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비인간생명체는 뱀도 족제비도 아닌, 모기도 파리도 아닌.. 바로 '진드기'다.
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진드기가 있다. 특히 풀이 우거져서 덤불 지고 습하며 그늘진 곳에 진드기가 많이 산다. 맨땅보다는 들에, 들보다는 산에 많다. 이런 진드기는 풀 속에 살면서 포유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진드기는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도 포유류이기에 진드기의 목표물이 된다.
사람이 풀숲을 지나가거나 풀을 만질 때, 사람 몸에 올라탄 진드기는 피 빨기 좋은 곳에 자리 잡는다. 약간 어둡고 축축한 부위를 선호하지만 사실 크게 가리지 않고 달라붙는다. 나 역시 배, 등, 허벅지, 종아리, 어깨 등지에 찰싹 붙어있는 진드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
진드기는 가급적이면 경계하는 것이 좋다. 사람 몸이 풀을 스치는 틈을 타 올라타서는 맨살에 여덟 개의 다리를 밀착해 걸으며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주둥이와 얼굴을 살 안쪽으로 푹 박아버린다. 그러고는 며칠간 서서히 피를 빨아먹는다. 소리가 나지도 잘 보이지도 않으며, 물린다고 해서 처음부터 가려운 게 아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몸을 수색해서 찾지 않는 한 진드기가 몸에 붙어있는 걸 발견하기 쉽지 않다.
여덟 개의 다리를 오므린 채 살에 밀착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는 마치 원래 몸에 있었던 까만 점처럼 보인다. (원래 점이 없었던 자리인데 수상한 점이 생겼다 싶으면 진드기일 확률이 높다.) 떼어내려고 해도 꼭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농사일 후에 입었던 작업복을 바깥에서 털고 한번 점검하며(세탁하면 좋다), 온몸을 수색해야 한다. 작업복은 진드기를 잘 구분할 수 있는 밝은 색깔이면 좋다. 그날 붙은 진드기를 그날 발견해서 떼어내면 흉터와 가려움, 혹시 모를 바이러스 감염을 최대한 예방할 수 있지만, 2-3일만 지나도 진드기가 물고 간 자리는 까맣게 흉이 지고 몹시 가려우며 심하면 물집이 잡히고 쓰라리기도 하다. 심하면 '쯔쯔가무시'와 같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진드기에 천하무적인 생물이 있다. 바로 '닭'이다. 닭들에게는 '닭진드기'라는 것이 잘 붙는다. 그런데 닭들은 흙목욕을 통해 진드기를 털어낸다. 움푹 파인 구덩이에서 몸을 털어 흙을 몸 위로 끼얹고 털어냄을 반복한다. 배, 옆구리, 날개 등 이쪽저쪽을 비빈다. 이 외에도 나른한 대낮에 한 곳에 모여 몸을 베베 꼬아서 몸에 붙은 진드기 및 벌레들을 쪼아 먹으며 청소하기도 하고, 동료의 몸에 붙은 것을 쪼아 먹기도 한다. 닭들은 풍성한 털 안에서도 좁쌀만 한 진드기를 잡아내는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닭들의 주요 습성이자 일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닭들의 습성을 무시한 채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낸 것이 '공장식축산'이다. 육계나 산란계 매한가지로 흙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생활하는 닭들은 흙목욕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수백 수천 명(命)의 닭들이 좁은 곳에서 함께 생활한다. 인간의 코로나 역사가 말해주듯 자연에서 멀어지고 밀집해서 살 수록 면역력이 약해지고 감염에 취약하다. 공장식축산에서의 닭들도 마찬가지이다. 닭의 털 속에서 사는 닭진드기는 최적의 환경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닭들은 병들어간다. 이걸 예방한답시고 온갖 화학약품을 먹이고 뿌려댄다. 그러니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난 것이다.
"영국왕립곤충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저널 <의료 및 수의 곤충학>(2012년)에 따르면,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곤충학부 브래들리 멀런스 교수팀은 2009~2010년 15주씩 3번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0.1㎡ 케이지에서 사는 닭 12마리와 11㎡ 사육장에 풀어두고 흙목욕을 할 수 있게 한 닭 12마리의 몸에 사는 진드기 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각 케이지에는 두 마리씩 집어넣었다. 실험에 사용된 케이지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케이지보다는 큰 것이다. 풀어둔 닭은 한 방에 12마리씩 두 방으로 나눠 시기를 달리해 흙목욕을 시켰다. 닭들이 흙목욕을 할 수 있는 기간은 4주로 제한했다.
연구진은 닭 한 마리당 진드기 20~30마리씩을 날개 쪽에 넣어줬다. 세 차례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규조토(바다나 호수 밑의 흙), 고령토, 유황 등 흙의 성분을 조금씩 달리해줬다.
실험 결과 흙목욕을 한 닭은 일주일 만에 진드기의 80~100%가 줄었다. 4주 동안 진드기 수가 급감하면서 5~6이던 수치가 0~3으로 떨어졌다. 수치가 높아질수록 진드기의 밀도가 높다는 의미다. 다른 방에 있던 또 다른 닭들을 대상으로 흙목욕을 하는 시기를 이전과 달리해도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케이지에 있던 닭은 0~2였던 진드기 수치가 8~9주 차 때부터 5~6으로 올라 꾸준히 유지됐다. 특히 유황이 들어 있는 흙이 효과가 가장 좋았다."
출처 - “닭 날갯속 진드기 30마리, 흙목욕 1주일 만에 사라졌다”, 최우리 기자, 한겨레, 2017.08.15.
미국에서 연구한 이 실험은 매우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 자연에서 비로소 본연의 힘을 발휘하는 닭들. 아무리 콘크리트 위에서 태어났어도 자연으로 돌아간 닭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흙목욕을 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흙을 팔 것이다. 과연 인간도 그럴까? 콘크리트 위의 삶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현대의 인간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네이버와 구글이 알려주는 지식 없이는..
점점 기온이 높아지고 습해지는 기후변화 때문에 진드기가 월등히 많아졌다. 주변 농부들도 이렇게 진드기에 많이 물린 적이 없다고들 말한다. 긴 팔, 긴 바지에 바지를 양말 안에 넣고 장화를 신어 완전무장한 채로 풀이 우거진 감밭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무릎 주변에 진드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안 그래도 장마철이라 습한 것이 진드기들이 있기 좋은 환경이다. 그렇게 한참을 꼼꼼히 살펴서 옷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내었다.
감밭에 많은 닭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걸 계획 중에 있다. 닭들을 밭에 풀어놓으면 풀도 먹고 진드기를 비롯한 각종 벌레도 먹는다. 양질의 똥도 싼다. 건강한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이 과수원에서 따로 먹이를 챙겨줄 필요도 없으니 닭도 좋고 사람도 좋다. 이런 것이 진정한 공생(共生) 아닐까?
글쓴이: 다님
반려닭과 함께 사는 이야기 연재.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하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전남 곡성에 거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