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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Aug 11. 2021

영국에서 박사과정생으로 산다는 것.

어제의 나하고만 비교할 것.  

박사과정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 삶에서 적지않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박사과정은 공부하랴 지도교수님의 일정 또한 신경 쓰랴 (모든 연구실에 해당하지 않지만) 개인 스케줄대로 마음껏 지내기가 어려운 반면, 여기 영국에서의 박사과정은 지도교수님과 자주 만나지도 않을뿐더러  누구도 공부하라고 재촉하는 이가 없기에 학생 혼자서 모든 일정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백수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전공에 따라 조금씩 그 문화는 다르겠지만, 내가 있는 학교는 그 누구도 나에게 공부해라. 언제까지 뭘 해라. 지시하는 이가 없다. 한국에서 어깨너머로 박사과정생의 삶을 넘겨짚어 봤을 때는, 지도교수님의 하루 일정과 자신의 학업 스케줄을 동시에 챙기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무도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곳에서의 불안함 또한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학부나 석사과정과는 달리 (그곳이 한국이던 미국이던 영국이든 간에) 박사과정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다. 물리적 외로움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매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느껴지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차라리 눈코 틀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챗바퀴에 내던져져 있다면 이러한 고민을 좀 덜 하게 되진 않을까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박사하고 있는 형 누나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마 박사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은 분명히 적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고, 한국 정서는 가만히 서있어도 뒤에서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니 현실에 치이면서 그토록 바쁜 와중에 미래까지 걱정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사 학생으로서 버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오직 어제의 나 자신과의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어엿이 직장에 다니고, 삶의 경로가 어느 정도 정해져서 그 길을 따라 쳇바퀴 돌듯 살고 있다. 사실 미래 불확실성이 엄습하는 때에는 그 쳇바퀴 안에 있는 친구들마저 부러워진다. 그 푸념마저도 나는 부럽다. 과거 운동선수로써 그리고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낙관적인 마음으로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독이 된 적은 있지만 이토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에서 박사 학생으로서 버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오직 어제의 나 자신과의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 이걸 못하면 박사과정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했나. 어느새 주변의 박사과정생과 그리고 주변의 성공 케이스와 나를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금세 풀이 죽는다. 하지만 오직 어제보다 나아진 것을 찾으면 분명히 정신적으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상당 부분 발전한 나를 알 수 있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설명한다.


당신이 어떤 분야에 소질이 있고 나름대로 내세울 만한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세상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수두룩 하다. 농구를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만큼은 아닐 것이다. 달리기가 아무리 빠른 사람도 우사인 볼트만큼 빠르지는 않다.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 하고만 비교하라.” >


우리의 내면에는 자신의 소소한 노력들을 무자비하게 깎아내리는 내면의 비평가가 살고 있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통념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을 평가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오직 어제의 나 자신과만 비교해 볼 것! 의식하지 않으면 과도하게 남과 나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강박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나에게 꼭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정신승리와 같이 늘 주관적인 상태에 머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것 (혹은 잘 결정한 것)과 무엇이 나아졌는지 적기 시작했다.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추려졌다.


1. 익숙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기로 한 것 (유학을 결정한 것).
2. 석사를 졸업한 것.
3.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
4. 연간 리뷰를 무사히 통과한 것. (박사과정 중 1년에 한 번씩 연구과정을 리포트해야 한다).
5. 영어로 원서를 읽었을 때 대략적으로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여전히 100%는 안된다)


내가 운동선수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강조하는 것이지만, 운동선수는 한 번쯤 최고를 꿈꿀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릴 수 만 있다면 운동선수가 다시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헛된 꿈도 꾸어본다. 그것이 내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도 아니고, 올림픽에 가지 못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다시 한번 삶에서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선명한 기대를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한 개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재능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가 견뎌내고 있는 이 박사 생활을 통과하면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은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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