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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Dec 15. 2022

코로나를 경험한 인류가 조류인플루엔자를 대하는 방식

'방역'이란 이름의 대규모 학살

이번 겨울에는 몇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산 채로 묻힐까? 매년 조류인플루엔자(H5N1)로 인한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달만 해도 10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땅에 묻혔다. 동물로부터 넘어온 코로나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바이러스를 대하는 방식은 변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인간의 삶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변이를 통해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류의 호흡기 상피세포에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수용체(α-2.3)는 포유류가 갖는 수용체(α-2.6)와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하부 호흡기에 조류 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수용체(α-2.3)를 적은 양이지만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고농도의 조류 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을 경우 바이러스가 하부 호흡기까지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에 쉽게 감염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인류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호흡기에 2가지 수용체(α-2.3), (α-2.6)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 없이 돼지에게 감염될 수 있다. 결국, 돼지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돼지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이기 아주 좋은 매개 동물이다. 이미 돼지, 인간,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뒤섞여서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을 불러온 H1N1 바이러스가 탄생했다. 


고유의 면역 반응을 통해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닭과 오리들은 공기도 잘 순환되지 않는 공간에서 밀집 사육된다. 이를 우리는 공장식 축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공장에서는 달걀과 닭고기, 오리고기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도 만들어 낸다. 바이러스가 수도 없이 변이를 일으키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을 인간들은 전 지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막 심각해졌을 때 우리 사회에서 ‘방역’은 ‘정의’로 통했다. 마스크를 끼지 않는 사람은 대역 죄인이었으며, 코로나를 특정 지역에 유입시킨 사람들은 얼굴이 공개되어 인터넷에서 온갖 욕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 것은, 제2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것을 만들기 너무나 쉬운 과도한 ‘고기’ 소비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 거리가 아니다. 공장식 축산이 존재하는 이유는 보다 싸게 많은 양의 고기와 달걀을 먹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과도한 육식은 바이러스 생산 공장(공장식 축산)을 서포트하는 행위라고 바꿔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처럼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가장 단순히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물로부터 넘어온 코로나바이러스를 접했다면, 우리는 동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골똘히 고민했어야 한다. 일상을 똑같이 살아가며 마스크를 쓰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인류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가 없다면, 사회를 패닉에 빠지게 할 바이러스는 더 높은 빈도로 우리 사회에 찾아올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매일 같이 확진자 수를 확인하던 삶이 어제와 같다. 각종 애플리케이션도 나와 보다 쉽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알려주었고, 국가는 개인들에게 문자를 수도 없이 보냈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서 수많은 새들이 ‘살처분’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필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더라도, 감염될지라도 ‘방역’이란 이름으로 땅에 묻히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안전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우리를 죽였다면 어땠을까?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통해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더 크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사 사람이 절대 감염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명체가 있더라도 그 생명체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구를 원한다. ‘나’를 위한 방역이 아닌 ‘우리’를 위한 방역을 할 때, 우리는 이 대격변의 시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이권우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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