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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Aug 12. 2022

여행은 직접 살아보는 것이었음을(下)

모녀의 LA 여름휴가


지난달, 제가 다녀왔던 LA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上과 下 총 두 편으로 나누어 발행할 예정입니다. 글의 대부분은 실제 벌어진 일로부터 쓰이지만 기억이 흐릿한 일부분은 살을 붙여 각색하였습니다.




…딸랑-!

꽃집의 문에 딸린 작은 종이 청아한 소리를 냈다. 가게 안에 있던 두 직원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5분 전만 해도 등등했던 모녀의 기세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I want to buy a bouquet..(꽃다발을 보러 왔어요..)"

우리는 조심스레 영어를 건넨 뒤, 귀를 쫑긋 세우고 직원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꽃다발은 저쪽에 있어요. 가격은 밑에 적혀있고 다른 색상을 원하시면 진열된 꽃이랑 비슷하게 만들어드려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다시 한번 짚어봐도 이곳은 미국이었다. 직원이 응대한 언어도 영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한국어 패치가 깔린 듯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 이유는 바로 '꽃집 직원의 멘트'라는 것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국룰의 멘트였음이 비로소 밝혀진 것이다.



직원과 완벽한 소통(?)을 이룬 에 꽃다발을 품에 안고 이모집으로 돌아왔다. 꽃의 주인을 위한 축하 자리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뤄질 계획이었으므로 들여온 꽃다발은 주인공 모르게 이모의 방으로 비밀리에 유통되었다.



해가 저문 저녁엔 야외 테라스에서 이뤄질 저녁 식사를 위해 다함께 반찬과 식기 도구들을 날랐다.

"전주 가면 비빔밥 먹고, 춘천 가면 닭갈비를 먹는 것처럼 LA에 오면 LA갈비를 먹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오늘 저녁의 일일 쉐프인 이모부가 유쾌하게 씀하셨다. 간장 양념에 절인 고기는 몇 점 먹다보면 쉽게 질린다며 소금 간만 하는 담백한 LA갈비 요리를 선사해주셨는데, 아마도 이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고기가 아니었을까.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엔, 이모가 좋아하신다는 도수가 낮고 달큰한 와인을 다함께 나눠마셨다. 엄마와 이모는 자식과 책임질 가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젊고 서툴렀던 초보 엄마의 시절, 외롭고 어려워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주던 시절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용기야.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어때?"

그녀를 진정으로 용감하다고 여기고 있는 엄마가 이모에게 물었다.

"더 발전된 국가라고 해도 우리는 사실 여기서 그냥 외국인 노동자잖아. 한국에 있으면 편하게 누릴 것들을 못 하고 산다는게 아쉬울 때가 많아."

덤덤하게 말하는 이모의 현실적인 발언에 모녀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끄덕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오길 잘했다고 여기게 돼. 여기는 생김새나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불법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무엇으로 먹고 살든 직업으로 사람을 크게 가르지 않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수영장, 풋볼장, 농구장 같은 운동 환경이 정말 잘 되어있어. 나쁜 마음 먹지말고 야외 활동하면서 건강하고 밝게 자라라고. 어른들은 직장에 목매지 않고 가정과 연인과 자기를 돌보며 살아."


모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숙이며 끄덕였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끄덕임이었다.




저녁 식사 테이블을 치우고 나서는 모두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바로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사촌 동생을 위해 써둔 짤막한 카드편지를 손에 꼭 쥐고 이모와 함께 방에 있던 꽃다발을 거실로 옮겼다. 엄마는 행동 대장을 맡았다.

"저기 다들 잠깐 거실로 모여줄 수 있을까요-?"

안방 쇼파에서 TV를 보던 이모부,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던 사촌 동생(주인공의 오빠), 그리고 주인공이 영문을 모른 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음. 생일의 주인공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동네에 꽃집이 있길래 사왔어요. 저희가 이렇게 큰맘먹고 미국이라는 땅에 오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다 여러분 덕이라고 생각해서 감사한 마음에.."

막상 판을 깔아주니 쑥스럽고 머쓱한 마음이 든 딸이 괜히 주절거렸다.


가만히 듣고 서있던 꽃다발의 주인공이 입을 뗐다.

"저 태어나서 졸업식 이후에 꽃다발 처음 받아봐요. 너무 예쁘다. 정말 감사해요-!"

이런 날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이 이곳의 문화에 알맞은 표현일지 우려했던 딸은 이번에도 엄마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엄마 성공한 것 같다. 그치?"



이번 여행에서 예상 밖으로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던 것은 오히려 딸이었다. 엄마는 우려보다 용감했고 든든했고 자주 귀여웠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는 직원들이 엄마에게 "You're so cute-!"를 외쳤다. 야심차게 구매한 그녀의 흰 니트모자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모녀는 아늑함·편안함 같은 감정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느꼈음을 깨닫는다. 이모네 가족과 함께 한 6일의 시간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삶을 살아보는 여행이었음을.


그밖에도 글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그렇지만 당시 가졌던 감정을 전부 글로 실을 수 없음을 알고, 소재화되지 않고 간직하는 이야기 또한 소중함을 안다.





여행은 직접 살아보는 것이었음을(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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