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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Jan 27. 2022

랑새 이야기

우리 집 애완 파리

갑자기 울면서 뛰어 나온 딸


도심의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할 때였다. 딸이 네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딸이 자기 방에서 놀다가 갑자기 울면서 뛰어나왔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나는 울면서 달려오는 딸 쪽을 향해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달려가며 물었다.


"왜?" "왜?"


혼자서 놀다가 가위나 날카로운 도구에 다쳤는지 손과 몸을 살펴보니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방에서 무언가에 크게 놀랐다는 뜻인데 철제 방범창과 방충망으로 모든 창문이 막혀있는 나름대로 보안이 철저했던 아파트였고, 우리 가족끼리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기 때문에 대체 어떤 문제일까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울먹거리는 안아서 딸을 달래며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방안에 뭐가 있어?"


딸은 대답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있는데?"


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지 몰라?"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빠가 없애고 올게." 


가까이에 있는 효자손을 비장하게 손에 쥐고 두려움을 참으며 조심스레 방으로 다가갔다. 먼 거리에 서는 보이는 것이 없어서 천천히 얼굴을 방 안으로 들이밀자 어지럽게 바닥에 흩어져 있는 종이 조각을 제외하고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놀랄만한 것이 없었다. 딸이 대체 무엇에 그렇게 놀란 것일까?


무서운 괴물


거실에서 엄마품에서 기다리고 있던 딸에게 돌아와서 물었다.


"아빠가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있어요".

"그럼 같이 가보자."

"싫어요."

"아빠가 모두 물리칠 수 있으니 걱정하지마."


겨우 달래서 용기를 얻은 딸은 나의 바짓가랑이를 뒤에서 붙들고 방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잖아"


딸에게 확인을 시켜주었을 때, 다리 사이에서 빼꼼 내다보던 딸이 손을 천천히 들어서 위를 가리켰다. 


"저기."


딸의 작고 통통한 손에서 펼쳐진 검지 손가락의 궤적을 일직선으로 쭉 이어서 올라가니 천장에 매달린 원형 천장 조명등이 있었다. 30센티 정도의 매끈한 원형 유리등은 평소와 같이 단단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조그마한 검은색 점 같은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주 평범한 파리가 한 마리 붙어 있었다. 거실에서 겁나는 표정으로 수색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에게 결과를 통보해 주었다.


"에이, 파리네. 파리." 


안심한 아내는 깔깔 웃었고 나도 웃었다. 딸도 삐질삐질 울던 얼굴로 따라 웃었다. 옆방에 있던 아들도 뛰어나와서 어이가 없는 듯이 같이 웃었다. 파리 때문에 겁이 나서 울었다고.


괴물의 공격


태어나서부터 4년여 평생 동안을 아파트에서 살아온 딸에게 검은색 생명체를 1대 1로 만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가능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식을 키운다고 애쓰는 평범한 한국의 부모 아래에서 도심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딸은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벌레를 만나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날아다니는 검은색 생명체가 혼자 있는 방에 나타났다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갑자기 자신에게 계속 달려들었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는가? 얼굴이고 팔이고 머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는 검은색 괴생명체였으니까. 울면서 달려 나올만했다.


파리 소탕 작전


파리를 포함한 곤충의 출현이 극히 드물었기에 집에 파리채가 있을 리 만무했고, 천장에 높이 붙어 있는 파리를 한번에 유효 타격하여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며 동시에 천장이나 벽의 실크벽지에는 상처나 흔적이 남지 않는 적절한 도구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급한 대로 신문지를 길게 돌돌 말아서 들고 들어가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파리는 울면서 달려 나가는 딸과 득달같이 달려온 아비의 분노를 파악했는지 하얀 배경에 검은색 점으로 마치 보이지 않는 듯이 없는 듯이 가만히 붙어 있었다. 파리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없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파리의 주문이 효과가 없었는지 파리는 정확하게 그곳에 있었고 또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파리의 또 다른 주문에 걸려들었는지 나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딸에게 파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이 어떨까? 파리를 자주 보게 되면 파리의 하찮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파리를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파리는 목숨을 건졌다.


