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존재의 회복

그녀 이야기 시리즈 (5)

by 파도



대학원 문을 나설 때,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얇은 학위증 한 장뿐이었다. 수많은 심리학 이론을 머릿속에 채워 넣었지만, 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우울하고 작고 초라해 보였다.


자신을 알기 위해 스스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알아가는 과정은 아프고, 애잖하고, 깊은 통증이었다.

그 무렵, 대학원 동기 한 명을 만났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녀의 인생 역시 굴곡지고, 깊은 흉터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의 아픔을 거울삼아,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샘, 우리… 우리만의 것을 한번 시도해 보지 않을래?”


누군가의 인생을 뒷바라지하던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높은 벽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상심리사 1급. 멀고 높아 보이던 수련의 길이었다. 수련의 시간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이 상처를 가진 내가 누군가를 상담할 자격이 있을까?’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때마다,

질타하듯 솟구치는 질문들이 내면에서 반복해서 그녀의 힘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끝없이 안 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올 때마다, 그녀는 지난 시간의 자신을 떠올렸다.

열아홉 살, 택시 안에서 울던 소녀. 아홉 해의 희생을 견디던 여자. 빈 껍데기 같은 성전 앞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 서 있던 그녀.

마침내 임상심리사 1급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구원자는 없다는 것,

삶의 책임을 타인에게 넘기는 순간,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수렁의 시작이라는 것.


그렇지만 자신이 경험한 그 모든 고통과 방황은

실패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듣기 위해 신이 준비한 '공감의 언어'였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 다시 한번 오롯이 자신의 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곳은 더 이상 구원자를 찾는 곳도, 타인에게 의존하는 곳도 아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녀는 나직이 말해준다.

"당신도 당신만의 열병을 앓고 있군요. 괜찮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당신이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 보시겠어요?“


열아홉, 택시 안에서 흘렸던 눈물은 이제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단단한 손길이 되었다. 자기를 포기했던 그 소녀는 이제 없다.


그곳엔 매일매일 조금씩 진짜 '나'를 완성해 가는 한 인간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자기 존재로 단단히 서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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