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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D Nov 23. 2021

조카의 팩폭

너가 어려서 모르는거야. 

언니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오랜만에 누군가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었다. 반찬은 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와 냉이무침, 멸치볶음, 콩나물 무침이었다. 특별한 메뉴가 있진 않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밥을 먹은후엔 언니네 고양이 젤리와 놀았다. 젤리는 조카방 옷장위에서 자고있었는데 배를 만지니까 자꾸 깨무는 시늉을 했다. 조카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니까 나에게 시선이 멈춰있었다. 기싸움인가. 조카의 앞뒤로 누르면 뽁뽁대는 장난감을 가지고 장난치니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귀여운 젤리. 


한참을 그렇게 놀다 거실로 나갔는데 언니가 "옷에 털 잔뜩 묻었네."했다. 그러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거 젤리 침대야." 헐. 조카는 요즘 아빠랑 잔다고 자기방 침대를 안 쓴다고 했다. 언니는 "낮에 가보면 젤리가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뒹굴뒹굴 거리고 있다니까."하며 웃었다. 이왕이면 눕기전에 알려주지. 조카 지안이가 롤러로 내 몸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이모, 검은색 옷 입으면 안돼." 아, 고양이 키우는 집에선 검은색 옷은 입으면 안되는 구나. 


지안이가 자꾸 놀아달라고 했다. 뽁뽁이로 게임을 했다. 지안이가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에 하나남은 걸 누르는 사람이 지는거야." 첫 판은 내가 졌고 두번째 판은 이겼다. 한번 더 하자고 조르는 조카에게 피곤하다고 했다. 지안이가 내 얼굴을 빤히보며 말했다. "이모, 어른들은 왜 화장을 이상하게 해?" "왜? 이모 화장이 이상해?" "아니 왜 눈썹도 아닌데 이렇게 눈꼬리에 요롷게 올려서 그려?" 손으로 포물선 모양까지 그려가면서 물었다. 눈꼬리를 올려그린 내 아이라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응, 세 보이려고." 조카가 반격했다. "근데 이모, 내 생각엔 이모는 화장 안 하는게 더 세보이는 것 같은데." 


지안이는 모를거다. 내가 아침마다 얼마나 열심히 아이라인을 그리는 지. 잘 그린 날과 잘 못 그린날의 자신감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카의 말을 곱씹었다. 화장 안 하는게 더 세보인다는 건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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