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오류

나이 많은운동선수들

by 이현성

한 스포츠에서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하며 사랑받는 선수들이 있다. 우리는 베테랑이라고 부른다. 베테랑의 영어적 의미는 참전용사를 뜻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으며 정점에 오른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국내 운동선수 중에는 최근에 은퇴한 축구선수 이동국이 떠오른다. 한 스포츠 안에서 오랜 기간 경험이 쌓이면 모두 프로가 될까? 단순히 경험만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체력적인 강함과 회복이 점점 더디게 되지만 수년 간 쌓아온 경험, 상황 대처 능력, 임기응변, 그리고 컨디션 관리 측면에서 젊은 선수들에 비해 가지고 있는 이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선수들이 종목에서 경험치가 쌓일 대로 쌓이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훈련법, 컨디션 관리 그리고 훈련 이외의 부분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아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오롯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이로운 것, 해로운 것을 자동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고 해야 할까.


dance-3134828_1920.jpg Image by pixabay


하지만 이와 같은 숙련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환상이다. 자신감과 자만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해서 개인이 늘 옳은 결정을 할 수는 없다. 베테랑들은 후배들과 같이 훈련할 때 코치가 설계한 훈련 심화 주기 및 회복 주기를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 훈련 강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베테랑 선수들은 기술적으로 고도로 숙련되어 있기 때문에 기량이 성큼성큼 성장하는 어린선수들만큼 훈련량에 매달리지 않아도 자신의 기량을 본인이 원할 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훈련량을 줄여도 기술적인 역량이 마모되지 않기에 더 이상 '훈련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갈고닦으면서 경기력을 귀신같이 유지한다. 이러한 루틴이 반복되다 보면 혹독한 훈련량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훈련의 양보다는 질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훈련강도를 스스로 설정하여, 지도자와의 의견 대립을 겪기도 한다.


물론 독단적이고 훈련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과학적인 근거가 부재된 훈련법으로 지도하는 코치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치는 자신의 팀의 성과를 위해, 최신의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훈련 심화 주기, 회복 주기 등을 설정해 훈련 스케줄을 만들고, 계획된 훈련량을 선수들이 소화해주길 바랄 것이다. 근데 만약 여기서 베테랑인 선수 하나가 코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훈련 스케줄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 선수들의 훈련을 방해한다면, 없느니만 못한 존재가 된다. 아니 같이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선수들에게 해악이다. 본인만 안 하면 되는데, 남한테 피해를 줘서 되나.


race-932254_1920.jpg Image by pixabay


구력이 길다고 해서 모두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기본적으로 고통과의 싸움이고 매 순간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찬 선수들은 대부분 '양보다는 질' 딜레마에 빠지기 쉽고, 그저 훈련의 질에만 심취해서 절대적인 양을 터부시 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래서 과학적인 훈련법, 적절한 휴식, 최신 영양전략이라는 미명 아래, 고통스러운 훈련을 회피한다. 하지만 최고의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 향상을 위해 한계를 넘고, 새로운 훈련법을 받아들인다. 애석하게도 과학적인 훈련법이, 과거에는 무식하게 참아가면서 버텨야 했던 이전 세대들의 경험을 프리패스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선체력 후 기술이라는 말을 나도 20년이 넘는 선수생활의 막바지쯤에는 낡디 낡은 슬로건 정도로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누가 납조끼를 입어?' '요즘 시대에 누가 산을 타?'와 같은 생각. 나도 했다. 한편으로는 타고난 재능과 운 같은 것이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패배에 대비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에 불과 했을 뿐, 기량을 늘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실 재능은 키워지기도 하고 예상보다 뒤늦게 발현되기도 한다. 엘리트 스포츠에서 경쟁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 다만 슈퍼 재능을 가진 선수가 고개만 돌리면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에 자신이 상대적으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솔직히 정말 재능이 없는 선수들은 그 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걸러진다. 결국 보통의 엘리트 선수와 슈퍼 엘리트 선수를 가르는 지표는 체계적이고 좋은 훈련을 가능한 많이 하고, 훈련 이외에 방해 요소 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물론 선수의 부상을 초래하는 무자비한 훈련법은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 스포츠에서 부상이란 휴식과 회복에 철저히 신경 쓴다 해도 배제할 수 없는 잠재적 요소이기 때문에 부상이 없는 훈련, 다치지 않을 만큼의 경쟁이라는 것은 없다. 기량이 좋은 선수일수록,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자주 경쟁한다. 당연히 부상의 가능성 또한 증가한다.


다시 말해, 고도로 정교해진 훈련법과 과학적인 회복을 통해 부상을 어느정도 방지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훈련해야 했던 이전 세대들 만큼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예방해 줄 수 있지만, 결국 고도화된 훈련 환경 에서 조차 자신의 한계를 넘고, 죽기 아니면 살기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 붙히는 선수들만이 다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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