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제주에는 유기 동물이 많다. 전국 어디든 유기 동물이 넘쳐난다고 하지만 제주는 특히나 심각한 것 같다. 들개가 되었거나 굶주린 채 배회하는 개와 병들어 보이고 마른 고양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제주 유기 동물보호소로 옮겨진다고 해도 섬이라는 지리적 성격 때문인지 입양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보인다. 제주도 동물보호 센터에 따르면 하루 평균 20-30명(命, 일부러 목숨 명이라는 한자어로 표기한다.)의 유기 동물이 센터로 들어온다고 한다. 수용 한계가 하루 평균 300-350명이어서 안락사 되는 경우가 다수다. 2019년부터 2021년 통계를 살펴보면 입양보다 안락사 처리되는 경우가 거의 3배에 가까운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5697명 중 2776명이 안락사 됐다. 다시 숫자를 읊조려 본다. 한 해 유기되는 동물, 5697명. 숫자가 아닌 생명으로서 그들을 상상해 본다. 5697명. 이들 외에도 인간에 의해 방치된 무수히 많은 유기 동물들을 마음에 그려본다. 각기 다른 몸의 형태, 색깔, 털의 질감... 말똥말똥한 눈망울, 말랑한 혀, 귀여운 발바닥... 개성 있는 표정과 몸짓... 모두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한데, 지난해 제주에서만 5697명이 버려졌다니. 차를 피하고 사람을 경계하느라 그들이 겪었을 고초와 안락사로 서서히 느려져야 했던 작은 심장. 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고통과 비극에 나는 어느새 우는 얼굴이 된다.
개와 함께 살아온 나로서는 유기견 문제에 더 예민한 편이다. 어제와 오늘, 나는 제주의 심각한 유기견 실태를 온몸으로 똑똑히 느꼈다. 어젯밤, 자기 직전 양치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함께 사는 친구가 마당에서 갑자기 내 이름을 외쳤다
“토란! 개가 트럭을 쫓아가고 있어!”
이 야심한 밤에 개가 죽을힘을 다해 트럭을 따라 달려가고 있다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세한 감각이 나를 기분 나쁘게 훑고 지나갔다. 이건 유기 현장이다. 난 바로 한 손에 칫솔을 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발악하며 그 트럭을 쫓아갔다.
“잠시 만요!!”
아무리 외쳐도 트럭은 빠르게 달아나기만 할 뿐이었고 개도 헐레벌떡 트럭의 뒤꽁무니를 따라갔다.
“야!! 멈춰!!!!”
내가 끊임없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도 트럭은 빠른 속도로 샛길을 통해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서 큰 도로가 나왔고 트럭은 자취를 감췄다.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달려도 이 평범한 인간은 당연히 트럭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개는 넓은 도로 위를 우왕좌왕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멀리 사라져버린 트럭의 흔적을 찾는 것 같았다. 내가 개를 향해 달려가자 개는 나를 경계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개를 잡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지만 개 또한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망연자실. 저 개는 유기된 걸까? 내 생각엔 유기가 명백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트럭은 왜 멈추지 않았으며, 개도 왜 저리 절박하게 트럭을 쫓아갔을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모두 놓친 상황. 어쩔 수 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고 무거운 마음으로 몸을 뉘었다. 그 개가 어디로 갔을지, 위험한 밤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지 마음이 무척이나 아렸다. 제발, 우리 마을에 원래 풀려 다니던 개이길 간절히 바라며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인 오늘, 함께 사는 또 다른 친구가 점심을 먹고 옆 동네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작은 진도 믹스 아기 강아지를 발견했다. 강아지는 도서관 입구 팻말 아래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서관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누군가가 다시 자기를 찾아와주기를 바라듯이.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늦은 오후가 되도록 보호자로 추정되는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가 간식을 사 와서 주니 강아지는 겨우 고개를 빼꼼 내밀고 몇 걸음을 뗐다고 한다. 친구가 강아지 걱정에 쉬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자 그 강아지도 친구에게 신뢰감이 갔는지 조금씩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친구는 강아지를 집에 데려왔다. 참고로 우린 지금 8명 정도 함께 평화단체의 공동 숙소에서 살고 있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숙소에는 함부로 동물을 데려오는 것이 불가하다고 알고 있다. 