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언덕으로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데 언덕 초입에 호세씨가 살고 있다. 인근 도시의 은행 지점장으로 있다가 은퇴한 후에 저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부부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휴가차 왔다가 주위 자연환경이 너무 좋아서 30년째 살고 있다고 늘 자랑한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우연히 '물이 좋다'는 언급을 했다가는 우리 동네가 오염원이 없는 청정 지역에 위치해 있고, 수원지가 어디고, 동네 이름을 딴 생수가 유명하다는 등 최소한 5분은 공식 브리핑을 청취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작은 카페가 하나 있을 뿐, 부동산 매물로 나온 지 오래된 초등학교와 더 이상 미사를 드리지 않는 낡은 성당이 전부인 동네에서 자랑할 것이라고는 좋은 공기와 좋은 물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눈에는 그저 사방에 널려 있을 뿐인 모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듯이.
호세씨는 만날 때마다 신선한 공기와 화창한 날씨를 자기 소유의 부동산 마냥 신나서 자랑을 한다. 나도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리는 훌륭한 리액션으로 친교를 완성한다.
큰 집에 부부만 사는 호세씨는 네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한 마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고, 한 마리는 뒤에 살던 독일인 부부가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고 부인은 독일로 돌아가게 된 뒤에 홀로 있던 개를 달래서 데리고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는 등 모두 사연들이 있는 개들이다. 호세씨가 산책길에 데리고 나 온 개들은 얌전하고 나의 주변에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코를 킁킁거릴 뿐이다. 마냥 순하고 착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호세씨네 개들은 시끄럽게 짖는 것으로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멀리서 호세씨 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귀가 밝은 작은 녀석이 뛰어나오며 짖기 시작하면, 뒤따라서 덩치가 중간쯤인 두 녀석들이 서로 싸워가며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달려 나오고, 마지막으로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저음으로 베이스를 깔면서 등장을 한다. 중구난방으로 규칙도 없이 박자도 없이 철망으로 둘러싸인 제법 긴 담장을 따라오며 짖어 대는 소리가 성가시고 무척 귀에 거슬린다. 반대편 언덕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까지 들리는 조용한 동네다 보니, 호세씨네 개 짖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면 그 집 앞을 또 누가 지나가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 된다.
포르투갈 시골은 개 짖는 소리에 대한 관용의 정도가 내가 경험한 다른 유럽 국가나 도시에 비해서 훨씬 높다. 즉, 개 짖는 소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짖는 개의 주인도 그렇고, 개 짖는 소리를 듣는 이웃들의 반응도 그렇다. 보안이 잘 되어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반려견으로 살아가는 도시의 개들과는 달리 포르투갈 시골의 개들은 독립된 넓은 주택을 지키는 경비견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짖는 행동이 개나 주인에게 모두 중요한 임무의 하나라고 여기는 것 같다.
조용히 하라고 저지를 당하기보다는 '그래 잘 지키고 있네'라는 직간접적인 칭찬을 피드백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개들이 열심히 성실하게 진지하게 짖어댄다. 어떤 때는 마을 끝집에서 개가 짖으면 중간에서 이어받고 또 이어받아서 마을 반대편 끝집에 이를 때까지 동네 개들이 모두 참여하여 돌림 노래처럼 짖어대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에 건너편 산 중턱의 폐가를 수리하여 정착한 매슈라는 영국 친구가 불평을 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영국에서 데리고 온 덩치가 작고 부끄러움이 많은 '럼블'이라는 매슈의 반려견은 담장 너머에서 위협적으로 짖으면서 달려드는 지역 텃밭 개들에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특히, 산재해 있는 빈집들 마다 큰 개 한 두 마리를 두어 지키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롭고 두려움이 많은 개들은 더 맹렬하게 짖어댄다.
개버릇 남 못주고 매번 지나칠 때마다 몰려다니며 짖어대는 호세씨네 개들에게 처음에는 친해져 보려는 유화책으로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하이'를 연발하며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써 보았다. 몸집이 거대한 호세씨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목을 다쳐서 오랫동안 병원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훈육되지 않고 방치 상태였다. 호세씨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몰려다니며 짖어대는 녀석들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다 보니 호세씨네 개들은 지나다니는 인간들에 대한 존중 따위는 없어 보였다. 존중 따위 개나 줘버려. 오히려, 사람들이 나타나면 몰려다니면서 위협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처럼 보였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위협하고 겁을 주는 동네 양아치 짓에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강경책으로 전략을 변경하였다. 언제나처럼 순차적으로 달려 나오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째려보며 한쪽 손의 검지를 올린 채 위엄 있게 낮은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
혹시나 호세 씨가 창문 너머로 보면서 자기 개들에게 위협을 가한다고 여기지 않도록 사각지대에서만 진행된 작전이었지만, 가슴을 넓게 펴고 키를 높이며 '이 구역의 짱은 나야'를 시연해 보였다. 구역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는 없었지만 나를 만만하게 보는 태도는 줄일 수 있었다. 이전보다 먼 거리에서 짖어대기 시작했고, 짖는 소리의 맹렬함이 한 껏 누그러졌다. 대신에 작은 녀석들은 집을 지나치고 나서도 내 뒤통수에 대고 더 오랫동안 짖었다.
"아 C, 억울해. 저 자식이 뭔데..."
잠시 움츠러들었던 자신이 억울한 듯이.
제법 긴 기간 동안 하루에 한두 번은 마주치는데 아직까지 짖어 대는 멍청함과 대책 없음에 유화책과 강경책을 모두 포기하고 요즘은 '개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달려 나오든, 짖어대든지 그쪽으로 일체 쳐다보지도 않고 왼손 엄지만 가볍게 들어 올리고 지나간다. 개들도 재미가 없는지 적당히 따라오며 짖다가 마는 듯하다.
조용한 동네에 아침저녁으로 호세씨네 개들이 짖으면 이웃 분들은 내가 산책을 가는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동선이 국가기밀도 아니고, 이웃이 알고 동네 주민이 모두 알고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개들이 짖어서 이웃 사람들의 관심을 끌거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개들이 짖지 않게 하려고 이래볼까 저래 볼까 고민하고 별짓을 다 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다소 이른 시간에 산책을 나갔는데, 호세씨 집 앞을 지나쳐 갈 때까지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발소리도 최대한 줄여서 살금살금 걸었다. 덕분에, 녀석들이 달려 나와서 동네의 고요한 아침을 깨우는 미안함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호세씨 집을 벗어났을 때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 쉬었다. 언덕을 오르기도 힘들었는데 숨까지 참고 올라오게 된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호세씨 집은 방범 목적과 개를 보호하기 위해서 충분히 높은 담과 튼튼한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개들이 달려 나와서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없다. 또, 개들도 적의감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아니라, 친근한 경계 심리로 이웃 아저씨에게 대화하듯이 짖어대는 것이라 위협적이지도 않다. 나도 친근한 이웃인 호세씨와의 관계도 있고, 담과 철망의 보호 속에 있는 개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다만, 너무 시끄럽게 끊임없이 짖어대니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날 뿐이다. 그런데, 내가 개들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늘 문득 말썽쟁이 호세씨네 개들이 나의 고민에 대한 열쇠를 주었다. 짖어라, 계속 짖어라. 네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