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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by 김민영 Jan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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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많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매일 해야 할 일을 TO-DO 리스트로 정리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어딘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군데군데 발목이 잡히고, 각 목록마다 구질구질한 각주를 잔뜩 달아가며 마지못해 체크를 채워나갔다.


해야 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에는 이유가 없다. 사무실에 들어앉아하는 일들엔 고귀한 이유가 있어서, 가끔 그 무게와 복잡함에 숨이 막혀올 때가 있다. 무탈하지 않으면, 수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은 나의 시간과 기력을 천천히 갉아먹는다.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 수십 개의 자판과 작은 화면이 끝내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기도할 수밖에.


최근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생성형 AI가 큰 화두다 (어딘들 안그러겠냐만). 업계에 미칠 파장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지 다양한 의견이 매일 오고 가고 있다. 트렌드를 따라잡고, 준비되었음을 부각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모두들 목이 터져라 떠들어보지만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먼 훗날 AI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가져간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내가 해야 할 일에 이유가 없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내 자리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AI에게 일은 어떤 이유가 될 수 있을까. AI도 해야 할 일로 인해 숨이 막혀온다는 경험과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반면, 하고 싶은 일에는 이유가 없다. 굳이 생각해 보자면,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다. 마음속 그 어딘가에서 불꽃이 일어나게끔 하는 일.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밤낮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 결국 이 삶은 그런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겐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누워있는 일? 맥주 한 캔과 함께 멍하니 유튜브를 바라보는 일? 홀린 듯이 먹는 일? 이런 것이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내 삶의 이력도 서른에 가까워졌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가슴이 뜨거워져 본 적이 없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아니, 사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 달아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도 거저 일어나는 법이 없다. 하달된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끝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비로소 어른 다뤄지는 길이 아닐까. 나이만 먹어가며 이리저리 이끌리는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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