공동 숙소이기도 하고, 바쁜 일정에 돌볼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동물을 책임질 사람이 명확하지 않다면 나중에 그 동물의 안전과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강아지를 품에 꼭 안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병원에도 가보니 3개월 추정이고 건강에는 큰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 등록 내장 칩도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천벌을 받을 인간이 한 생명을 무책임하게 유기한 것이다. 친구는 결코 이 존재를 무시하고 돌아설 수 없었다며 자신이 우선 제대로 된 입양처를 구하기 전까지는 임시 보호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지’라는 가명을 갖게 된 강아지. 우리는 앞으로 이 숙소에서 어떻게 ‘아지’와 함께 살지 논의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다행히 아지는 오자마자 우리 친구들의 환대를 받으며 목욕을 하고 밥과 물을 배불리 먹었다. 친구가 마트에서 하네스, 리드 줄도 사 오고 장난감도 사 왔다. 마당 한편에 푹신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지금은 아지가 그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친구들이 개집에 앉아 있는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아지는 처음엔 약간 무서워하는 것 같더니 이내 밥도 잘 먹고, 이제는 꼬리를 흔들며 보들보들하고 쪼그마한 혀로 우리 손을 핥아준다. 방금 나랑 장난감으로 활발하게 놀기도 했다. 친구가 엄청난 책임감과 애정을 느끼며 일단 아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하니 한 생명의 삶이 내동댕이쳐지지는 않았구나,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까지 유기견이었던 아지는 다행히 지금은 많은 이의 사랑둥이가 되어있다.
우리들의 돌봄과 애정의 손길을 받는 아지를 보며 나는 어젯밤 길에서 추격전(?)을 벌인 개가 떠올랐다. 그 개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아까 또 다른 친구가 마을 근처에서 줄이 풀린 채 홀로 돌아다니는 개를 봤다고 했다. 그 개의 모습은 어제 우리가 묘사했던 모습과 똑같았다. 이리저리 마을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 유기가 맞구나. 이 못된 인간 자식! 욕설이 터져 나왔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개의 운명이었다. 지금 목이 타지는 않을까, 굶주리고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지는 않을까, 계속되는 경계에 지치진 않을까, 어제 자신을 버렸던 이에 대한 배신감에 고통스럽지는 않을까. 혹은 그 인간이 다시 자신을 찾으러 올 거라는 희망 고문에 마음이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상상만 해도 내 마음이 무너질 듯 아파진다.
어제의 유기견과 오늘의 유기견. 전자는 아직도 이 캄캄한 밤길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후자는 운이 좋게도 지금 친구들의 품에 따뜻하게 안겨서 꿈나라로 향하고 있다. 이 둘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겨우 ‘운’ 하나뿐이다. 운에 따라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기도 하고 안락사 되기도 하는 유기 동물의 운명. 물론 입양은 극히 드물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유기의 현장. 저항 없이 죽임 당하는 학살의 현장. 모두 책임감 없이 개를 데려오고, 중성화도 시키지 않고 방치하다가 결국은 내다 버리는 인간들의 죄다. 소중한 생명들의 생사가 ‘운’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이 안전과 행복을 당연한 권리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매해 증가하는 유기 동물과 안락사 수치. 숫자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의 슬픔, 고통, 고독. 우리 인간은 그 감정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진실한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와 연을 맺은 ‘아지’의 아름다운 까만 눈망울을 들여다본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아지의 앞날에 축복의 마음을 보내면서 동시에 어제 길에서 본 개의 안녕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유기 동물, 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이 어서 오기를. ‘내일의 유기견’은 더이상 없기를.
*현재 위에서 말한 강아지 ‘아지’를 평생 가족으로 맡아주실 분을 찾고 있어요! 입양에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 환영합니다! 인스타그램 @aaji_imbo 다이렉트 메시지 혹은 이메일 lovelyok4@naver.com 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아지의 입양처 찾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지의 삶을 응원해주세요!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비건맛집을 탐방하고 사람들과 떠드는 것을 사랑합니다. 2년 전 가족이 되어준 뽀리와 동네에 묶여 사는 개 쫄랑이, 똘이와 매일 산책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행복하고 존중 받는 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