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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Dec 27. 2023

보는 것은 속는 것이다

< 시각적 환상, 시간적 환각 >

보는 것은 속는 것이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말은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참이었다. "내가 보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알겠나?"라며 판단의 곤란한 순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믿겠나?"라며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보면 알 수 있고, 보면 믿을 수 있다'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앞의 간단한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또는 서로 관련되어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때로는 눈의 광학적 메커니즘이 시각적 오류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우리의 뇌도 시각에서 전달하는 감각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할 때도 많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진 인식과 개념 중 어느 것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믿으면 속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인지하는 시각 정보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대부분 만족시킨다는 점이다.


밖에 보이는 것보다 안에서 보는 것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은 일부만 대상에 대한 감각을 통해 생성되고 나머지는 항상 우리 신체의 내부에서 생성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과거 경험, 연상, 욕망, 욕구, 상상 등이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목마른 원효대사께서 어둠 속에서 해골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신 뒤 다음날에 깨어서 해골에 담긴 물임을 알고는 구역질을 하며 깨닫게 되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의 화엄사상을 떠올리게 된다. 보이는 것은 우리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두뇌) 속에 들어있던 정보를 혼합하여 지어내는(생성하는) 과정이다. 복잡하고 차원이 높은 종교나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겨우 눈에 보이는 것 하나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구조를 가진 것이 인간이다.


아직도 그걸 몰라


시각적 환상은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인지할 뿐이다. 인공지능을 만들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우리 인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여전히 많다. 시각적 환상도 뇌과학의 발달로 이해의 폭은 넓어졌지만 여전히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사셨던 우리 조상님께서 가졌던 시각적 오류를 현재 우리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못 본다.


내 말 좀 들어봐라


눈으로 보는 오류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생각의 오류에 대해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학력과 경력과 경험이 쌓이고 난 뒤에 친구나 동료들과 가진 술자리 대화의 전형적인 모습은 이랬다.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때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내 말 좀 들어봐라"였다.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랄 뿐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안 했다.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줄다리기에 누군가 지쳐서 "그런 이야기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라고 중단을 시킬 때까지 무한 반복될 뿐이다.


지식과 경력과 경험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기 확신이 강하다. 나의 지식과 경력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적 환상처럼 인식의 오류를 겪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오는 한계나 환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혼탁한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청정한 생각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며 살고 있을까?


필터 버블(Filter Bubble)


눈으로 보는 것도 정확하게 제대로 볼 수도 없지만,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접하고 처리하는 정보도 제대로 듣고 보고 객관적으로 파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가 직접 선택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오류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필터 버블은 개인화된 알고리즘과 데이터 수집 기술을 통해 인터넷 사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개인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검색 기록, 클릭 패턴, 소셜 미디어 활동 등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은 우리가 관심이 있어하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세계관과 일치하는 정보에만 노출되며, 다른 의견이나 관점에 노출되지 않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세계관을 좁힐 수 있으며, 에코챔버 현상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확증 편향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견해나 믿음을 강화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가 정보를 선택적으로 선별하고, 해석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를 더 많이 찾고, 이와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넓은 시각을 갖고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어려워진다. 양 끝의 극단에 서서 태극기 부대니 좌빨이니 하면서 서로를 비난할 뿐 상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유튜브나 인터넷에 보면 각자의 생각을 확증할 수 있는 수많은 편향된 정보가 넘쳐나고, 항상 유사한 경향의 정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대한 확신이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하다. 그래서, 그 어느 시대보다 대립이 심한지도 모른다.


에코 챔버(Echo Chamber)


에코챔버는 특정한 의견이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의견이 강화되고 더욱 깊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데,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자는 주로 자신과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비슷한 정보를 받게 되므로,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에코챔버(메아리처럼 자기 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의견이 점차 극단적으로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갈등과 다른 관점에 대한 이해 부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정 이념을 지향하는 집단이나 단체가 단체카톡방을 만들어서 교환하는 정보들 중에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이 지지되고 공유되는 현상을 보면 두렵고 무서울 지경이다.


믿습니까?


우리는 벌거숭이 임금님의 동화처럼 국가나 사회가 날줄씨줄로 정교하게 쳐 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임금님의 옷은 너무 멋져요'라고 거짓 박수를 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가 신령한 목소리로 "믿습니까?"라고 고함을 지르면 우리는 두 손을 들고 "믿습니다"라며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갖는 인식과 믿음은 누구나 감지하고 알아챌 수 있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어느새 우리를 물들이고 있을 뿐이다.


"여러분, 선이 굽었습니까? 똑바릅니까? 아래 선들은 분명히 직선이 아닙니다. 평행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직선이다 평행하다고 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런 세력들이 여러분들을 미혹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태극기 부대야 물러가라! 좌빨들아 물러가라!" 




나는 오늘 나의 눈을 의심한다.

나는 오늘 나의 생각을 의심한다.


겸손해지기 위해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상의 진실을 편견 없이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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