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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Jun 21. 2022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

들고양이 무심이 이야기

무심이


어느 날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나무 아래에 똥을 누기 시작하면서 나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길고양이와 들고양이의 경계선에 있었던 고양이에게 '무심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연은 아래 글에 설명되어 있다.


https://brunch.co.kr/@algarve/117


길들이기


아내의 눈총을 받으며 고양이 먹이를 구입하여 무심이를 먹이기 시작한 지가 약 5개월 전쯤이다.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의 사랑받는 고양이로 살았음이 틀림없는 무심이는 야생의 들고양이로 너무 오래 살았는지 먹이를 먹으러 와서도 절대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미리 그릇에 먹이를 담아 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동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옆집 고양이도 산책을 나왔다가 간식으로 먹고 가는 상황이라 그릇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담장 위로 무심이가 나타나면, 그때 나가서 그릇을 채워주고는 했는데, 내가 그릇을 채워 놓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야 슬그머니 담장에서 내려와서 먹기 시작했다. 간혹 문을 열기라도 하면 먹기를 멈추고 재빨리 사라졌다. 오랫동안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의 상태를 유지했다.

  

담장 위에서 거리를 둔 채 바라보고 있는 무심이


유혹


빨리 가까워지고 싶었던 나는 저 멀리 있는 무심이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도 하고, 소리도 내고, 반가운 표정도 지어 보이며 아양을 떨었다. 나는 고양이가 호의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모든 표정과 몸짓을 시도해 보았다. 무심이는 졸린 눈으로 나의 팬터마임을 그냥 쳐다보고 있다가 "아, 저 아저씨 피곤하게 하네.'라는 듯이 무심히 고개를 획 돌려 외면해 버렸다. 나의 유혹은 실패로 돌아갔다.


"라면 먹고 갈래?"
"아, 피곤해서... 다음에."


너의 스타일을 존중해 줄게


내가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 갈수록, 인간인 나의 수준에서 고양이가 좋아할 것 같은 표정과 몸짓을 다양하게 시도하면 할수록, 무심이는 더 긴장하는 듯 보였다. 문득, 나의 이해할 수 없는 과한 동작과 움직임은 오히려 무심이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길들여지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니까. 


"그럼, 너의 스타일을 존중해 줄게."


그래서, 무심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절제된 동작과 행동만 했다. 무심이가 담장에 나타나면 반복하는 나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무심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무심이 왔어? 잘 지냈어?"
(그릇에 먹이를 채워서 보여준다) "무심아, 밥 채워 놓았으니 맛있게 먹어."
(그릇을 구석에 놓는다.)
(무심히 오른손을 한번 들어 올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에 들어와서 보이지 않게 숨어서 살펴본다.)  


물론, 한국어로 말한다. 어떤 언어로 해도 세부적인 내용은 서로 소통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하지만, 가능한 다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작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아주 조용히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


3 미터


똑같은 대사와 행동을 한지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릇에 먹이를 채우는 동안 무심이가 3미터 정도 되는 지점까지 와서 앉아서 기다렸다. 나의 행동이 예측 가능하고 움직임의 목적을 이해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다소 없어진 듯했다.


무심이가 뒷마당 구석에서 졸고 앉아 있을 때도 모른 척했다. 처음에는 가까이에 지나가면 피할까 말까 고민하면 움찔거리더니, 내가 자기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듯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니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졸았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몇 개월 동안, 무심이가 어떤 소리든지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무심이가 목에 손상이 있어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뒷마당에 나가니 올리브 나무 아래에 앉아서 나를 보고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야옹'하며 울었다.


"무심이가 소리를 내었어. 무심이도 울 수 있었나 봐."


아내에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우리 아들 딸이 처음으로 '엄마'라고 옹알이를 했을 때처럼.


마당 가운데


무심이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뒷마당 끝 담장 위 양지바른 곳에서 오후에 몇 시간을 졸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휑하니 가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이가 거실 창에서 보이는 뒷마당 한가운데 앉아서 졸았다. 우리는 보기 드문 진기한 장면을 본 듯이 사진을 찍었다.

 


온전히 믿는다는 것


드디어, 어느 날에는 등을 돌리고 퍼질러 누웠다. 아, 감동했다. 최소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이나 두려움을 접었다고 이해했다. 야생에서는 모두가 위험하다. 매 순간이 위험하다. 그래서, 무심이는 햇살 좋은 곳에서 졸아도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 움츠리고 존다. 


상대에게 등을 내어주고 퍼질러 누웠다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일이다. 살면서 세상에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되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좁혀지지 않는 1 미터


여전히, 1 미터 이내로 접근하게 되면 무심이는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며 일단 재빨리 멀어진다. 무심이는 여전히 까칠하고 무심하다. 아직까지 1미터 이내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심이가 상대에게 길들여진 기억이 너무 오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무심이의 반응에 따라서 길들여지고 있다. 사실, 상대를 종속적인 주종관계로 묶어둘 의도가 없다면, 길들이거나 길들여지는 것에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길들여져서, 서로가 믿고 의지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무심이 실종 사건


그런데, 어느 날 무심이가 사라졌다.





https://brunch.co.kr/@algarve/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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