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스포츠만큼만.

공정한 기회의 장.

by 이현성

인간은 일찍이 경쟁이라는 가치 안에서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학우들과의 학업경쟁을, 사회에서는 동료들과의 성과 경쟁, 스포츠 안에 있는 다양한 경쟁을 비롯하여 가족 안에서 조차 경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경쟁은 후천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맞딱들이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핵심부터 이야기하자면 경쟁은 참 좋은 가치다. 속해있는 환경 혹은 타고난 조건에 따라 어떤 불공정함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일단 경쟁의 순기능은 바로 "내가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명제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이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사회에서 젠더 이슈를 예로 들어보자. 일각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아왔으니 정량적으로 기업에서 여성을 더 채용하거나 남성과 같은 비율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혜택을 받는 곳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 고려는 안 하는 것 같다. 모델계에서는 통계적으로 여성 모델이 같은 일을 했을 때 남성 모델보다 10배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남성을 향한 차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패션업계는 여성이 많고, 옷을 구매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여성이 더 많기 때문에 여성 모델의 가치가 올라가며 또 또 그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남녀 차별이라고 보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를 예를 들어보자.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남자 축구선수와 프로 여자 축구선수의 연봉 차이는 평균 10배가 넘는다. 성 평등론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스포츠 안에서 남녀 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이유는 남성들이 축구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남성이 더 축구에 적합한 성격과 신체를 가지고 있고 와일드한 성향의 스포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여성보다 남성들이 하는 축구경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며 시청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성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장가치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다.


스포츠 안에서 차별을 꼭 고려해야 한다면 남녀차별만 고려해야 할까? 인종차별은? 신체조건에 대한 차별은? 100M 육상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제껏 펼쳐진 거의 모든 올림픽 100M 결승전을 살펴봐도 대부분 흑인선수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백인이나 동양인에 대한 차별 때문인 것인가? 스포츠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모든 인종을 고르게 선발해서 경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시점은 승리를 경험했을 때가 아닌, 패배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패배는 선수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경쟁에서 이겨야만 선수로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이기기만 하는 순간에는 경쟁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패배를 맛보는 순간에만 결핍이 생기고, 이러한 갭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패배는 불가피한 경험이다. 그것이 상대와의 경쟁이던 나 자신과의 경쟁이던 간에 말이다.


나 또한 치열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쇼트트랙이라는 엘리트 스포츠를 경험했다. 쇼트트랙은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출현한 이후로 줄곧 세계적인 수준의 성과를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기에 비인기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엄청 치열한 스포츠 이다. 엄청나게 화려한 커리어는 아니었지만 나는 스포츠 안에서 나는 경쟁을 배웠고, 그 가치를 알았다. 하지만 나 또한 지난 약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을 이기는 것을 참 불편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지난 23년간의 경쟁은 개인적으로는 피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고, 또 어려웠다.




하지만 스포츠가 아닌 우리 사회의 다른 경쟁들을 고려할 때, 스포츠만큼 공정한 경쟁이 있을까? 아무리 백그라운드가 빵빵하고, 돈을 수돗물 틀듯이 써도 닳지 않는 사람 혹은, 천하의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한들 타고난 신체능력 혹은 단련된 신체와 멘탈리티가 승부를 결정 짓는다. 물론 선수 선발이나 출전 기회 같은 측면에서 선수의 실력이 아닌 스포츠 외적인 부분들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체육계도 물론 불공정거래의 행태가 만연한 조직임은 부정할 수 없다. 스포츠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영역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경쟁이 치열하거나 수준이 높은 종목에서는 선수 개인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중요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축구와 빙상을 예로 들어보자. 대한민국 축구가 지난 2002년 4강 신화를 이룬 후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그리고 현재의 손흥민, 이강인 까지 세계 축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성인 월드컵에서는 이에 상응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 프로축구리그의 레벨도 가까운 일본리그에 비하면 선수들에 대한 복지나 운영 그리고 시장의 크기 측면에서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수 선발과정에서 물리적인 외압이 전혀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예상컨대 협회와 감독진 그리고 선수와의 관계 같은 것이 대표팀 선발 혹은 프로 선수 선발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주전 선수 11명을 모두 손흥민과 같은 역량을 지닌 선수들로만 기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꼭 그렇다고 해서 우승을 보장할 수 없기에, 유수 기업의 자녀나 혹은 지인 그리고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깜짝 선발이 되는 경우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관련 기사). 결국 이러한 체육계의 부패에 따른 결과는 해당 종목의 전체적인 수준 저하를 야기한다.


다른 종목인 빙상은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파벌, 승부조작 (일명 짬짜미) 그리고 각종 폭행 이슈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법에 저촉되는 모든 실수와 만행을 이야기하자면 어느 조직하나 깨끗한 곳은 없으니 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단순히 경쟁의 관점에서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 빙상은 꽤 공정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기대하는 종목이라 감독이나 코치의 독단적인 권한으로 선수를 선발할 수 없다 (차별은 존재한다). 두 번째로 올림픽 메달을 딴다는 것은 (특히 금메달)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결승선에 먼저 통과한 실력이 뛰어난 선수 중에 가장 빠르고 정신이 강한 상위 극소수의 인원만이 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낸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실력 이외의 변수가 끼어들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축구와 같은 생활체육 기반의 엘리트 스포츠는 성과를 못 내도 계속 존재할 수 있지만, 빙상과 같은 비인기 스포츠는 '잘' 하는 데에 존재의 의의가 있다. 저조한 성적은 곧 해당 종목의 존폐의 문제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대한민국 쇼트트랙이라는 스포츠 안에서 경쟁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다른 스케이터들보다 재능이 좀 모자랐거나, 심리적으로 1등 멘탈리티가 부족했으며 조금 운이 없었다 정도로 나 자신을 기본적으로 탓하게 될 뿐, 기본적인 경쟁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외압으로 인한 불공정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필자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20년 이상 얼음 위에서 겪었던 필자의 개인적 경험적 데이터와 대부분의 쇼트트랙 선수가 겪은 일은 꽤 많은 부분에서 교차점 위에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스포츠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경쟁이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쟁 메커니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공정한 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체육계에서 캐캐 묵은 폭력 문제, 성폭력 문제, 독재자의 의한 전횡, 그리고 차별은 분명 해결돼야 하는 문제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완화되고 있다. 다만 요점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쇼트트랙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경쟁의 관점에서만 보면) 꽤 공정한 경쟁을 치르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필자가 했던 스포츠만을 옹호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경험한 스포츠가 나에겐 이와 같이 해석되었을 뿐이다. 핵심은 스포츠 내에서도 경쟁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스포츠만큼 공정하고 깨끗한 곳이 또 있을까? 중요하게도 노력한 만큼 결과가 다르다는 것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주). 이것 하나만큼은 스포츠 안에서 꽤 뚜렷이 나타나는 경쟁의 순기능이며, 오랜 스포츠 역사 동안 동일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스포츠 안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이슈들 때문에 스포츠의 본질까지 불공정하다고 관계 지을 수는 없다.


불공정한 일들이 만연한 사회에서 스포츠가 주는 경쟁의 공정함 그리고 노력에 따른 정확한 보상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경쟁, 스포츠만큼만 이라도 하자.


사진 출처: Thomas Wolter from 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