스트하우스의 작품집을 구입했다. 유럽의 미술관을 다닐 때 자질구레한 기념품 말고 그 미술관의 작품집을 구입하면 여행 후에도 두고두고 그때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어 좋다.
알프스의 자연만 생각했던 스위스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예술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어 행복했다. 쿤스트하우스도 니스의 샤갈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처럼 늘 기억에 남는 곳이 될 것 같다.
쿤스트하우스를 마지막으로 스위스 가족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