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가 다녀왔던 LA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上과 下 총 두 편으로 나누어 발행할 예정입니다. 글의 대부분은 실제 벌어진 일로부터 쓰이지만 기억이 흐릿한 일부분은 살을 붙여 각색하였습니다.
매년 여름휴가 때가 되면 모녀는 여행을 떠났다. 약 2년 반 만에 막혔던 하늘길이 열린 올해. 큰맘 먹고 미국에 사시는 사촌 이모를 만나러 LA로 여름휴가를 가기로 했다.
장장 12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잠자리나 장시간 이동에 무던한 엄마와 이를 똑 닮은 딸에게는 그다지 힘겨웠던 시간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각자 챙겨둔 책 두어 권을 몰입하여 읽고,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 그리고 영화 두어 편을 감상하며 기내에서의 한나절을 무던히 넘겼다.
도착한 LAX 공항에는 이모와 이모부가 마중을 나와계셨다.
"비행이 너무 길어서 고단 했겠다. 이 먼 곳까지 오느라 진짜 수고 많았네."
타국에서 듣는 모국어는 새삼스레 반가웠다. 생경한 곳에서 이뤄지는 6일간의 여행 동안 마음 놓고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안심하게 했는지. 아마도 이모네는 모르셨겠지.
공항에서 이모네 집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창밖으로 처음 마주한 이국적인 풍경들을 잊지 못한다. 새로운 곳에서 보낼 날들에 대한 설렘과 긴장으로 뒤섞이던 감정들 또한.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때쯤이 되었다. 이모네 가족들과 다 함께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머리색이 참 독특하고 예쁘다. 집에서 한 것 같지 않은데?"
"코 피어싱이 멋지네. 정말 남자답다!"
미국에 사는 사촌 조카들의 안녕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K-엄마는 조카들을 향해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셨다. 그런 방식의 칭찬이 이곳의 문화에 알맞은 표현일지 심히 우려스러웠던 딸은 그녀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있어‥."
이튿날, 시차를 1도 극복해내지 못한 모녀는 새벽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고, 오히려 다행이라 위안 삼으며 이른 아침 동네 산책을 나섰다.
소박하고 조용한 이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브레아(Brea)라는 도시이다. 365일 중 300일 가까이 되는 날들이 모두 사진과 같이 화창하다. 오전에는 청명한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 동안에는 뜨거운 볕이 내리쬐지만 그 또한 건조해서 그늘막으로 볕을 피하면 되었다.
아기자기한 건물들. 거리마다 단정하게 정돈된 꽃과 정원들은 식물 애호가인 엄마의 눈길을 분초마다 사로잡았다. 열 걸음마다 멈춰 서서 선명한 빛깔의 꽃을 살피는 엄마의 모습을 딸은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길가던 중 작은 커피숍을 발견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머무는 동안 이렇게 아침 산책을 매일 하면 어떻겠느냐며, 잔뜩 반해버린 브레아의 전경을 칭송하던 와중이었다. 우리가 있던 커피숍 앞에 자전거 한 대가 멈춰 섰다.
"Good morning."
커피 한 잔 하러 오신 노(老) 신사 분께서 우리에게 건넨 상큼한 인사였다. 이런 부분에서 내향성이 전무한 모녀는 동시에 외쳤다.
"Good morning-! "
여러모로 기분 좋은 산책이 아닐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성취감으로 마음 깊은 곳이 일렁거렸다. 이 벅참을 계속해서 만끽하고 싶었으나 우리에겐 다음 목적지가 있었다. 바로 사촌 동생의 깜짝 생일파티를 위한 꽃다발을 사는 미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