랑새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다. 


"지금부터 저 파리는 우리가 키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딸에게 물었다. 


"딸아, 파리는 어디에 있니?"


딸은 이 쪽 저 쪽을 오가며 파리를 찾은 다음에 동향 보고를 했다.


 "거실 벽에 있어요" "창문에 있어요"


얼마 뒤 딸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였고, 간혹 파리가 자신에게 오면 팔을 휘휘 저으며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저리 가!"


그렇게, 딸은 파리를 극복했다.


꽃이 되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파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물론, '함께 산다'는 관점은 지극히 나의 관점이고, 파리는 사방이 막혀 있는 아파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납치 감금을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무서운 본능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헐~) 딸은 파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아침 일과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산 시간도 제법 되었는데 서로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익명의 '파리'로 부르는 것은 몰인정하다고 생각되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이름을 물어도 답을 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이름을 하나 지어주기로 하였다.


당시에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드라마가 '파랑새는 있다'였다. 투박하고 거친 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내었던 드라마로 나도 본방 사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던 그 파리에게 '파랑새'라고 이름을 붙였다. 성은 파리의 '파', 이름은 '랑새'다. 그 후로는 딸에게 "오늘 랑새는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고, 벽에 붙어 있을 때 지나가다 파리에게 안부를 묻곤 했다. "랑새 안녕."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파랑새가 되었다.


랑새를 키우는 장점


랑새를 키우기로 결정하기 전에 랑새가 유발할 위생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유연한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되었다. 랑새가 자체적으로 발생시키는 독성이나 유해함은 없다. 다만, 랑새가 불결한 물질에 접촉하였다가 옮겨오게 되는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데, 우리 집 안에만 있게 될 경우에 우리가 노출되는 동일한 수준의 위생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랑새가 갖고 있을 비위생적인 요소가 소멸될 때까지 초기에만 조심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되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을 더 철저히 덮게 되었다든지 랑새가 오히려 우리 집 위생 관리 수준의 향상에 공헌하였다.


랑새를 키우면서 별도의 사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영양을 보충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난감함이 있었지만, 별도로 식사를 준비한다고 해서 달려와서 먹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묵시적으로 협의되었다. 별도의 배변 패드 등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간혹 백색 가전에 배변의 흔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애완 생명체를 키운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받아들였다.


랑새를 키우기 전에는 파리가 몸에 달라붙거나 하면 짜증이 나고 신경질을 부렸는데, 랑새를 키우고 나서 간혹 발가락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발을 비비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게 되었다. 애완동물들이 주인에게 와서 핥기도 하고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지 않는가.


랑새의 죽음


비행하는 횟수와 움직임이 다소 느려지기는 했지만, 랑새는 늘 우리와 함께 했고, 나와 함께 햇살이 따뜻한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같이 읽기도 하고, 나의 발을 간지럽히는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우리의 삶은 평범하고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주말에 처제와 동서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1박을 하였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딸이 일어나서 나왔고 언제나처럼 물었다.


"딸아, 랑새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라"


처제는 랑새가 무엇인지 물었고, 우리 집에서 키우고 있는 애완 파리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옆에 있던 동서가 말했다.


"어? 아침에 파리가 있어서 잡았는데..."


설명에 따르면, 동서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파리 한 마리가 무릎 쪽에 앉길래 가볍게 신문으로 툭 쳐서 잡아서 쓰레기 통에 버렸단다. 아내가 동서를 타박했다.


"우리 랑새를 죽였다고."


당황한 동서는 둘러댔다.


"아니, 그냥 파리가 앉길래 생각 없이 툭 쳐서 잡았지요???" 


랑새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랑세가 세상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지 않음을 깨닫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랑새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겨서 우리 곁을 떠나갔다.


신해철을 추모하며


한 때 나의 애창곡이었던 N.EX.T의 '날아라 병아리'(1994)를 띄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41UVzR1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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