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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Jan 23. 2020

대한민국 엘리트 운동선수  

경쟁은 잘못이 없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나는 삶의 대부분을 엘리트 체육인으로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경쟁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선수가 아주 특출 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상대방이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은 그냥 운이 좋은 경우를 들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실력은 디폴트로 두고.


이야기에 앞서 필자는 경쟁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경쟁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고 또 경쟁이 주는 이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전제조건 늘 경쟁에 따른 상과 벌이 정확해야 된다는 것이다. 실력만큼 가지는 것이다. 특히 엘리트 스포츠 안에서는 더 냉정하게 작동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23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의 엘리트 체육은 부분적으로 기형적인 모양새로 경쟁이 이루어져 왔다. 1등이 금메달을 갖는 단순한 물리적 교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등으로 가는 길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어렸을 때 배우는 것은 이런 거다. 예를 들면,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엘리트 선수는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 혹은 또래에게 뒤쳐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마 성인도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먹는다. 몇몇 지도자들은 그냥 술자리에서 본인 친구들에게나 해야 될 비속어나 표현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린 선수들에게 쏟아붓는다.


그럼 그 어린 선수는 경쟁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게 될까? "아 나는 친구한테 지면 병신이 되는 거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겠네." 여태까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 문화는 2등한테도 옹색한 문화다. 1등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겠지만, 2등도 충분히 잘한 것이다. 3등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1등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대한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인들은 ‘오로지 1등이 되는 것’ 에만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등에 대한 잘못된 대우도 수도 없이 봤다. 먼저 지도자들은 선수의 성과를 오로지 본인의 지도력으로만 이루어 낸 것이라고 착각한다. 선수의 기량을 자신의 역량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한 예로 어떤 코치는 국제대회에 선발된 선수에게 선발 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 선수 대신 그 지도자가 염두에 둔 차순위의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한 선수는 하나의 기회를 잃었지만 지도자는 자신의 선수를 두명이나 국제대회에 출전시키는 경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 정도면 스승의 날에 선물 받을 자격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출전을 양보한 선수도, 비정상적인 양보를 받아들인 선수의 부모들은 별 힘이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부모가 코치에게 왈가왈부할 힘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레 그 지도자는 부모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가질 수 있었고,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부모도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다. 실화다. 이처럼 1등에 대한 리스펙트 또한 미진한 환경에서 2등이 설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뜬금없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러한 코치-부모-선수 상호 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시교육 말고, 그냥 공부). 하지만 선수에게 학교 공부를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입시경쟁에 뛰어들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받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대학입학이 목적이라면 굳이 학교 공부를 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물론 전제는 아주 특출 난 성적을 거두는 조건이지만 말이다.


결국 학교 공부의 의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선생과 학교의 커리큘럼의 문제이지 과목 자체 (수학, 과학, 국어 등)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가난한 가정환경에 있더라도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는 나라다. 이건 꽤 축복이라고 본다. 근데 그 공부를 자발적으로 안하다니! 물론 필자도 포함이다 (JONNA 후회됨).


사실 운동선수의 학교 공부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도자들과 부모들과 같은 어른들이다. 선수들은 사실 어른들의 의견에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수라면 알 것이다. 대한민국 대부분 (모두는 아닌)의 엘리트 체육은 비과학적으로 너무 많은 훈련을 한다. 개인의 의견이지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이재홍 축구 피지컬 코치의 인터뷰 자료가 있어 첨부한다 (http://www.football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71).


따라서 엘리트 체육환경에서 일어나는 코치-선수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선진 체육정책 도입이 필요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가 똑똑해져야 한다. 왜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트레이닝을 며칠 동안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지는 해야 하지 않나?


무조건적인 지옥훈련을 하고 보약으로 회복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도자의 말을 법처럼 여겨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니가 많이 알아야 코치도 노력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분위기는 선수가 너무 많이 알면, 생각이 많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지도자의 권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선수가 공부하는 것은 훈련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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