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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Aug 22. 2021

엄마의 학창 시절과 풀냄새 그득한 산속 책방

인왕산 초소책방에서



알감자의 서울살이가 막 5개월 차 흐르던 어느 날, 엄마가 올라오셨다. 서울로 올라간 자그만 딸이 안전한 처소에서 밥은 잘 챙겨 먹고살고 있는지, 몸은 성한지에 대한 궁금과 염려가 한데 뒤섞여 있으신 듯했다.


걱정이 많았을 그녀를 위해 오늘은 과감히(?) 연차를 쓰고, 평소 좋아했던 인왕산 초소책방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

초소책방은 부암동의 인왕산 오르는 길목 도중에 위치해있다. 덩그러니 이 카페 하나만 있어서 오직 책방만을 목적지로 삼고 오는 방문객들이 꽤나 많은 곳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카페의 내부는 온통 책과 풀과 나무로 그득하다. 더군다나 이날은 비도 제법 시원하게 와준 덕에, 코에 닿는 풀냄새가 평소보다 조금 더 했다.


초소책방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북 큐레이션은 자연환경 보호에 대한 서적으로 진열하였고, 친환경 자연분해가 가능한 카페 비품들을 구비하여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날엔 마음가짐도 절로 정갈해진다.



소낙비가 쏟아지기 이전, 인왕산 전경이 곧바로 보이는 테라스 좌석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짧은 시간 동안 옛날 얘기를 나눴다.


엄마는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나셨다. 학교가 있던 성북구와 집이 있던 종로구를 자주 다니셨다.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할 무렵엔 인왕산 북악 스카이웨이를 종종 오셨다.

엄마의 서울살이에 대한 얘기는 살면서 크게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세월과 추억을 마음에 품고 계셨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딸과 함께 젊은 시절 왔었던 인왕산을 다시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는 그녀.


나이가 채워질수록 식성부터 성향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닮아가는 부분들도 채워진다. 모녀지간의 사이를 제외하고도 코드가 잘 맞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역에 엄마를 배웅해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카톡이 왔다.


딸내미 사는 곳에도 와보고
좋은 책방도 데려다줘서 고마워


엄마랑 나는 이따금씩 투닥거린다. 그때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예쁘고 곱게 하자고 마음속에 기록한다.

그날, 엄마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머금은 책방에서는 난히 향긋한 풀냄새가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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