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 살아가는 맹수들과 문제제기를 소화하는 우리 사회의 방식
1. 문제제기
부천시 홈페이지에 있는 '시민 제안'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시민 A씨는 “너무 좁은 공간에 호랑이, 곰과 같은 야생동물, 맹수들이 바깥 공기 한번 쐬지 못한 채 실내에 갇혀 있다.”고 부천 웅진플레이도시에 입점한 ‘플레이아쿠아리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호랑이의 경우, 먹이가 풍부한 지방에서는 약 50㎢, 먹이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3,000㎢ 정도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플레이아쿠아리움의 전체 면적은 5.5 k ㎡로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5.5k ㎡의 실내공간에서 수 많은 바다생물과 육지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2. 방어기제만 가득한 대답
이에 대해 플레이아쿠아리움 관계자는 “동물들은 병원 진료와 먹이 제공은 물론 관람장 안팎 활동으로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며 “사육환경 역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많은 사람은 ‘법’과 ‘윤리’를 착각한다. ‘법대로 한 것’과 ‘윤리적인 대로 한 것’의 의미는 결코 같지 않다. 우리 사회의 법은 고장 나 있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법은 시대의 윤리에 맞추어 변화해야 하지만,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면 플레이아쿠아리움은 실내에서 육지 동물이 살아가는 것이 왜 윤리적 문제가 없는지 이야기했어야 한다.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라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병원에 데려가는 것과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실내 사육 문제 제기’와 관련 없는 이야기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문제 제기에 동문서답하기 일쑤다. 그 이유는 문제 제기를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3. 문제제기의 진짜 의미
‘문제 제기’는 우리를 더 좋은 방향성으로 끌고 가주는 소중한 열쇠다. 끝까지 파고들어서 나를 잘 알게 해주고, 내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바라봐 주며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 제기를 받았을 때 수많은 방어기제가 올라오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잘못을 ‘처벌’해 왔기 때문이다. 잘못을 처벌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처벌의 공포 아래에서 나를 변호하기 바빠질 뿐이다. 처벌하지 않는 세상에는 문제가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정확히 아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처벌 없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이상주의’라고도 말한다. 물론 ‘이상주의’ 일 수도 있다. 사실 경험해 보면 좋은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확실히 안다.
‘처벌’이 있는 세상은 우리의 잘못을 마주하게 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문제 제기와 방어의 굴레를 낳을 뿐이다.
문제 제기와 토론이 가득한 세상이 되길 원하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