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체육의 온상
대한민국에서 엘리트 체육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최근 벌어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선수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놔둘 수 있었을까? 무엇이 젊은 한 선수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엘리트 체육은 폐쇄적이다. 그 안에 속해있을 때는 모른다. 밖에서 지켜보아야 비로소 그 세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폐쇄적이며 그리고 너무나 기형적인 모양의 권위주의가 팽배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1995년부터 엘리트 선수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지난 2017년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엘리트 체육의 한편에 서서 내가 했던 특정 종목 (쇼트트랙) 뿐만이 아닌 다른 수많은 종목에 관련된 이야기나 그 종목 고유의 문화들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왜 유독 체육계서만 폭력/성폭력 문제가 아직도 전근대적인 행태로써 나타나고 있을까? 운동선수는 몸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글쎄다. 체육계의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성격 그리고 환경만을 탓하기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내가 바라볼 때는 이것은 기본 교육의 부재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책임자의 사퇴를 차치하고 서라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폭력사태는 지도자(가해자)의 윤리의식 부재이다. 예컨대, 지금 엘리트 체육 안에서 불거진 일련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 (지도자) 혹은 배후의 인물들은 정식 학교교육, 그러니까 유년기 시절부터 기본적 윤리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학교에서의 교육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고, 그 시기에 겪어야 할 정상적인 교우관계가 부재되어 있었으며, 일찍이 너무나도 기형적인 형태의 사회구조 (합숙소, 선수촌)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사회화를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겪은 엘리트 체육인은 전체가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겪어야 했을 정상적인 과업들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 수학, 도덕 과목과도 같은 공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이 때에 맞는 교우관계, 인간관계 능력 그리고 사춘기 때 겪어야 할 독립적 사고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엘리트 체육 안에서 경험해야 하는 관계구조는 너무 이른 나이부터 어른들의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바라본다. 일반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해 운동선수들은 군대 가서나 배워야 할 폭력과 위계를 10년 정도 일찍, 같은 종목의 선 후배 관계를 통해 학습한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모호한 (청소년기) 시기에 폭력과 위계질서에 너무 일찍부터 노출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선수들 조차 인지하는 폭력의 무게가 무뎌지고, 일정 부분 강압적이고 기형적인 위계 체계를 스스로 수용하게 된다.
지도자들은 성적과 대학 입학, 그리고 실업팀 및 프로팀 입단을 핑계로 선수에게 무차별한 언어폭력에서 부터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행동들을 매일매일 일삼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의 대부분 (모두는 아님)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학교와 담을 쌓은 채)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오로지 운동만이 대학 진학과 진로에 있어 유일한 역할로서 기능했다. 그런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선택해버린 선수들에게 지도자들은 윤리적으로 가당치도 않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가하는 현실이다. 신체적인 폭력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라 할 지라도 가해져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자기 선수 때는 엄청 맞았으며 지금 애들은 운동을 너무 편하게 한다'며 자기가 가르치는 선수에게 단지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가르치는 선수가 만일 교제하는 이성친구라도 그렇게 할 것인가? 때리지만 않으면, 욕을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 행동과 태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문화같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어디까지가 수용 가능한 태도인지 선을 긋기가 애매할 정도다.
