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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Feb 08. 2023

‘토끼’의 몸을 한 식민주의

토끼의 해,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광고나 인터넷, 장식품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토끼 캐릭터를 찾을 수 있다. 무해함과 선함의 상징으로 자주 표현되는 토끼. 하지만 토끼가 ‘식민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 초, 우리가 무수히 많은 토끼 캐릭터를 발견하는 만큼, 호주에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막대한 수의 살아 있는 토끼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토끼는 호주 생태계에게 유해함과 악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호주와 토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859년 토마스 오스틴은 24마리의 영국 토끼(English rabbit)와 함께 호주에 정착한다. 토끼는 사냥용으로 데려왔다. 기록에 따르면, 오스틴은 자신의 넓디넓은 멜버른 농장에 그 토끼들을 풀어놓았다고 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번식력이 강한 토끼들은 3년 이내에 수천 마리로 늘어났고, 계속해서 번식했다. 그리고 지금은 호주에 서식하는 토끼 개체수는 약 2억 마리에 달한다. 여기서 ‘토끼가 호주랑 잘 맞았나 보지. 무럭무럭 잘 컸네’라는 반응은 생태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 근거한 말이다.


“생물학적 침략은 경제와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이다.”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새롭게 실린 연구 보고서에서 연구원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유럽산 토끼들이 호주를 ‘식민화’하였으며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파괴적인 생물학적 침탈”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호주에 도착한 단 24마리의 토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재앙을 촉발시켰다. 이 토끼들은 여전히 호주의 생태계의 일부라기보다는 침입종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토끼들은 호주의 생태계에 없었기에, 본래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파괴시키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호주 농부들은 이 토끼들의 어마어마한 번식력으로 인해 토양과 작물들에 피해를 준 결과 대규모 토양 부식과 다른 환경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160년 전 토끼의 후손들은 호주의 생태계 교란과 환경 파괴, 더 나아가 경제적 피해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 호주는 갖은 방법으로 토끼를 전멸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나 획기적인 돌파구는 아직 없어 보인다. 여기서 토끼는 죄가 없다. 이들은 오히려 사냥용으로 인간의 유희를 위해 희생될 운명을 가지고 호주에 왔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이제는 호주에서 ‘식민주의’의 상징이 되어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토끼라는 소중한 생명을 죽여 없애려고 안달이 났다. 다시 말한다. 토끼는 죄가 없다. 그러므로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는 외래/침입종의 도입은 무해한 동식물에게도 고통과 폭력을 가한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식민주의가 오로지 전쟁이나 억압과 같은 폭력적/강제적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스틴 토끼 도입 사건은 단 한 사람 또는 소수의 행동이 환경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명료히 보여준다. 영국 토끼는 호주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식민화’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국 토끼의 등장으로 호주의 생물 보안(biosecurity)이 참담히 무너진 것이다. 한 지역의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그 나라의 안보나 환경, 경제 분야에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말할 것도 없이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물론 생명 하나하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이 영향은 때로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식민주의는 한 나라의 정부나 통치,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의 생태계를 식민화하여 한 사회와 공동체, 자연을 무참히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호주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생물학적 침입이 내가 사는 지역은 물론 전 세계 생물 다양성에 큰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토끼’의 몸을 한 식민주의, 우리는 이런 형태의 식민주의로부터 지킬 것이 많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종내에 이르러서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생물학적 침략. 우리의 자연과 공동체,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하여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과 안정성에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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