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인가 친구인가?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것.

by 이현성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서 선수와 지도자 사이는 도제식 교육의 산물로서 코치의 권위가 지나치게 악용되어 왔다. 무차별적인 구타는 물론 훈련이나 경기 상황에서의 부당한 지시, 더불어 시대를 거스르는 인권유린 등이 그 예시다. 물론 폭력성의 빈도나 코치와 지도자 간의 관계의 양상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완화되었고 개선되고 있다. 지나친 권위의식으로 선수를 지도자의 소유물로만 생각해 자신의 목적을 대신 이루어 주는 대상으로만 인식할 때 폭력과 강압이 따른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요구에 따라 엘리트 스포츠계에서는 친구 같은 지도자가 각광받고 있다.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선수의 뜻이라면 절대적으로 우선시하여 존중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존중과 배려, 소통 그리고 형, 누나 언니 같은 코치. 요즘 트렌드와 일맥상통하고 오히려 체육계가 그러한 변화를 늦게 받아들인 것을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심지어 쿨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권위를 내려놓은 채 선수를 가르치는 것도 권력을 남용하는 것만큼 문제가 있다. 권위의식에 따른 권력남용이 문제지 권위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흔히 우리는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어 'OO계의 최고 권위자'라는 칭호를 붙인다. 개인이 쌓은 경력과 성과는 그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노고를 인정받아 그 권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권위를 상실하면 어떻게 될까? 선수와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될까? 아니다. 선수는 그 지도자를 아래로 보게 되어있다. 선수가 지도자에게 어떻게 대하던 지도자는 모두 다 이해하는 친구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수가 가고자 하는 대로 들어주고 믿어주고, 설령 선수가 잘못된 판단을 내려도 이유가 있겠거니 넘어가 주는 그런 존재가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관계는 지도자나 선수 두 사람 모두에게 해롭다. 요즘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기분이 상할까. 신고는 하지 않을까. 벌벌 떨고 있다. 인성은 안드로메다로 줘버린 몇몇 지도자들의 악행 때문에 보통의 지도자들은 선수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처벌하는 것을 꺼린다. 그럼에 불구하고 지도자는 친구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친구에게는 없는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 친구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선수들을 바른길로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이다. 때로는 다그치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나처럼 90년대에 엘리트 체육을 경험한 세대들은, 그 세대의 지도자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환멸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들이 지도자가 되면 아예 반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과 권위적인 행동은 분명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권위적인 행동이란 선수보다 삶 전반에 걸친 다양한 경험과 스포츠에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전수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잘못된 행동은 그 권위를 활용한 폭력, 억압, 강요, 속임수 같은 것이 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권력을 남용하면 처벌받아야 한다).


예전에도 좋은 지도자들이 존재했다(물론 경험한 바로는 진짜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생님들은 손에 꼽지만). 최소한 내가 이해하는 좋은 지도자는 선수의 공과 실에 대한 책임을 얼마만큼 짊어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쩌면 친구 같은 지도자를 자처하는 것은 선수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그렇지 않은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는 깨어있는 부모가 아니라 그냥 책임감 없는 부모일 뿐이다. 방치하듯 키운 아이는 커서도 잘잘못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성인이 돼서도 실수를 반복한다. 범죄자가 될 가능성 또한 크다. 방치된 자녀는 사회성을 기를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며 이는 반사회적 기질을 촉발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제 때 적절히 다그치고 바른길로 인도한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친구나 남들에게는 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선수는 지도자를 믿고 따른다. 반대로 이런 여론이 있을 수 있다. ‘강압적인 관계라서 믿는 척 따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럼 우리가 말하는 멘토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멘토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높은 차원의 혜안을 가진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따른다.


그래도 여전히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그럴지도 모른다. 성차별과 폭력 이슈가 두려워 남자 선수는 남자 코치가 가르치고, 여자선수는 여자 코치가 가르쳐야 되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지도력이 좋은 지도자보다는 구설수 없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감독이 된다. 외양간 고치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다.


지도력은 별로 중요치 않고 선수들이 다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겉 보기에는 선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피해는 오롯이 선수가 짊어진 채 말이다.


어쩌면 선수들이 원하는 지도자는 친구같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어른다운 지도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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