폭력을 일삼는 지도자들은 (도덕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각자만의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에 어떤 정당성을 본인들 스스로 부여한다. "예전에는 이거보다 더 심하게 맞고도 운동했어." "맞아야 되는 (그래야 잘하는) 애들이 있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폭력의 문제만큼은 사회에서 남녀차별이나, 임금격차 같은 문제와 같이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이 된 것에 요점을 맞춰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는 엉덩이를 100대 맞았는데 지금은 10대밖에 안 맞는다고 가정해보자. 길가는 사람 모두를 붙잡고 물어본다고 해도 체벌이 평균적으로 90대가 줄었다고 생각하거나, 폭력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폭력은 애초에 영점 (zero base)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숨어있는 몰상식한 체육계 지도자들은 '때려야 선수가 참고 견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해석하면 '나는 지도력이 없고, 운동만 할 줄 알았지 코칭에 대한 자질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코믹스러운 것은 '요즘애들은 제멋대로야.' '예전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을 어려워했는데 요즘 부모들은 선생 알기를 우습게 안다.' 라며 착각들을 한다. 도대체 자신의 실력과 인성은 하나같이 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애들과 학부모들이 콧대가 높은 것이 아니라, 더 교육되어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선수나 부모는 소비자이고 코치는 기술을 파는 기술 제공자에 가깝다. 부모는 코치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들의 자원 (선수)을 키우기 위해 코치를 채용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체육계의 수직 강제적 고리는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실력이 있는 코치로써 존중받고 싶다면, 단연 실력을 연마해야 할 것이고, 해당 종목 지식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체육 지식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소비자로서 제공자에게 돈을 지불할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코치로써 타당한 조건을 기본으로 하고 그다음에 탁월한 결과를 보여줘야만 코치로서의 존중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고 범죄를 저지른 지도자가 버젓이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며,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이 제 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코치로써의 기본소양을 갖추려고 하겠는가? 이런 상태에서는 오로지 결과만이 1등 가치가 되는 것이다. 범죄자도 내 자식만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완전히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가 없다. 눈감고 귀 막는 부모들도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은 코치의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코치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배운 대로 가르친다. 우리 세대 위의 코치들이 도덕적인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선수에게 폭력을 가했고 어찌 됐든 성과에 따라 벌어먹고 살았다. 따라서 적절한 도덕적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지금의 코치들도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를 자신의 밥벌이 도구로써 그저 모호한 경계대상으로써 범죄행위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종목에 따라 폭력의 정도는 모두 다르겠지만, 합숙 중심의 종목과 비인기 종목에서 더 높은 빈도로 폭력이 발생할 것이고,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거나 개인 중심 종목에서 상대적으로 폭력 빈도가 낮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주변인으로부터 관리가 되는 선수라면, 상대적으로 지도자의 통제하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감시가 되도록 구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동 떨어져도 오로지 코치 그리고 해당 종목 선수들과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 한다면, 코치에게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자연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커진다. 선수의 수준 차이에 따라서도 폭력의 정도가 다르기도 하다. 국가대표 수준은 그나마 폭력을 경험할 확률이 낮지만, 국가대표 수준이 아닌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폭력을 경험한다. 그렇다고 해도 폭력이라는 것은 빈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완전히 소탕되어야 할 사회적 문제이며, 폭력이 적다고 해서 박수 쳐줄 일은 분명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윗선 책임자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동의한다. 미국 같은 경우만 해도, 지난 2018년 체조 국가 대표 선수들을 20여 년간 성폭행한 팀 닥터 래리 나사르(54) 에게 175년의 징역을 선고하고, 체조협회 회장부터 이사진, 연루되었던 대학 총장까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사 참조). 물론 책임관계에 있는 협회 임원들, 회장직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은 백번 맞는 말이지만, 그전에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가해자 즉, 피해자에게 직접 가해를 한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윗선의 압력, 성적에 대한 압박' 같은 것을 레퍼토리처럼 이야기 하지만 결국 선수에게 해를 가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잘못이다. 윤리적인 가치가 코치로서 자신은 형성하는 토대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권력 때문에 선수를 때리진 못할 것이다. 1차 가해자를 향한 무자비한 처벌이 전제가 되어야, 그 윗선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꼬리 자르기와는 다른 이야기다. 우두머리를 제거하면 뭔가 개혁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그놈이 그놈). 제발 꼬리나 제대로 자르고 이야기해야 하자. 그동안 책임자에 불똥이 튈까, 꼬리 자른다는 명목 아래 일선 폭력 지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같은 처벌만 (1년 자격 정지 같은, 연맹 내의 처벌) 있었기에, 문제가 있는 코치들이 공적인 자리에만 못 가게 될 뿐, 이 폐쇄적인 체육판에서 당당하게 돈 벌며 영향을 행사하니 선수들은 폭력에 대해 입을 열지 않거나 숨기는 것이다. 버젓이 자신을 때리거나 성폭행했던 코치들을 연습이나 시합 때마다 마주치는 데 그곳에서 두 팔 들어 자신의 피해사실을 외칠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해도 안된다는 사실을 선수들도 아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의 골자는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인들은 폭력 와 위계에 일찍 노출된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기본적인 학교교육이 동반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학생으로서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지원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운동선수도 정상적으로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아니 최소한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합숙소 같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폐쇄된 환경에서는 절대권력 (지도자)이 작동하며, 폭력은 쉽게 은폐된다. 군대가 작동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다. 부모들도 이미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제발 본인들의 욕심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말자. 선수들 역시 자신이 진정으로 운동을 사랑하고, 고된 훈련을 참아내는 것이 강제가 아닌 본인의 선택이 되어야만, 1등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폭력은 교육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지만, 교육은 그 어떤 형태의 폭력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