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 말고 승리하는 법.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승부에서 이기려면 지는 법부터 알아야 한다."
엘리트 선수라면 한 번쯤은 지도자로부터, 부모님으로 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법 또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익혀야 할 심리기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매 순간 경쟁에서 이기는 데 별로 도움이 될 만한 마음가짐은 아니다. 지는 건 지는 거고, 이기는 건 이기는 거다. 물론 배려하고 져주는 것 또한 도덕적 성숙을 위해서 꼭 필요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엘리트 스포츠의 경쟁 밖의 영역, 즉 학교나 교우관계를 통해서 길러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하지만 대한민국 학생 엘리트 운동선수의 학업을 등한시하는 문화는 선수는 선수끼리 공부하는 학생은 학생끼리 갈리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스포츠라는 영역 안에서 경쟁의식, 윤리의식, 그리고 사회성을 동시에 함양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적잖은 혼란이 생긴다. 경쟁자이자 동료인 선수들끼리 경쟁을 하다 보면 친숙해지기도 하는데 동시에 이겨야 하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과 경쟁을 하다 보면 나만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실패해야 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타고나기를 지는 법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선수는 경쟁의 압박이 덜 하지만 기질적으로 모질지 못한 선수들은 경쟁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엘리트 운동선수처럼 매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라면 이렇게 까지 기질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운동선수라면 관계에 있어서 우호적인 성격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도덕적 윤리적 교육은 반드시 기본이라 함을 전제 하에 남보다 잘하는 것. 정정당당히 기량을 겨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
스포츠에서 경쟁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첫째,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무조건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스포츠에서 재능이나 운의 영역도 노력의 영역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이다 (프로 NBA 경기를 보라). 잘하기 위해서는 피땀 흘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기능적으로 우월한 인자 혹은 종목에 따라 환경적 제한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아는 것이 본인의 노력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지도자는 선수의 잠재력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훌륭한 지도자란 선수의 잠재력의 가능성을 여러 방면으로 열어 두어야 한다. 선수가 성장하면서 근질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마인드셋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선수를 판단할 때 일찍부터 '노력형 선수'와 '타고난 선수'의 프레임을 씌워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잠재력의 영역은 완벽한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능이 우월한 선수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선수가 노력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셋째, 이기든 지든 상관없다는 식의 격려는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결과에 승복하고,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경쟁이 끝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나 선수가 경쟁에 앞서 생각해야 할 유일한 생각은 이기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다. 지는 법까지 뭣하러 가르치나.
마이클 조던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 를 보면, 조던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여덟번째 에피소드에서 상대팀 루키 선수가 조던을 상대로 승리하고 "좋은 승부였어 마이클."이라는 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조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결과는 바로 다음 날 경기에서 조던은 상대팀을 박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루키 선수는 그러한 말을 조던에게 한 적이 없었고 단지 조던은 이기기 위해 상대가 그런 말을 했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신을 제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머릿속으로 지어낸 것이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어야 한다. 정신승리는 승자의 특권이다. 패자의 정신승리는 냉소와 허무주의에 가깝다. 물론 마이클 조던처럼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그저 승부에 대한 집착으로 상상 속에서 지어냈다는 말을 들으면 섬뜩하지만, 이기고 지는 법을 완전히 습득하려면 한번쯤은 제대로 경쟁해야 한다.
Image: Chicago Tribune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