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에서 하나로, 다시 셋으로
반려닭에 대한 연재를 몇 개월간 멈추었다. 글 쓸 여력이 없었다는 핑계를 댄다.
이제야 그날을 회상하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경남 밀양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접고, 두 달 전 전남 곡성으로 이사 왔다.
1톤 트럭 3대에 꽉 차는 양의 짐을 싸고 날라야 했던 ‘대이동’이었다.
많고 많은 짐 중에서 가장 신경 써서 모시고 가야 할 것은 바로 닭이었다. 그런데 본래 세 마리였던 것이 한 마리가 되었다. 쑥이만 밀양에서 함께 떠나와 곡성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삿날 바로 이틀 전, 돌이와 잎싹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산에 사는 지인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하루 외박을 하고 돌아간 아침이었다.
쑥이가 혼자서 멀뚱멀뚱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디 갔지?’
야생동물을 피해서 밖으로 도망갔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와 잎싹이가 있을 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마당 한편에 돌이의 깃털이 뭉텅이로 빠져있는 곳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단서를 찾기 위해 주의 깊게 살펴보니, 잎싹이의 깃털이 한 뭉텅이 빠져있는 곳도 발견했다.
뒷산이었다. 잎싹이의 깃털을 따라가니 집 뒤에 있는 경사진 대나무숲 위로 올라가더라. 긴장한 채로 한 발 한 발 올라가니, 그곳에 잎싹이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 돌이도 있었다.
잎싹이는 거의 몸의 절반만 남은 상태였고, 돌이는 머리만 사라졌다.
담비의 짓이 분명했다. 두 마리의 담비가 각각 돌이와 잎싹이를 물고 와서 맛있게 먹고..
두 마리나 물어왔는데 막상 다 먹으려니 너무 많아서 머리만 먹은 것이다.
담비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야생의 생존 방식인 것을.
만지는 것이 겁이 났다. 짝꿍이 돌이를 들어 잎싹이 옆에 나란히 놓아주었다.
낙엽이 두껍게 쌓인 산 깊숙한 곳이었다.
흙을 파묻어주는 대신 몸 위로 낙엽을 덮어주었다.
‘맑은 자연으로 돌아가. 거기서도 행복해야 해! 그동안 우리와 함께 해주어 고마웠어.’
실감 나지 않는 죽음을 앞에 두고 묵념을 했다.
쑥이는 친구들이 죽은 것을 아는 건지, 이상하게 혼자 조용히 낮잠을 자고
평소보다 우리에게 의지하고 우리를 따라다녔다.
원래 닭 무리는 혼자서 무리를 벗어났을 때 친구들을 부르는 울음소리를 낸다.
마치 “나 여기 있어! 너희 어딨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러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멀리서 친구들이 달려온다.
그런데 그날의 쑥이는 달랐다. 친구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친구들의 부재로 인해 쑥이는 우리와 더 가까워졌다.
이삿날, 짐을 전부 트럭에 실어 보내고 집을 떠나기 전
2년 동안 정든 집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돌이와 잎싹이, 냉이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친구들을 두고 떠나버리는 것만 같아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우리 다 같이 곡성으로 이사 가서 새로운 곳에서 더 재밌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정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이삿날 이틀 전이라니.
우연이라기엔 마치 하늘이 정한 운명인 것만 같았다.
쑥이는 승용차에 함께 타서 우리 품에 안긴 채로 곡성으로 이동했다.
닭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입을 벌리고 헥헥거린다.
이유를 파악하진 못 했다. 긴장해서일까? 더워서일까? 멀미를 하는 걸까?
그저 부드럽게 안아주며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이삿날에 맞춰 닭장을 다 지어놓으려고 했지만 아직 미완성 단계였기에
며칠간은 집 안에서 함께 지냈다.
닭장이 다 완성되고, 넓은 닭장 안에서 며칠간 쑥이 혼자 지내다가
운 좋게 비슷한 외모의 닭 친구 두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수탉 1마리와 암탉 1마리. 방이와 참이로 이름 지었다. 방아와 참나물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처음 2주간은 쑥이 대 참이+방이로 서로 경계하고 괴롭히고 난리였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가족이 되어 잘 살고 있다.
수탉 방이는 죽은 돌이와 외모가 몹시 닮았다.
그런데 성격은 완전 반대이다. 돌이는 사납고 공격적이었던 반면, 방이는 우리를 한 번도 문 적이 없을 정도로 순하다. 외모에서도 성격이 드러난다. 눈빛이 참 온화하다. 돌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눈빛이었는데..
암탉 참이는 꽤 공격적이다. 맨손이든 장갑이든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물어버린다. 종종 쑥이를 이유 없이 괴롭힌다. 죽은 잎싹이처럼 혼자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게 돌이와 잎싹이, 냉이의 빈자리가 채워졌다.
쑥이는 벌써 3살이 되었다.
닭은 오래 살면 30살까지도 산다는데.
무사히 할머니 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50살 60살 될 때까지 같이 잘 살아보자!
글쓴이: 다님
반려닭과 함께 사는 이야기 연재.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하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전남 곡성에 거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